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일본 내에서는 ‘차기 총리’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다. 그것도 ‘누가 될 것인가’가 아니라 ‘그가 될 것인가’라는 식의 추측이다. 자민당 주류 계파 소속이고, 세습 정치인이면서도 기존 질서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주류 정치인과 달리 대중적 인기가 상당히 높다. 바로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 장관이다. 그가 만약 차기 총리가 되면 현재 일본에서도 말이 많은 ‘일본식 내각제’를 바꿀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3월 23일 고노 다로 장관이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그에 대해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내놨다. 트위터 등 SNS에서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거침 없이 차단(Block)을 한다고 해서 붙은 ‘블록 고노’라는 별명이나 아베 신조 전 총리보다 더 우익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고노 다로 장관이 왜 차기 총리로 거론되느냐에 대한 분석이었다.
지난해 9월 출범한 스가 정권이 불과 5개월 만에 지지율이 하락하고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가운데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유력한 정치가로 꼽힌 것이 고노 장관이었다. ‘레이와(令和)의 주도자’를 자칭하고 나선 고노 장관은 스가 정권에서 3개의 장관직을 맡고 있다. 행정개혁담당 장관, 국가공무원제도담당 장관, 그리고 내각특명담당 장관이다. 내각특명 임무에는 센카쿠 제도와 북방열도 대책, 코로나 백신접종, 규제개혁이 포함돼 있다.
이 중에서 백신접종은 당장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난 3월 7일 교도통신은 고노 장관이 미국 화이자와 백신공급 협상을 하려다 “당신 말고 총리 오라”는 면박을 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일본의 백신공급 상황은 그리 좋지 않으며 주사기 또한 부족하다. 하지만 의외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고노 장관의 인기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한다.
이미 코로나 백신접종을 담당하는 장관으로 타무라 노리히코 후생노동성 장관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성 장관이 있음에도 고노 장관을 세 번째 백신접종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백신공급을 제때 하지 못한 스가 정권에 대한 비난을 그의 대중적 인기와 기대감으로 줄여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2차 세계대전과 패전 겪은 부친…새로운 일본 꿈꾸는 고노 장관
마이니치신문이 특집기사에서 인터뷰한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 교수의 말에서도 이런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나카지마 교수는 “스가 정권의 장관 임명은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했다기보다는 당내 권력 게임을 통해 했던 것”이라며 “현재 코로나 대응을 하는 뱃사공이 3명이나 되는 바람에 고노 장관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나카지마 교수는 고노 장관이 정치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부친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 그리고 자민당 내 두 번째 계파인 아소파 소속이면서도 온건 성향인 간 나오토 전 총리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노 가문은 오래 전부터 가나가와현의 유지였다.
고노 장관의 부친은 자민당 총재를 지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이다. 고노 전 의장은 외무성 장관, 관방장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관방장관이던 1993년 8월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지배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고노 장관의 조부 고노 이치로는 부총리와 자민당 간사장을 지냈고, 종조부 고노 겐조는 참의원 의장을 지냈다. 고노 장관의 모친은 이토추 상사·마루베니 상사 창업자의 손녀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재벌가’ 출신이다.
이런 점만 보면 고노 장관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성 장관처럼 가문의 후광을 업고, 부친의 정치 기조를 답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노 장관은 그의 부친과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고노 요헤이 전 의장은 1967년 중의원에 첫 당선,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록히드 사건 등을 거치면서 금권정치 등을 비판하며 자민당을 떠났다가 다시 복당, 1993년 자민당 총재를 맡았다. 그는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과 패전 등을 겪은 탓에 일제가 아시아 지역에 끼친 피해에 대해 사죄하고, 무력 증강이나 긴장보다 군축을 지향하고 대화와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의의 온건파 정치인이다.
