대한민국에서 지방이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 2020~2070년’을 발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2020년 현재 5184만 명에서 향후 10년간은 연평균 6만 명 내외로 감소해 2030년 512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하고 2070년 3766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 숫자는 1979년 남한 인구수로 퇴조한다는 의미다.
인구성장률은 2021~2035년까지는 -0.1% 수준, 이후 감소 속도가 빨라져 2070년에는 -1.24% 수준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감소는 지역적으로 균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0년 6월에 보고한 ‘인구감소시대 지방중소도시의 지역재생 방안’ 자료에 의하면 2017년과 비교했을 때 2047년에는 경기, 세종, 충남, 제주, 충북, 인천 등 6개 시도의 인구는 증가하고, 강원, 전남, 울산, 대전, 광주, 전북, 경북, 경남, 대구, 부산, 서울의 인구는 감소할 전망이다.
대한민국 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인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지방에는 소멸하는 지역이 등장하게 된다.
소멸시기에 진입한 지방
‘지방소멸’이라는 개념은 일본의 총무대신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그는 2014년 일본의 인구변화 추계를 바탕으로 약 30년 후 인구가 절반 이상 감소하는 시정촌이 50%에 이를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마스다 히로야의 방법을 차용하여 국내에서도 ‘지방소멸위험지수’를 통해 한국의 지방소멸위험 정도를 분석한 보고서가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나온 바 있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수 대비 65세 이상 인구수’로 정의된다.
현실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매우 단순화된 조건을 가정할 때 소멸위험지수 값이 1.0 미만(즉,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보다 적은 상황)으로 하락하는 경우, 그 공동체 (국가, 광역, 기초지역)는 인구학적인 쇠퇴위험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 지수 값이 0.5 미만(즉,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고령 인구의 절반 미만)일 경우, 극적인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소멸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정보원이 2005년부터 2021년까지 주민등록연앙인구 기준 소멸위험지수 추이를 살펴보면 전국 228개 시군구기준으로 소멸위험지역이 2005년 불과 33곳에 불과했으나 2021년 106곳으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군 지역은 이미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으며 최근 3년간 소멸고위험지역이 25곳이나 증가하여 이제 양적인 확산 단계를 넘어 질적인 심화 단계로 진입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삼척·공주·보령·논산·정읍·남원·김제·영주·문경 등 9개 도시가 소멸위험진입단계에, 익산·목포·통영은 주의단계에 진입했다. 김제와 문경의 소멸위험지수는 각각 0.259, 0.273으로 곧 소멸고위험 지역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도별로는 전라남도와 경상북도가 이미 소멸위험진입 단계에 도달했다. 전남의 소멸위험지수 값은 2017년 0.49를 기록한 후 2021년에 0.39 수준까지 하락했으며, 경북은 2021년 0.44 수준을 기록했다.
전북과 강원 역시 2021년 기준 0.47과 0.48를 기록하며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 또한 농어촌 낙후 지역을 넘어 제조업 쇠퇴 지역과 대도시 원도심 지역(부산 중구, 대구 서구 등)까지 지방소멸위험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김영만 경북 군위군수(70)를 면담했던 일이 언론에서 화제가 됐던 것도 결국 지방소멸이라는 파국적 상황이 긴급했기 때문이었다.
군위군은 인구 2만3000여 명으로 주민등록인구가 올 1월 기준 전국 225개 기초단체 중 끝에서 여섯 번째(220위)다. 국민들은 이 작은 지역의 군수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단독으로 면담한 사실에 의아했으나 그 의문은 이내 풀렸다.
군위군이 더 이상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었던 것이고 김 군수는 군위군을 대구시에 편입시켜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지방이 소멸하는 이유는 그 지역에서 더 이상 일자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생한 사례를 한국의 조선업이 보여준다.한국의 조선업은 한때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넘쳐나던 곳이었다.
조선업은 자동차, 석유화학, 제철, 전자 등과 함께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심지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땀 흘리며 성실하게 일하면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대표했다.
