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20세기에는 석유전쟁 21세기는 배터리 전쟁 
[심층분석] 20세기에는 석유전쟁 21세기는 배터리 전쟁 
  •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21.08.3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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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기록을 보면 한국군 담당 지역이 무너지면서 전선 전체가 붕괴된 전투가 몇 있다. 한국전쟁의 3대 패전지로 알려진 현리전투, 사창리전투, 그리고 평양 북방 청천강변의 군우리 전투다. 이들 3대 패전사를 조사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중공군은 가장 먼저 한국군부터 공격했다. 한국군을 격파하고 전선을 돌파해 미군이나 유엔군의 후방을 포위 공격하는 형태였다. 그렇게 되면 패닉에 빠져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선이 붕괴되었다.

그렇다면 패닉에 빠진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통신 두절 때문이다. 관련 기록을 보면 특히 한국군에 통신 두절이 많았다. 현리전투가 대표적이다. 

1951년 5월 강원도 현리에서 한국군 3군단은 중공군의 기습에 완전 궤멸되다시피했다. 그렇다면 유독 한국군에 통신 두절이 많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무전기 때문이다. 보급도 미군보다 열악하고, 또 무전기가 있다 하더라도 전투 중 손망실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나 더, 배터리 부족이다. 총이 있어도 총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이 무전기가 있어도 배터리가 없으면 그저 고철덩이에 불과하다. 

굳이 6·25전쟁을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도 통신 두절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휴대폰을 깜빡 놔두고 나왔거나 아니면 없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대략난감’이다.

휴대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통화는 물론 각종 자료 검색, 요금 결제, 각종 인증도 모두 휴대폰으로 한다. 휴대폰 사용이 많은 사람일수록 보조배터리는 필수품이다. 이제 우리 일상생활에서 휴대폰과 배터리는 총과 실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 시대는 휴대폰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된다. 이른바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다. 초연결사회에 이제 자동차까지 가세하는 시대가 됐다. 바로 전기자동차다.

휴대폰과 전기자동차는 서로 연결되고 대화한다.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것을 선도하는 기업이 테슬라다. 자동차도 휴대폰처럼 충전하고 배터리 충전량이 떨어지면 불안해진다. 

기아자동차에서 순수 전기차로 개발한 EV6
기아자동차에서 순수 전기차로 개발한 EV6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바로 ‘배터리’

흔히 정보혁명이라고 하면 그 핵심을 정보기술(IT)라고 생각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정보기술이 힘을 갖게 하는 원동력은 사실 배터리다. 배터리가 있기 때문에 정보혁명이 실현되었다고 봐야 한다. 사

물인터넷이라는 것도 24시간 통신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 역시 배터리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배터리는 21세기의 석유라고 해도 무방하다.

20세기 패권국은 많은 유전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됐다면 이제는 배터리와 관련한 기술과 자원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새로운 국가경쟁력 기준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제 전기차 메이커로 탈바꿈한다. 현대자동차도 본격적인 전기자동차 아이오닉5를 출시하면서 전기차시대에 동참했다.

기아자동차도 EV6로 테슬라에 도전장을 내걸었다. 전기자동차의 시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전기자동차는 성능은 배터리와 모터 그리고 소프트웨어가 좌우한다. 

현재 출시된 전기차 중에는 테슬라가 가장 앞서가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테슬라 모델3의 경우 가속 성능과 한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 측면에서 현대 아이오닉5를 능가하는 것으로 나온다.

소프트웨어도 현대보다는 최소 한세대 앞서 가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일본의 혼다, 독일의 폭스바겐, 그리고 미국의 GM, 볼보도 모두 전기차 시대에 맞는 생산시스템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이자 가장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혼다도 전기차 시대를 빗겨갈 수는 없었다. 

8월 5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혼다자동차는 54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자를 신청 받았는데 2000명을 넘었다는 것이다. 흔히 ‘기술의 혼다’라고 하는데 그 혼다 조차 전기자동차 시대로의 전환기에 인력 재배치는 필수요건이 된 셈이다. 혼다는 2040년부터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미국 대형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오는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품귀 사태가 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세계 각국에서 전기차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는 데 반해 배터리 공급이 이를 쫓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20일(현지시간)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BOA는 이날 공개한 ‘전기차 배터리 공급-수요 모델 보고서’에서 2025~2026년 세계 배터리 생산 가동률이 85%임에도 공급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내다봤다.

