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일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의 전기가 갑자기 끊겼다. 미군이 사용하던 각종 장비는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보이지 않았다.
소리소문없이 철수한 뒤였다. 바그람공군기지 외곽을 경비하던 아프간 정부군조차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미군의 전격 철수 사실이 알려졌다.
아프간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탈레반과의 서류 한 조각만 남겼을 뿐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아프가니스탄은 ‘패닉’ 그 자체다.
이것이 그저 남 이야기일까? 이런 가상 시나리오를 그려보자. ①2022년 3월 9일 한국의 대선에서 좌파세력이 또다시 정권을 재창출하고 180석 이상의 여권은 국회에서 미군 철수를 의결 ②미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와 국회 의결 존중한다면서 미군 철수 동의 발표 ③ 백악관 발표와 동시에 이미 평택 미군기지에서 철수 완료했음을 발표한다면 한국 상황은 어떻게 될까?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주식시장은 폭락이 이어질 것이고 미국에 연줄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든 미국으로 가려 하지 않을까? 이것이 그저 기우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도 정권의 핵심 인사 중에는 공공연히 ‘미군은 점령군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정권까지 재창출한다면 그 정도는 분명 더 심해질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철수한 직후인 8월 16일 백악관에서 이렇게 대국민 연설을 했다. 미국이 아프간에 들어간 분명한 목표는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를 소탕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지 아프가니스탄 국가 재건(nation-building)이 아니었다고 못 박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미국의 ‘유일한 국익’은 “미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을 예방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우리의 현실과 그대로 연결된다.
“아프간군이 포기하는데 미군에 진격 명령 내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얼마나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지킬 의지조차 없는 나라에 미군이 왜 피를 흘려야 하느냐는 당연한 항변이다.
언론들은 미군의 전격 철수를 두고 ‘미군이 야반도주’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공격보다 철수 작전이 더 어렵고 신속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무도 모르게 신속하게 철수 가능한 군대 역시 미군뿐일 것이다.
그리고 미군은 아프간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1년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였다. 9·11 테러로부터 10년이 지난 2011년 5월 1일(미국 시각) 미 특수부대는 파키스탄에 은거하던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했다.
그로부터 10년, 미국은 아프간에서 철수했다.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킬 의지조차 없는 아프간에서 미국이 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미군이 바그람 공군기지에서의 전격 철수한 것은 한국군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전략전술적 차원에서 가치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그것도 동맹군조차 모르게 빠져나간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고위관리들은 한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베트남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일 뿐이다. 지금까지 미군은 철수하기 전까지는 항상 좋은 말만 했다. 그러나 막상 군사적 가치나 미국의 국제전략과 맞지 않을 경우에는 전격 철수했다.
이미 미국의소리방송(VOA)과의 인터뷰에서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스스로 나라를 방어할 의지가 없으면 미군은 떠난다는 현실을 한국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군은 베트남, 대만, 필리핀, 그리고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렇게 떠났다.
필리핀 의회가 미군 철수를 의결하자 미군은 그대로 철수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필리핀에서처럼 말이다. 게다가 주한미군의 편제 역시 지상군 위주가 아니라 공군 위주로 재편된 상태다. 따라서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아프간에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 있다.
미군 없이 한국군 혼자 전쟁 수행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미군 없이 한국군 스스로 전쟁 수행능력이 있느냐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에 많은 군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퇴역 고위장성 여러 명과 전화를 했다. 대부분 한국군 단독으로 장기전 수행능력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전면전일 경우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시비축물자는 태부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공군의 첨단 미사일의 경우 그 수량이 매우 제한적이다. 미군이 한국에 비축해 놓았던 전시예비물자(WRSA)도 일정 부분 한국군에 양도하고 폐기한 상태다.
▶두 번째로 지적하는 것은 전시 동원이 어느 정도 가능하겠느냐 하는 부분이다. 필요할 경우 강제동원과 징집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좌파 성향 단체가 발호할 경우, 그리고 인권단체가 나설 때 군에서 강제적으로 집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세 번째로 지적하는 것은 무너진 군 기강과 군 지휘능력에 대한 의문이다. 병사들의 군복무기간은 18개월까지 단축되었고, 각종 훈련은 과거보다 약화 되었다. 최근 들어 군 지휘부는 성 문제로 인해 곤욕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사항이 있다.
