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협상은 미국에는 쉽지 않은 외교적 숙제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 비핵화를 위한 2008년 6자회담이 실패한 이후에도 북한 비핵화를 위한 여러 접근법을 시도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회피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결국 실패했지만 이 전략은 북한이 파기한 약속들의 교훈을 반영하는 당위성이 있었다.
반대로 오바마를 뒤이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은 미국의 전례 없이 파격적인 북한과 김정은과의 대화 의지를 보여줬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자들의 내용적으로는 상반되지만 결과 면에서는 유사한 두 접근을 참고하는 대북정책 검토를 지난 4월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미국 동맹국들과 공유하였다.
아직까지 정책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대략적 윤곽만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 5월 영국 런던 G7 정상회의와 미국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으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모호하고 독창적이지 못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포기” (CVIA) 라고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모호함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의도를 최대한 정확히 동맹국과 이해관계자, 그리고 북한한테까지 전달해야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구체적일 경우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딜레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미 양국 정책이 예측가능한 점을 이용해 무력도발과 평화공세를 번갈아 구사하여 상대방 압박을 선호하는 북한이기 때문에 정책 세부사항의 전격적인 공개는 미국에는 껄끄러울 수 있다.
동맹관리를 위한 대북정책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보여주는 모호함을 정교한 외교전략의 한 단면으로 치부하기에는 미·중 경쟁에 집중하는 미국에 북한은 더 이상 외교안보 우선순위가 아니며 대북정책이 실제로 북한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동맹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정황이 다분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국무부 장관인 블링컨은 북한의 비핵화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며 트럼프의 외교 노력 대부분이 실패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더욱 중요하게는 바이든 행정부 하에 미국의 안보전략 초점이 대테러리즘과 북한 및 이란 등 이른바 ‘불량국가’ 대응에서 중국과 러시아라는 ‘동급수준의 경쟁자’(peer competitors)와의 경쟁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2017년 국가안보전략 (2017 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큰 줄기에서 계승했다. 다만 반전이 있다. 바로 동맹의 역할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에게 동맹들이란 미국에 안보 무임승차해 경제적 피해를 끼치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바이든은 반대로 동맹이야말로 미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전력승수’(Force Multiplier)로서 핵심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의 동맹관은 얼핏 미국이 일방적으로 기여하는 전통적인 동맹관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의 동맹관은 이를 뒤집어 이제는 동맹이 미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미국이 미·중 경쟁구도에서는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고 친미성향의 아프간 정부의 붕괴를 방치한 데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우선순위와 ‘상호방위’하는 바이든의 동맹관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또한 한국을 인도·태평양(인태) 전략 안으로 끌어들이는 매개체로서 미·중 경쟁구도라는 틀 안에서 작동한다. 대표적으로는 5월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들 수 있다. 이 공동성명에는 인태 전략 관련 표현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과의 연계, 한미일 3국 협력, 사이버, 우주 및 여타 영역에서의 협력 심화, 심지어는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까지 거론했다. 한미공동성명에 담긴 인태 전략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 동의는 미일공동성명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반전이 있게 된 이유에는 바로 바이든 행정부의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 표명이 있었다. 바이든 입장에서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포함된 넓은 의미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수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해결 원칙은 원론적으로 미국도 동의하고 북한이 대화 채널을 모두 차단한 상황에서 당장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도 주지 않는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이던 바이든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인 데는 중국 견제에 대한 시급성과 인태 전략 실현을 위한 한미동맹의 변화 필요성이 있다.
미국이 구상한 인태 전략은 기본적으로 대중국 방어 전략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분쟁을 상정하는 한미 방어체제 또한 앞으로 북한과 더불어 중국까지 견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역외투입, 즉 한미동맹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대한 한국측의 동의를 얻고자 한다. 마찬가지로 대중 견제를 한·미·일 안보협력과 발전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대북정책 자체가 인태 전략을 위한 동맹관리 매개체로 변모하고 북한과의 외교가 실종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비핵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북한의 비핵화가 외교적 수단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자각과 북한 미사일 대응에 대한 미군의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다.
북한 핵능력에 있어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미국 본토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위협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군 수뇌부는 수차례 공개적으로 자신감을 표명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존 하이튼 미 합동참모차장은 “나는 100% 확신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지만, 북한 대응 능력에 대해서는 100% 확신한다” 고 했으며, 찰스 리처드 미 전략사령관도 “우리는 북한 능력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확신한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미국의 자신감은 북한에는 딜레마가 된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능력은 북한이 가진 미국에 대한 억지력 수단이자 전략적 지렛대이기도 하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발사의 왼편” 같은 대응능력을 확보했다면 북한은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며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어진다.