BOA는 오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규제가 더 강화되고 전기차 시장도 계속 성장해 2026~2030년에는 글로벌 배터리 부족 현상이 더 심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은 앞으로 10년 동안 7조 달러(7953조 원) 이상 성장을 거듭해 2050년에는 연간 시장 규모가 46조 달러(5경2256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시대의 문을 연 테슬라의 뒤를 이어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들도 너도나도 전기차 생산에 돌입하고 있다. 분명 앞으로 자동차시장은 전기차시대라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기차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배터리시장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시장에서 한국은 선두그룹에 속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3사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지닌 하이니켈 소재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공정 과정에서 간 원가 절감을 위한 다양한 소재 배합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NCM 배터리에 알루미늄을 추가하고 코발트를 줄인 NCMA 배터리를 미래 주력으로 밀고 있다. 값비싼 코발트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알루미늄을 추가해 가격경쟁력도 어느 정도 갖추겠단 것이다.

삼성SDI는 니켈 함량 88% 이상인 하이니켈 기술이 적용된 젠5(Gen.5·5세대) 배터리 양산을 앞두고 있다. 한 번 충전에 600㎞ 이상 주행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한다. SK이노베이션은 니켈 함량을 약 90%까지 높인 NCM9 배터리를 내년부터 양산할 예정이다. 해당 배터리는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 F-150에 탑재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터리의 내부는 사실 액체로 채워져 있다. 이온화 경향이 큰 양극과 음극 사이에 액체상태의 전해질이 전자의 이동을 가능케 하면서 에너지를 충·방전한다.

자동차 배터리인 납축전지도 강산성의 황산용액이 전해질로 채워져 있다. 니켈-카드뮴 전지나 니켈-수소, 리튬이온, 전지도 내부에는 액체상태의 전해질이 있다.

휴대폰에 많이 사용되는 리튬폴리머 배터리의 경우에는 액체 전해질 대신 젤(gel) 타입의 전해질이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들 전해질이 유출될 경우엔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리튬이온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 비교/한국전기연구원 KERI
리튬이온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 비교/한국전기연구원 KERI

전고체 배터리가 미래의 배터리시장을 좌우한다

전기자동차의 가장 큰 취약점이 바로 화재다. 리튬이라는 원소는 매우 반응성이 크기 때문에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만약 물을 뿌릴 경우에는 불이 꺼지기는 커녕 더 맹렬하게 불이 붙으면서 폭발하기까지 한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노트시리즈 중 일부가 충전 중 배터리 화재 때문에 전량 회수된 적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코나도 주행 중 화재로 문제가 되었는데 이 모두가 배터리 문제다. 

기존 배터리의 화재나 폭발 등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 등장하는 기술이 ‘전고체 배터리기술’이다. 액체상태의 전해질 대신에 불연성 세라믹 소재의 고체 전해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폭발 위험성이 없이 안전하면서도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기존 배터리보다 3배나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현재 출시된 전기차로는 한번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아슬아슬하다. 에어컨이나 히터를 작동할 경우에는 한번 충전으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에 가기는 힘들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기차 구매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할 경우 서울-부산을 한번 충전으로 충분히 왕복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고 앞선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2018년부터 일본의 신에너지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 NEDO(New Energy and Industrial Technology Development) 주도로 ‘전고체 배터리 원천기술 개발’에 나섰다.

이미 원천기술 상당수를 특허 출원한 상태다. 2022년까지 한국에 추월당한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과 생산을 전고체 배터리로 역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분야에서 산학협동도 이뤄진 상태다. 산업계에서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일본의 도요타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요타에서는 2025년 프로토 타입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전고체 배터리 기술 여부가 향후 전기자동차 시장의 향배까지도 결정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자동차용 시스템 반도체와 더불어 전고체 배터리는 미래산업 먹거리로 확실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자료 출처: SNE리서치

미국의 배터리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사 역시 전고체 배터리 분야 숨은 리더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는 15분 안에 80%를 충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폭스바겐도 퀀텀스케이프에 투자했다. 폭스바겐은 2025년께 전기차 생산에 퀀텀스케이프의 전고체 배터리를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의 삼성SDI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일본연구소 등과 협력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태다

2020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의 만남이 주목 받았던 것은 세계적인 배터리 공급사와 자동차 메이커의 전략적 동맹 차원으로 발전하는가에 대한 이슈였

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 될 경우 1회 충전에 약 800km를 주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쟁도, 경제도 그리고 개인 사생활도 배터리가 좌지우지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밥은 한끼는 걸러도 배터리 충전을 거를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휴대폰의 배터리 충전 상태가 10% 밑으로 떨어지면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해지는지 한번씩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제 개인도 국가도 배터리 충전 상태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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