▶그것은 정치가 군 인사와 작전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군 지휘부가 정치권 눈치만 보고 제대로 된 훈련과 작전을 펼칠 수 없는데 어떻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최고지휘부 청와대의 전쟁 수행 의지가 가장 큰 문제
‘워 게임 시뮬레이션’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한 말에 의하면 한·미 지휘관이 보이는 지휘역량에도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육·해·공 통합지휘능력과 작전에 대한 이해와 판단 부분에서 미군 지휘관이 앞선다고 말한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실전을 경험한 미군과 그렇지 못한 한국군이라는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한국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실전 능력이다. 이것을 한미연합훈련을 통해 배우는 것인데 현재 그 길이 막혀 있다.
게다가 우리 군 지휘부가 겪고 있는 고질병이 있다. 그것은 군내 사고다. 군 본연의 훈련과 전쟁 대비보다 각종 추문에 시달리고 그로 인해 군 지휘부는 사고 방지가 최대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전쟁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는 한미연합훈련조차 사실상 중단되었다. 실기동훈련도 없는 탁상훈련뿐이다. 주한미군사령관 조차 실탄훈련 없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할 정도이니 현재 상황은 심각하다.
전쟁에서 무기의 많고 적음은 사실 부차적 문제다. 무기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전쟁 의지’다. 전투는 군인이 수행한다면 전쟁은 정치지도자가 수행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정치지도자의 전쟁 의지가 무너지면 군인의 전투수행능력은 자연히 붕괴된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의 경우가 그렇다.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 최고지도부의 전쟁 수행 의지와 능력면에서 현재 한국의 상황은 사실 최악이라 할 만하다. 적과 우방을 사실상 반대로 치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친여인사들과 정권 핵심부 사람들은 중국에는 사대하고, 일본을 사실상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 김여정이 한마디 하면 바로 법을 만드는 ‘김여정 하명법’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느냐 하는 것이 퇴역 장성들이 한결 같은 반응이다.
우파 정권이라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이 터졌을 때 이명박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청와대 핵심참모에 군대를 제대로 다녀온 사람도 없었다. 군 통수권자가 우왕좌왕하자 군 지휘계통도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공격했는지조차 파악 못 하고 있으니 군사적 대응 자체가 불가능했다. 연평도 포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천안함 때와는 달리 북한이 공격한 것이 분명함에도 청와대와 군 지휘부는 혼선을 빚었다. 이명박 대통령 자서전에는 당시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다.
상황실에서 지시하고 TV로 눈을 돌렸다. TV에서는 ‘해군 초계함 북한 공격으로 침몰,’ ‘해군 초계함 북 설치 어뢰에 부딪혀’ 등의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언론은 대체 어디서 듣고 저런 보도를 내는 거지? 부정확한 얘기가 흘러나가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신뢰가 중요합니다. 국제사회에서도…(이명박 전 대통령 자서전 338p)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지자 나는 응징 조치를 생각했다. 군 수뇌부도 천안함 폭침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응징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북한의 소행을 밝히는 증거를 찾는 데 50일이라는 시간이 소모됐다. 무력 보복 조치를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무력 조치는 포기해야 했다…(이명박 전 대통령 자서전 342~343p)
연평도 포격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던 중,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이 뛰어들어오더니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귀엣말을 하는 게 들렸다. “지금 TV 보도에서 연평도 포격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로 ‘확전 자제’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영토가 침공 당하는데, 대통령의 첫 메시지가 이렇게 나가면 안 됩니다.”
임 실장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당시 안보 관계 장관 회의에서는 북한의 소행에 대한 단호한 응징이 논의되고 있었다. 비행기를 띄워 북한의 도발 원점을 포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었다.
상황실 TV를 보니 실제로 그런 엉뚱한 보도가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다. 황당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온 거죠? 하지도 않은 얘기가 왜 뉴스에 나와요? 누가 저런 말을 언론에 했어요?
