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일반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란 사전적으로 ‘특별한 지위나 신분을 갖지 아니하는 보통의 사람’을 뜻한다. 이는 장애인을 특수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장애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애인들이 꼽는 이상적인 사회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사회라고 한다. 그런 사회에선 차별이나 배려와 같은 단어가 설 자리가 없다. 김정태 용인시장애인희망포럼 대표는 ‘장애인 복지 인프라 구축은 모든 사람 복지를 위한 기본’이라고 말한다.
용인시장애인희망포럼 김정태 대표(용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는 3급 장애인으로서 장애인들의 공공복지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그 공로로 2018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 분야 전문인 또는 기관을 선정해 공로를 격려하는 ‘한국전문인대상’ 복지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래한국>은 장애인포럼 등 활동을 통해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과 장애인의 삶의 질 확보를 통해 기본적인 행복 추구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온 김정태 대표를 만났다.
- 용인시장애인희망포럼이 어떤 단체인지 소개해 주시죠.
다른 여러 단체의 경우 보통 시에 뭔가를 요구하거나 부분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지엽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있어서 전체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단체입니다.
- 언제 만들어졌습니까?
2018년에 만들었습니다. 회원이 많은 것은 아니고 용인시 장애인 공공복지에 의미를 두고 있는 분들 몇 분이 모여 만들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들이 개인별로 목소리를 내오기는 했지만 정책 제안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부분에 집중해오고 있어요.
용인시는 110만의 인구를 가졌지만 공공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장애인 체육관, 장애인 수영장 하나 없는 현실이죠. 저상버스(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버스)의 경우 전국 평균이 20%를 넘었고 서울은 50%인데 용인은 아직도 3%가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뒤떨어져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포럼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 대표님은 어떤 장애가 있으신가요?
4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50년 넘게 그렇게 살고 있어요. (미소)
- 진부한 말이지만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보다 아무래도 인생살이가 더 고달프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내 장애를 맞추고 살아왔어요. 물론 저는 다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지금 활동 이전에는 방위산업체에서 28년 정도 근무를 했었고요. 요즘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이 장애가 아니고 환경이 장애라고 이야기합니다.
제 삶을 뒤돌아보니 사실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데 환경에 막혀 못했던 것이 많았어요. 장애인들에게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뿐 아니라 움직이는 것 자체가 환경에 가로막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진짜 극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극복한다고 말을 하는데 그런 극복이란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과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돼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도 똑같이 좋아진 과정에서 장애인 삶은 여전히 벽에 막혀 있어요. 이제는 그 벽을 깨보자는 것이죠. 말씀드렸듯이 과거에는 시혜로 바라봤다면 이제는 권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내가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먹을 수 있는 권리 등 저는 장애인 최대 복지는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도 최고의 복지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가 열거한 것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이자 기본적인 행복이잖아요.
장애인으로 세상에 맞춰 살아온 삶
- 열심히 살았지만 그래도 장애 때문에 좌절한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내가 하고 싶은 욕구대로 하기보다 항상 세상에 맞춰서 살아오다 보니 어떤 억눌림이 있어요. 항상 자유롭지 못하다고나 할까요?
남들은 저만치 가 있는데 나는 항상 밑에서 거기에 닿으려고 애를 쓰면서 살아야 하는, 남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저는 더 많은 힘을 써야 하고 노력하고 살아야 하는 그런 점들 말이에요.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면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청춘을 다 바친 방위산업체에서 퇴직한 뒤였습니다.
그 회사가 대기업으로 넘어가면서 간부로 일했던 저는 회사가 퇴직을 요구해 나올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 후 대한민국에서 이력서를 안 내본 회사가 없을 정도로 구직 활동를 했는데 아무 곳도 받아주지 않더군요. 그때 제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었는데 2~3년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습니다. 모 상조회사에 입사했는데 장애인 센터가 있었어요. 장애인 센터를 맡게 되면 장애인 단체에 가입해야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해서 다른 장애인 단체에서 단체장을 잠시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그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제 마음이 이상하게 풀어지더군요. 막상 저는 상조 영업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안 하고 장애인 운동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활동하면서 다른 장애인 단체들이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통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포럼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죠.
관심이 용인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 용인에서 30년 이상 거주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개선점이나 칭찬할 점은 무엇인가요?
용인은 난개발 도시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분당처럼 계획적인 개발이 아니라 택지 개발이 부분 부분에서 이뤄지다 보니 난개발로 이어져 온 것이죠. 그러다 보니 계획적인 공공 인프라 구축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삶의 질은 계속 떨어진다고 봐야겠죠.