제조업의 쇠퇴가 지방소멸의 원인
2016년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이른바 ‘물량팀’으로 일컬어지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 협력사 노동자들이 먹고 자던 조선소 인근의 식당이 문을 닫고 원룸의 빈방이 늘어났다.
별다른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조선소의 사내협력업체는 건설업 같은 인력도급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은 곳이 먼저 문을 닫고 큰 곳은 인력 규모가 줄어들었다.
마지막에는 현대중공업 같은 정규직 생산직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이렇게 울산 동구(현대중공업, 미포조선), 경남 거제와 통영, 고성(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창원 진해(STX조선), 전남 목포와 통암(현대삼호중공업, 대한조선), 군산(현대중공업) 등지에서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창원이나 구미, 포항 같은 산업도시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떠받치던 대기업이 떠나거나 핵심 생산시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주변 지역이나 인근 도시에 위치하던 협력사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마치 썰물 빠지듯이 일자리를 좇아 사람들도 떠나갔다. 일자리를 찾고 있거나 곧 사회로 진출해야 청년층도 더는 지역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소멸의 원인을 제조업 일자리의 위기에서 찾는다. 그의 2022년 연구보고에 의하면 한국은 제조업 취업자 비중이 한때 30%에 육박했지만 지난 30년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그러나 고용의 탈제조업화 혹은 서비스화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도권의 제조업 고용 비중은 1990년 33.9%에서 2020년 15.2%까지 감소했다. 반면 비수도권의 제조업 고용은 2000년대 이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수도권의 제조업 고용을 능가하여 2015년에는 18.8%까지 증가했다.
더욱이 비수도권 제조업 일자리는 서비스업이나 농림어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성, 30~50대 핵심 연령층, 정규직, 기술기능직 비중이 높다.
그런데 2010년대 초·중반부터 주력 제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조업 쇠퇴는 유가나 글로벌 시장 상황 같은 경기적 요인도 한몫했지만 스마트 팩토리의 도입이나 자동화 같은 기술-구조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수도권의 경우 대기업 본사와 연구소 등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외적 요인이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비수도권에 위치한 대부분의 생산공장에서는 대규모의 고용감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지방소멸의 위기로부터 제시된 아젠다가 바로 ‘지역균형발전’이다. 지역균형발전의 개념은 지역 대 지역의 균형보다는 도시-지방 균형에 방점이 놓여 있다.
윤석열 새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이미 심도 있게 수용한 결과, 인수위에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이 위원회는 인수위 해체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만큼 지방소멸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해법은 있을까.
지방정부의 주도권 강화되어야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지역의 혁신을 주문한다. 문제는 주도권이다.
새로운 지역 발전 모델로 전환하기 위해서 정책 방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첫째, 중앙정부가 정책 기획을 주도하고 지방정부는 주로 실행에 주력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지역이 주도하여 스스로 발전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지방정부가 스스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예산과 사업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전문성과 기획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모사업을 통해 지역 간 경쟁만 부추길 경우 지역의 쇠퇴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지역이 스스로 정책을 기획할 수 있도록 인적자원을 육성하고 외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지원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고용정보연구원의 제안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 대학과 연구소, 전문 지원기관 등을 통해 내생적 발전을 위한 인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건축과 토목, 교통 등에 대규모로 집중된 ‘하드웨어 중심의 개발정책’에서 ‘장소와 사람을 위한 정책’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혁신도시가 단순히 공공기관 이전이나 아파트 건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하고 친환경적인 생활 양식이 가능하도록 교육·복지·의료·행정 체계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가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산업단지 대개조 같은 공모형 사업도 센터 건설이나 환경 개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년과 여성이 일하기 좋은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일하는 방식과 일터 문화를 혁신하는 방향으로 정책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결론적으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복잡해지는 지역의 산업과 노동시장 환경에서 다양한 일자리 정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의 권한 강화는 필수적이라는 점과 지역의 주도성을 강화한다는 전제하에서 중앙과 지역의 역할 분담과 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지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무작정 모든 정책을 분권화할 수는 없는 것이며 보편적 사회안전망과 고용 인프라 등은 어느 지역에 있든 공통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 결국 지역균형발전은 멀고도 지난한 국민통합의 과정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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