반면 고노 장관은 1981년 게이오기주쿠 대학에 입학했다가 2개월 만에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다. 조지타운 대학에 진학하는 것부터 전공 선택까지 모두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전해진다. 졸업 후에는 후지제록스에서 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다 귀국한 뒤 1996년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정권이 출범한 해다. 전후 미국에 굽실대며 기득권을 챙기던 구태를 벗어나 지금과 비슷한 ‘신우익’ 세력이 꿈틀대던 때가 하시모토 정권 시절이다. 나카지마 교수는 “고노 장관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는 행정 개혁과 규제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열도개조론과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던 때였다”며 “이런 환경은 그의 부친이 정치에 입문하던 때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고노 장관은 현재 일본 정치권의 ‘세습 정치’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카지마 교수는 “그는 ‘세습 의원’이라고 불리는 것을 매우 혐오하는데 아무래도 부친을 깊게 존경하면서 동시에 콤플렉스도 있는 것 같다”며 “부친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외무장관 시절 한국에 대해서만은 유달리 강경하게 대응하는 장면 등이 바로 부친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 같다며 나카지마 교수는 “가문의 후광을 업기 싫어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부친의 존재를 너무 의식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고노 장관은 외무장관 시절인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고, 이때 남관표 당시 주일대사를 초치해 해명을 듣다가 말을 끊으면서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한국 측 주장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해 8월 16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두고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할 리더십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노 담화’를 내놓고 늘 한국에 유화적이던 부친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고노 장관이지만 그렇다고 부친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고노 요헤이 전 의장이 C형 간염을 앓았을 때 고노 장관은 간이식을 해줄 정도로 가족애가 깊다고 한다. 한 자민당 관계자에 따르면 고노 장관과 부친은 서로의 주장과 정치 노선을 존중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정치계에서 볼 때는 ‘이단아’인 고노 장관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설명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 3월 22일 기준 고노 장관의 트위터 팔로워는 230만 명에 달한다. 이는 그동안 팔로워 최다 기록을 갖고 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223만 명을 뛰어넘는 숫자다. 지난해 9월 스가 정권 출범 당시 170만 명이었던 팔로워가 5개월 사이에 50만 명 늘어난 것이다.
일본 트위터에서는 내각 장관들이 레드카펫에 늘어선 사진을 두고 “타로를 찾아라”거나 “안경에 짙은 눈썹 남자를 찾아라”와 같은 게임도 벌어진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자신과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자신이 불편한 게시물을 들이대는 사람은 거침없이 차단해 ‘블록 다로’라는 멸칭까지 붙었다는 국내 언론의 비판과는 거리가 있다.
나카지마 교수는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고노 장관은 자신들과 같은 분위기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일본 젊은이들에게 트위터 같은 SNS는 단순한 정보를 공유하고 홍보하는 곳이 아니라 감정과 분위기를 공유하는 곳인데 고노 장관이 이를 잘 활용하니까 좀 재미있는 아저씨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는 게 나카지마 교수의 분석이었다.
사회심리학적인 요소도 고노 장관이 인기를 끄는 원인 중 하나라고 나카지마 교수는 설명했다. 고노 장관이 TV나 SNS에 자주 노출되면서 친근감이 생기고 이것이 인기로 이어지는 ‘노출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나카지마 교수는 “그러나 TV와 SNS를 통해 고노 장관을 보고 호감을 갖는 젊은이 대부분은 그가 신자유주의자임을 알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성향을 알면 젊은이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뉘앙스였다.
일본 좌우 모두 경계하는 고노 장관…이유는 ‘관료주의 혁파’
나카지마 교수는 고노 장관이 추구하는 정책의 핵심은 일본 사회의 기득권층을 혁파하고, 모든 것을 국가에 기대지 않고 개인이 개인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신자유주의라고 설명했다. 이는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주장했던 ‘자조주의’와도 일맥상통하며, 정부의 구태의연한 규제를 없애고 기업과 개인의 자유도를 높이는 것과 일치한다고 나카지마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관료주의로 인한 갖은 부패와 낭비를 줄이고 ‘전례’만 따지는 관료주의를 부수려는 것도 고노 장관이 지향하는 바라고 나카지마 교수는 강조했다.
실제 고노 장관은 지난해 8월 일본 황실전범과 관련해 자민당 주류와는 다른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당시 여성 왕족은 천황(일왕)이 될 수 없다는 황실전범을 뜯어 고쳐 여왕이 즉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의 주권은 천황에게 속한다”고 주장하는,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진영과 자민당 주류세력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고노 장관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개방적인 시장경제는 일본 우익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슷한 시기 고노 장관은 행정기관에서 결재 도장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지금도 인터넷 뱅킹과 신용카드 사용이 쉽지 않은 일본은 행정기관부터 결재를 할 때마다 도장을 찍어야 했다. 서명 대체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고노 장관은 도장 없애기를 강행했고 현재 진행 중이다. “할 수 없다”나 “어쩔 수 없다”며 관례만 따지고 대중 여론에 기대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치권에서는 이런 그를 상당히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민당 내부에서는 고노 장관이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설령 그가 차기 총리가 된다고 해도 스가 총리나 아베 총리의 궤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자민당 관계자는 “인기만으로 총리가 될 수 있다면 이시바 시게루 정권이 벌써 탄생했을 것”이라며 고노 장관의 대중적 인기가 그의 집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나카지마 교수는 “고노 장관의 당내 기반이 좀 약하지만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무당파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집권했던 것처럼 차기 총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대기업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 반면 자살하는 빈곤층은 증가하는 현실에서 고노 장관의 신자유주의식 정책은 시대를 역행하는 게 되지 않겠느냐”고 나카지마 교수는 덧붙였다.