예컨대 북한과의 대화에는 무관심하고 연합훈련에 집중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현재 행보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보다 억지력에 더 방점을 둘 것이라는 예상과 부합한다.
대북 억지력에 밀려난 비핵화
반대로 바이든 행정부에 시급한 한반도 관련 사안은 한미동맹과 인태 전략 간의 융합이다. 미국의 정책우선순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중국의 회색지대전략과 반접근·지역거부(A2/AD)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다영역작전 (Multi-Domain Operations)의 구현이 절실하다.
다영역작전이란 육·해·공의 전통적인 작전 영역을 넘어 사이버·우주 그리고 전자기장 영역까지 망라하는 작전 개념으로 미군은 모든 영역에서 경쟁국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태 전략이 기본적으로 중국 견제 전략이자 방어 전략이라는 점에서 다영역작전은 인태 전략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동맹이 인태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하기 기대하는 미국 입장에서 다영역작전의 한반도 적용은 필연적이다.
미국이 원활한 다영역작전을 위해 동맹들에 기대하는 것은 동맹군과 미군 간의 높은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과 미 합동전력(Joint Forces)의 자유로운 작전활동을 위한 영토 접근 허용(access permission)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미군의 역외투입을 의미하는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 양군의 상호운용성 강화는 한미동맹이 어느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영역작전은 한·미·일 3국 군사협력 강화도 의미한다.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다영역작전 훈련을 통해 한·미·일 협력을 도모하겠다는 뜻을 이미 내비친 바 있다. 다영역작전에서 다영역이 의미하는 사이버, 우주 및 모든 (또는 여타) 영역에서 협력 심화라는 표현이 한미공동선언문과 미일공동선언문에 모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교부 1차관 “北 영변 재가동 합의위반 아냐” 태영호 의원 “황당한 궤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남북 정상합의 위반은 아니라는 정부의 입장을 놓고 “황당한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태 의원은 7일 입장문에서 “북한의 영변 재가동은 영구적 폐기를 언급하였던 2018년과는 달리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명백한 합의문 위반”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태영호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 전문.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남북 정상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문재인 정부의 황당한 궤변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4·27 판문점선언에 위반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상회담은 왜 했는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오늘 국회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최종건 외교부 차관에 이어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최근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남북 정상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4·27 선언이나 9·19 선언의 합의 내용 중에 북한이 가시적으로 취한 조치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라고 하여 말 그대로 꿈보다 해몽인 억지 궤변을 내놓았다.
즉,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는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합의문 위배라는 문구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외교부 차관의 이와 같은 답변을 이끌어 냈던 원래 질문은 영변 핵시설 재가동이 남북합의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즉, 남북합의 정신의 훼손을 가져왔거나 북한이 2018년 합의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문구에 없었다는 것을 이유로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한 셈이다.
또한 정부의 변명과 달리 평양공동선언 문구를 살펴봐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양공동선언 5항은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라고 되어 있으며 세부 조항은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으로 되어 있다.
즉, 북한의 영변 재가동은 영구적 폐기를 언급하였던 2018년과는 달리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명백한 합의문 위반이다.
정부가 이를 궤변으로 덮고 가려는 것은 문재인 정권 말기에 접어들어 임기 내내 외교적 자산을 쏟아부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파탄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억지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작년 9월 24일 해수부 공무원이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격 사살된 사건이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에도 국방부는 이 사건이 9·19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한지 여부에 대해 “(합의에는) 자기 측 넘어오는 인원에 대해 사격하지 말란 내용이 없고”, “군사합의서에는 소화기는 포함되지 않았고 포격만 해당된다”, “사격은 규정돼 있지 않다”라고 답해 온 국민의 공분을 샀다.
군사합의서의 정신은 남북의 상호 적대행위 금지이고 남북이 정전상황임을 감안하면 전시 민간인 살해는 전쟁범죄에 해당하며 전시 민간인 보호에 대한 제네바 협약의 명백한 위반이다. 군사합의서보다 심각한 범죄행위임에도 정부는 당시에도 문구상의 해석만 내세우는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통해 북한 핵무기가 더 쌓이고 더 정교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4·27 판문점선언에 위반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상회담은 왜 했는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2021년 9월 7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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