대한민국이 장애인 비율이 한 5.5% 정도 되고요. 경기도도 한 5.4%(실제 경기도홈페이지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0.12월 기준 인구대비 4.24%)인데 용인이 장애 인구가 약 3.8% 정도 됩니다. 사람들은 타지역보다 장애인이 적으니 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아니거든요. 더 살기가 어려워 용인에서 못 살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갑니다.
그만큼 문화·예술·생활체육 등 이런 인프라가 너무 없는 거예요. 교통도 마찬가지고요. 처인구의 경우도 산단 개발을 보면 대규모 산단이 한군데 집중적으로 개발 중입니다.
도로나 교통 이런 인프라가 먼저 구축되고 개발이 돼야 하는데 산단이 먼저 개발되고 그 뒤에 공공 인프라들이 구축되고 있기 때문에 교통 지옥이 되고 있어요. 출퇴근 시간에는 거의 교통지옥이라고 봐야 하죠. 물론 수지나 이런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또 처인구에 축구장 30개 크기의 대규모 물류단지가 완공됐고 또 몇 년 내로 그 몇십 배의 물류단지가 또 개통됩니다. 그때가 되면 처인구는 정말 답이 없게 돼요. 그런 부분이 우리 장애인 복지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용인이 산업도시도 좋지만 사람 중심의 문화예술의 도시로서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용인의 시정 구호가 사람 중심인데, 뭐랄까 일 중심이 돼 가는 느낌이 들어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인프라 구축 없이 인위적으로 무조건 용인을 150만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런 생각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아니, 반대라기보다 굳이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봐요. 문화와 예술, 복지 이런 부분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돼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면, 교통 인프라 구축이 된다면 인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돼요.
그런 인프라를 기반으로 도시가 성장해야 하는데 아파트 단지만 많이 짓고 인위적으로 인구만 늘린다면 사람들의 삶의 질 자체가 떨어지고 매력 없는 도시가 되겠지요.
- 정부나 용인시에 특별히 건의하고 싶은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까?
이동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 이동권의 가장 기본은 장애인 이동권과 접근권이거든요. 그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될 자유잖아요. 이 부분이 너무 제약이 많아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기흥구 선거관리사무소에 가면 3층 건물인데도 엘리베이터도 없어요. 저희 같은 사람은 갈 수 없죠. 장애인이 가면 1층에서 전화해 내려와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곳이 선거와 관련한 장소인데 그런 곳조차 이동권, 접근권 보장이 안 돼 있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용인이 계획도시가 아니라 부분 개발이 이뤄진 곳이다 보니 그런 면들이 미흡하죠.
또 용인은 도농 복합도시인데 면 단위로 표지만 세워져 있지 정류장 자체가 없는 곳도 많습니다. 이런 곳을 포함해 저상버스가 실은 더 필요한데 용인시에서는 그런 곳들은 장애인들은 타지 않고 버스가 다니기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상버스가 장애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용인시에서 어르신들 면허 반납하면 10만 원을 준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할 게 아니라 저상버스가 들어와 시골 어르신들이 용인시까지 나와 장 보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면 운전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그런 환경은 만들려 하지 않고 삶의 질보다 계속해서 개발 위주의 정책으로 가는 게 아쉽습니다.
장애인 복지, 특히 장애인 복지 공공 인프라 구축은 전체 복지에서 가장 아래에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만 잘해 놓으면 장애인뿐 아니라 아이들, 어르신들 등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노인복지 따로 장애인 복지 따로 아이들 복지, 임산부 복지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장애인 복지 인프라를 구축해놓으면 누구나 다 이용이 가능합니다.
-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계속 해오시면서 가장 보람됐던 경험이나 시절이 있었다면요?
요즘이 제일 보람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을 향해 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가끔 제 스스로 선동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을 위해 이것은 바꿔야 하고 저것은 잘했다 칭찬해줍니다.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하니까 보람되죠.
한 예로 동백 세브란스병원 앞에 육교가 있는데요, 병원으로 올라가는 언덕 중간까지 육교를 연장하면 장애인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훨씬 이동하기 편리하다고 조언해서 연장한 것이에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저 때문에 편리하게 다니게 됐습니다.
아주 큰, 핵심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그런 작은 변화들도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회장님 때문에 요사이 땅만 보고 다녀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늘을 보고 다녀야지 왜 땅을 보고 다니냐고 하면, 땅바닥에 턱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다닌다고 해요. 그만큼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다닌다는 뜻이죠. 저는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없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런 관심들을 조금씩 가져주기 시작한 것, 그것이 어떻게 보면 최고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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