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지방에서는 “지방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자조적인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2000년 이후 학생 미충원으로 인해 강제 또는 자진폐쇄 조치로 문을 닫은 지방의 일반대, 전문대, 각종 학교는 16개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올해 기준으로 지난 3년간 정원의 70%를 충족하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하는 대학이 38개에 이른다.
지방대학은 2018년부터 대규모로 미충원이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미충원 대학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지방대학이 학생 미충원으로 인해 폐교되면 교직원 실직은 물론 학생 부재로 인한 지역 상권 침체 등 되므로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크고 심지어 지역사회 소멸로 연결될 수 있다.
지방 국공립대학은 가까운 국공립대학에 통합하면 된다. 그러나 사립대학은 그렇게 할 수 없다. 2020년 전국 대학의 86%인 371개(전체 429개)가 사립이다.
이 중 4년제 일반대학은 82%인 156개(전체 191개)이며 전문대학은 93%인 127개(전체 136개)이다. 2021년 전체 대학 모집 인원은 55만여 명이고, 고교 졸업생 중 진학 추정 인원 40만여 명과 재수생 13만여 명을 합친 인원이 53만여 명이다, 이중 약 10만여 명은 다시 재수를 한다고 보면, 43만여 명이 대학에 진학한다. 이는 결국 전국의 대학에서 12만여 명의 미충원으로 나타난다.
가뭄이 들면 샛강부터 마르기 시작한다. 출산율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소는 지방대학부터 학생을 충원하지 못해 문을 닫게 하는 요인이다. 대학의 재원은 입학 정원과 등록금 규모로 결정된다.
대학의 등록금은 지난 10여 년간 동결 또는 인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지방의 사립대학은 부족한 재원이 부실교육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 충원을 하지 못하는 지방 사립대학은 폐교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방 사립대학의 발전과 쇠퇴의 과정
교육부는 1996년 대학 설립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준칙주의’를 도입해 설립 기준 즉, 설립의 문턱을 낮췄다. 이후 10여 년 동안 전문대학을 포함해 50여 개 이상의 대학이 설립되었고, 입학 정원도 10여만 명 이상이 증가함으로써 크게 발전했다.
이후 금융위기 시점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출산율 감소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의 입학 정원보다 적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대학 설립의 진입 문턱을 낮췄으면 퇴출 문턱도 낮춰야 하는데 아직 출구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사립대학이 폐교를 하면 학교의 전 재산은 법률에 따라 국가에 귀속된다. 사립대학 설립자는 초기 투자 재원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학교 문을 닫을 수 없다고 버틸 수 있는 한 버티고 있다. 대학 퇴출을 위한 출구를 만들기 위해 18대 국회 회기 중인 2010년부터 ‘사립대학 구조조정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자동 폐기되었고 19대 국회에서 다시 제출되었다. 그러나 19대와 20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사립학교가 쉽게 퇴장을 결정할 수 있게 처분 재산의 일부를 학교 설립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시민단체는 대학이 학생의 등록금으로 외형이 커졌으므로 그렇게 이뤄진 재산은 일부라도 설립자가 가져갈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이 법안을 상정하지 않고,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운영하는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있다. 국회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가 부실 사립대학을 유지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부실 교육을 유발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사립대학은 대학 스스로 퇴장할 수 있는 출구가 없기 때문에 교육부의 평가에 의해 퇴출이 결정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국회의 해결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퇴출의 칼자루를 교육부가 쥐고 있기 때문에 지방의 군소 사립대학은 교육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퇴임하는 교육부의 고위직을 총장으로 모셔 와서 공직 네트워크를 이용해 교육부의 재정지원 프로그램에도 선정되고, 평가를 잘 받아 퇴출을 막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학 정원 결정권과 등록금 결정권, 그리고 대학 퇴출권을 가진 교육부는 현재 구조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사립대학이라는 먹이사슬을 스스로 풀어 줄 수도 없는 구조 속에 있다.
대학의 자구 노력과 정부의 대책
학생 확보를 위해 대학과 정부가 노력하고 있는 활동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외국인 학생 유치
전국 대학의 외국인 학생은 매년 만여 명씩 늘어 2019년 11만여 명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만여 명이 줄어 현재 10만여 명이 있다. 지방의 큰 사립대학은 대부분 1000여 명의 중국인 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을 마구잡이로 유치하다 보니 한글로 소통이 어려운 학생도 들어온다. 현재 외국인 학생은 본국으로 돌아가 대부분 복학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인 신입생 유치가 스톱된 상태이다.