자민당 관계자나 전문가가 고노 장관의 집권 전망을 낮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계파 정치다. 지난해 9월 아베 전 총리가 물러나기 전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나서 계파 간의 표 조정을 했다. 그렇게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성 장관이 이끄는 계파와 다케시타 계파, 호소다 계파가 합의해서 스가 요시히데 정권을 출범시켰다. 일본 정치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75년 동안 이처럼 계파 간의 조정을 통해 차기 정권을 만들어 왔다. 이 때문에 특출난 정치인이 나타나도, 주변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정당이 출현해도 자민당의 ‘관례’ 때문에 뭔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을 사실상 지배해온 자민당 내부에는 7개 계파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차기 정권을 만들 때는 자기네 계파 인원을 참여시키기 위해 협력한다. 또한 의회 해산과 총선 실시를 할 때 후보 공천에도 계파를 먼저 내세운다. 그 결과 나온 폐해가 바로 ‘정치세습’이다. 일본의 정치세습은 단순히 자녀도 정치를 한다는 게 아니라 지역구를 물려주는 것이다. 이런 정치세습은 보통 지역 명문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사실상 봉건시대 호족이다.
한국에 대한 망언 때문에 비난을 받는 아소 부총리나 고노 장관, 아베 전 총리는 세습 정치인 가운데서는 그나마 스스로 노선을 정하고 영향력을 키운 사람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성 장관은 세습 정치인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는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기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발언이 기후변화에 대한 답변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일본의 대책이 무엇인가”를 묻자 고이즈미 장관은 “그것에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자들이 “그게 대체 어떤 대책이냐”고 다시 묻자 고이즈미 장관은 “그것을 설명하는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고 답했다. 고이즈미 장관은 또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거나 “여러분, 코로나에 감염만 되지 않으면 옮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을 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줬다. 이런 고이즈미 장관이 현재 일본에서 차기 총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잘 생긴 얼굴 덕분에 인기도 좋다.
모든 세습 정치인이 이런 식은 아니지만 국민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정치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세습 정치인이다. 국민들은 정책이나 이념에는 상관 않고 잘 생긴 정치인, 유력 가문 출신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다.
일본과 닮은 한국…내각제 위해서는 ‘좋은 모델’ 골라야
계파 정치가 고착화되면 관료들도 고인 물이 된다. 현재 일본을 움직이는 것은 관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전 이후 경제를 부활시킨 과거 일본 관료들은 능력이 상당했다. 정치인들이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상황을 수습하던 엘리트 관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온갖 매뉴얼과 프로토콜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일본 관료는 위기 대응과 재무·금융 분야를 제외하고는 ‘관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전자금융시스템이나 전자결제시스템을 아직도 거부하고 있고 관례라는 이름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입법부가 특정 정당에 지배를 당하고 그 정당은 특정 계파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니 관료들 스스로 나서서 개혁을 할 생각을 않는 것이다. 특히 중의원에 비해 권한이 적어 보이는 참의원(상원에 해당)은 일본의 행정부는 물론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대한 인사권까지 쥐고 있어 관료들이 함부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입법부를 장악한 정당의 계파는 선심성 예산과 제도를 통해 표를 얻는 데만 관심이 있다. 결국 관료와 입법부는 퍼주기식 정책을 내놓는다. 이는 거미줄보다 복잡한 규제와 맞물려 국민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지만 실상은 국가가 국민의 모든 것에 간섭하고 챙기는 사회주의가 돼버린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 캐나다 보수당, 호주 자유당, 한국의 국민의힘 등이 가입한 ‘세계민주연합’에 자민당이 가입하지 않는 이유도 지향점이 달라서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다. 특히 지난 7~8년 사이에는 개헌 주장이 거세게 몰아쳤다. 영국, 호주, 캐나다 등과 함께 일본의 사례도 내세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일본을 베끼는 내각제는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일본처럼 ‘내각제’를 목표로 한 거대 여당이 출현할 경우 자민당과 같은 악폐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계파 정치, 세습 정치인, 정치권과 관료의 유착 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일본에서 수시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했던 사례를 지적한다. 정치적 또는 국가적 문제가 생기면 내각이 정책 실패에 책임을 진다는 명분을 앞세워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정권의 임기는 수시로 변했다. 그렇게 해서 뽑은 내각 또한 계파 비율만 바뀌었을 뿐 거의 자민당이었다. 한국 정치권은 보좌관과 비서관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학연·지연 등으로 얽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면서 그 문제점을 낱낱이 살펴보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인 가운데 일본식 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국민과 자신들은 ‘다른 계급’이라고 생각하며 대대손손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태를 계속 보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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