지금 우리 민간인이 포격 당했는데 확전을 걱정할 상황이에요?” 알고 보니 언론의 브리핑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의 사견이 잘 못 전달되어 언론에 나간 것이다.(이명박 대통령 회고록 346~347p)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군 통수권자가 상황 판단을 못하고, 군 지휘부에서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확전 방지’라는 말이 어디서 나갔는지조차 몰랐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청와대의 잘못된 시그널이 군 지휘 시스템까지 망친 결과였다. 지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첨단 공군과 해군 조차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우리 군은 아무 것도 못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2015년 북한이 DMZ 남방한계선에서 목함지뢰 도발을 했다. 군 장병 2명이 발목을 잃었다. 당시 군은 전방 부대 10여 곳에서 11년 만에 대북 방송을 재개했었다. ‘철부지 김정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독재자’ 등 표현을 대북 스피커로 내보냈다.
그러자 북한은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위협하면서 선전포고에 준하는 경고를 했다. 항상 물러서기만 하던 한국 정부를 다루는 북한 방식은 한결같이 갈등수준을 높이는 압박이었다. 2015년 목함지뢰도발 당시도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2015년 8월 15일-조선 인민군 공개 경고장 발표 ▶8월 20일-조선노동당 군사행동 위협, 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명의 군사행동 위협 ▶ 8월 21일-조선노동당 최후통첩, 북한군 준전시상태 선포 ▶ 8월 22일-북한 외무성 전면전 불사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북한군이 전면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기는 처음이었다.
우리 군은 물러서지 않고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한미 연합대북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Watch Condition)’Ⅲ에서 Ⅱ로 격상했다. 국방부는 8월 24일 오전 B-52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시기 검토 방안을 발표했다.
주일 미공군 소속 전자전기와 적 레이더기지를 무력화 시키는 데 특화된 SEAD(Suppression of Enemy Air Defenses) 전용 작전기도 한반도 상공에 급파됐다.
북에서 총알 한 발이라도 쏜다면 즉각 응징할 것을 천명했다. 당시 공군작전사령관이었던 김정식 공군중장(예)에 따르면 하늘에는 각종 무장을 장착한 공군기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상태였다고 말했다.
최전방 육군 사단 역시 전시에 준하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북한이었다. 우리 군이 감청한 북한군의 무전 내용을 보면 상급부대에서 ‘오히려 꼼짝 말고 있으라’고 다급하게 하급부대에 명령하는 것도 잡혔다.
북한이 정한 D-1일 원산에서 북한 특수전 요원을 태운 AN-2가 이륙하여 남하하고 있었다. 우리 공군은 이것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북한의 전연군단인 1군단에서 무전을 날렸다. “군사분계선에 접근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경고했지만, AN-2 대대장은 “김정은 등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며 남진을 계속 감행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1군단이 “대공포로 격추하겠다”고 하자 AN-2기가 마지못해 기수를 돌린 것이다. 이 사실은 목함지뢰 사건 1년 후인 2016년에 기사화 되었다. 기자 역시 취재해 사실임을 확인했다.
결국 북한은 자신이 정한 시간을 넘겨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김정식 전 공군작전사령관(중장)은 “만약 당시 AN-2가 휴전선을 넘었다면 바로 격추했을 겁니다. 공군 전투비행단을 지휘 방문했을 때 결의에 찬 후배 조종사들의 눈빛을 보면서 지휘관으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재평가되어야 할 이승만 대통령의 전쟁 의지
지금 돌이켜 보면 6·25전쟁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보인 전쟁 수행 의지는 그야말로 초인적이었다. 오히려 싸우기 싫어하는 미국의 팔을 당겨 북진을 감행했다. 군통수권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을 평가한다면 가장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그 이유는 적에 대한 복수의 기회를 군에 명령했기 때문이다. 38선 돌파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싸울 명분과 동기를 군에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과 정치지도자의 몫이다. 그것을 이승만 대통령은 훌륭히 수행했다.
‘북진통일’을 이루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은 많은 육군 사단을 창설했다. 휴전선을 지키는 대부분의 육군 사단은 그때 만들어졌다.
공격과 복수할 기회를 상실한 군대처럼 비참한 군대는 없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그리고 북한의 각종 도발에 한국군 지휘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다.
청와대에서 결정 못 하고 벌벌 떨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한국군의 비극이 잉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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