(2) 성인 학생의 확대
성인은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도 없이 더 많은 성인 학생을 유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일본의 지방대학은 지역의 시니어들에게 평생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 대학이 미국 경제의 어려움으로 곤란을 겪을 때 타개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외국인 학생 유치 확대와 성인 학생 확대 정책’이며, 당시 이 정책으로 많은 성과를 봤다.
(3) 지방대학의 수도권(특히, 경기 북부)으로의 이전 또는 분교 설립
최근 일부 사립대학은 수도권의 신도시(남양주, 하남 등) 지역과 인천, 그리고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떠난 자리인 경기 북부 도시(의정부, 동두천, 파주, 양주 등)로 이전 또는 분교를 설립하고 있다. 현재 13개교가 추진 중이며, 그중 일부는 이전 절차를 완료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수도권의 인구 및 산업의 집중을 막는 ‘수도권정비계획법’과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된 공간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므로 한계가 있다.
(4) 몇몇 지방 사립대학에서 학생 유치를 위해 모든 신입생에게 장학금을 줘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있다.
(5) 정부는 지방 의대, 치대, 한의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지역인재 선발이 50%를 넘으면 지역인재 장학금을 보조하고 있다.
(6) 부산, 대구 등 광역 지방정부는 산학협력 차원에서 대학과 창업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은 공간과 전문가를 지원하고, 지방정부는 예산을 지원하는 형태이다.
(7) 기초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지역 사립 전문대학 발전을 도모하지만, 사립대학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8) 국회는 지역 소재 공공기관과 상시 근무자 300명 이상 기업의 신규 채용인원 중 지방대 출신 학생을 35% 이상 채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약칭: 지방대육성법과 시행령 참고). 참고로 울산의 경우, 신규 지역인재 채용자 100여 명 중 약 90%가 울산대 출신으로 동문의 세력화로 인해 조직 운영에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지방대학 지원 정책 수립 시 유의점
지방대학 발전이 지역경제 발전을 견인하기보다는 지역경제 성장이 그 지역에 소재한 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지방대학 졸업자가 수도권으로 이동하여 취업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지방대학 지원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할 인력을 양성한다는 중앙정부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지방대학 졸업자의 약 1/3은 서울지역에 취업하며, 수도권에 취업하는 비율은 절반을 약간 상회하고 있다. 즉, 지방대학 졸업자를 해당 지역의 노동력으로 간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지방대학 육성을 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중앙정부의 전략이 갖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둘째, 실제로 지방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다수는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수도권 학생들이 지방대학에 입학하지만 졸업 후 수도권 지역으로 취업해 다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수도권 출신 학생은 수도권으로 취업해 돌아가기 때문에 지방대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유인이 낮다.
이와 같이 지방 사립대학의 발전이 지역경제의 발전을 견인하기는 어렵지만 지방 사립대학의 폐쇄는 지역경제와 지역사회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소멸한 지방(홋카이도의 중부에 위치한 유바리 도시)과 관광 사업으로 부활한 지방(나가노현의 마노우치정)도 있다. 호주의 경우 지방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졸업 후 1년 국내 취업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인구가 적고 국토가 넓은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정책이다.
향후 대학은 기술개발과 훈련 위주의, 새로운 형태의 작은 네오 부띠끄(Neo-Boutigue) 대학의 증가가 예상된다. 예를 들어 ‘미네르바스쿨’(2011년 설립)과 같이 국제사회의 경험을 중시하거나 ‘에콜42’(2016년 설립된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교, 교수와 교재가 없고 학비가 무료)와 ‘42서울’(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9년 세운 한국판 ‘에콜42’) 등과 같은 좋은 사례가 있다.
특히 현재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분야의 발전은 이 분야의 인력을 대규모로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회는 정부의 평가와 지원에 앞서 지방 사립대학이 스스로 퇴출하거나 통폐합 또는 새로운 형태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입법을 통해 먼저 열어 줘야 한다.
정부도 지방대학 지원에 앞서 부실대학 통폐합 등을 포함한 구조조정이나 AI 분야와 같이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분야의 대안학교 형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방 사립대학을 유도해야 한다.
프로그래밍 개발 기술은 ‘에콜42’나 ‘42서울’과 같이 해당 분야 커리큘럼이나 교수가 없어도 학생 스스로 익힐 수 있다. 기존 대학의 기준으로 보면 부적합한 모습이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대학은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초기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면 진학이나 취업을 하지 않고 실업 상태로 있는 고교 졸업생을 유인할 수도 있다.
지방 사립대학이 새로운 국제 사회 변화의 추세에 맞춰 스스로 변신할 수 있는 자유와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정부와 국회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와 같이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와 국회는 지방 사립대학이 가만히 앉아 폐교당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보다 새롭게 변화를 모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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