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쿠팡이 던진 우리의 자화상
[심층분석] 쿠팡이 던진 우리의 자화상
  •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 승인 2021.03.04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으로 간 쿠팡, 우주로 간 테슬라

쿠팡이 2021년 2월 12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한 신고서(registration statement)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nited State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에 제출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유니콘 기업의 눈부신 성과다.


쿠팡은 우리나라 유통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경쟁으로 아침거리 걱정이 사라졌다. 첨단물류시스템으로 하루 배송이 일상화됐다. 다른 걱정 없이 좋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쿠팡의 경쟁력은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매출액은 2018년 1분기 9억 달러에서 2020년 4분기 38억 달러로 3년 동안 4배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국민의 손발이 묶인 상황에서 전자상거래는 국민의 생명줄 역할을 했다. 적폐 청산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십 년 근무한 공기업에서 쫓겨난 사람도 쿠팡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잘못된 정책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쿠팡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우리와 함께 했던 쿠팡이 왜 미국에 상장하려는가.


13조25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연간 매출 증가율이 90%가 넘는 성장주의 기업 가치는 얼마일까? 월스트리트저널은 쿠팡의 기업 가치가 55조 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보도했다. 쿠팡이 우리나라 거래소에 상장된다면 시가총액 기준으로 단숨에 5위의 자리를 차지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나라 유통시장에서 16조31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은 3조3522억 원 정도다. 쿠팡이 우리나라에 상장했을 때 얼마의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값을 받을 수 없을 것은 분명하다.

쿠팡의 배송차량들.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이 국내 증시 대신 미국 뉴욕증권거래서 상장을 택하면서 한국 증시에 하나의 큰 사건으로 인식된다. /연합
쿠팡의 배송차량들.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이 국내 증시 대신 미국 뉴욕증권거래서 상장을 택하면서 한국 증시에 하나의 큰 사건으로 인식된다. /연합

쿠팡의 꿈을 담을 수 없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쿠팡은 이번 상장을 통해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는 2019년 3조5000억 원, 2020년 4조7000억 원 정도다. 쿠팡이 우리나라에서 상장을 도모했다면 과연 예상한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지 의문이다. 다른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쿠팡이 상장을 시도하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기업들이 신규 상장으로 2020년 818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단일 기업이 조달한 최대 자금 규모는 40억 달러다. 결국 쿠팡이 제값을 받고 순조롭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시장은 미국 시장일 수밖에 없다.


쿠팡은 오래 전부터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을 꿈꿨다. 일단 쿠팡의 자금 조달 창구는 Coupang, LLC로서 미국 델라웨어에 있다. 창업기업이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첨단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비가 소요된다. 새로운 시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 장시간의 영업손실도 감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투자환경에서 죽음의 계곡에 빠진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20여 년 전 경험했던 닷컴 버블의 문제점이나 일부 벤처 창업계의 문제점들은 아직도 완전히 시정되지 않았다. 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접목된 시장은 아직 성장하지도 않았는데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한 성급한 전략들이 구사된다. 쿠팡이 자금 조달 창구를 우리나라에 만들었다면 현재와 같은 성장은 불가능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쿠팡의 2020년 매출총이익은 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92.3%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규모의 영업 순손실이 누적되고 있다. 이러한 기업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VF Investments (UK) limited) 등 굵직한 투자회사들이 투자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2015년 10억 달러, 그리고 2018년에 추가로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경영 판단을 무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영업손실이 누적되는 회사에 투자한다면 횡령이라는 죄명이 언론에서 오고 갔을 것이다. 해외 투자회사들은 쿠팡의 경영 전략을 믿고 쿠팡의 미래에 투자했다. 과연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쿠팡의 사례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실체가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학문적으로 규명되지도 않은 것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옥죄어 왔다. 가장 오용되는 말이 지배구조이다. 기본적으로 지배구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서 나오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지배구조의 성패는 기본적으로 주주가 효과적으로 경영을 어떻게 지배하느냐의 문제로 귀결한다.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터무니 없는 조치들은 지배구조 개선과 거리가 멀다.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소액주주의 이해가 증진되는 것이 아니라 차상위 주주인 펀드의 권한이 강화된다. 지배주주가 경영을 통제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늘리고 기업을 키울 이유가 사라진다. 기업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쿠팡이 우리나라에 상장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소액주주운동의 허울을 쓰고 몇몇 펀드들이 경영에 관여하려고 한다. 정책 당국은 차등의결권으로 경영 안정을 도모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는 커녕 오히려 기업의 운명에 치명적인 정책으로 기업의 성장을 막고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쿠팡의 상장 과정에서 주주이면서 경영자에게 차등의결권을 부여했다. 창업 경영자에게만 29배의 의결권을 부여함으로써 경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회사가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창업 경영자의 열정을 인정했다. 투자회사가 창업자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단기적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선언이다. 기업 가치를 지키는 첩경이기도 하다.


경영권에 대한 보상체제도 우리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쿠팡은 지배주주들이 경영자들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차등의결권으로 경영권을 굳건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경영 능력에 상응하는 보상체제를 마련하고 있다. 스톡옵션 문제는 주주가 결정할 문제다. 쿠팡과 같은 벤처기업에서는 경영자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도 기업 가치를 올리는 정도에 비례하여 경영권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론에 휘둘리고 정치권에 아첨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혁신을 도모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영자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쿠팡의 가치는 누가 대변하는가, 김범수인가, 손정의인가, 아니면 이 둘의 합작인가.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가장 실질적이고 당면한 문제는 정부 정책이다. 쿠팡이 제출한 신고서에서도 밝혔듯이 기업 가치에 영향을 주는 위험요인으로 정부 정책이 나열됐다. 경영진이 현재까지 성공했던 전략을 그대로 추진하면서도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기업의 가치를 올린다. 우리나라의 각종 규제와 경영자 처벌 규정으로 인해 경영자들이 자신의 직·간접적 책임으로 경영에서 배제될 수 있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는 원인이다. 우리의 정책이 해외에 상장하는 쿠팡의 가치까지 하락시키고 있다.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이유에는 대주주 차등의결권 보장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이유에는 대주주 차등의결권 보장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우리의 자화상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지배구조의 문제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문제로 변화했다. 지배주주의 경영권 장악은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아니다. 지배주주의 경영권 제한 정책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야기하는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 국민연금이 경영에 개입하고 편향된 시민단체들이 경영에 훈수를 둔다. 향후 법을 개정해서 기업이 시민단체에 돈을 주면 세금도 깎아준다는 소문도 돈다. 정부가 배당에 관여하고, 지배주주의 통제력을 약화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이 모든 것들이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번 쿠팡의 사례는 주주의 경영권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고, 차별의결권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기업 가치 제고에 긴요한 요소임을 말해준다.


괴벨스의 주장대로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되는가. 펀드의 단기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적 주장이 옳은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저배당 성향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주장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느 교과서에도 없는 주장이다. 배당을 많이 하면 사내유보금이 줄어들어 기업의 성장 역량이 둔화한다.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은 수익성 높은 투자 기회를 찾지 못한 기업일 뿐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배당과 기업의 가치는 큰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치가 오늘날과 같이 커진 것은 내부자금과 외부자금을 동원하여 투자를 늘렸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고 떠날 펀드에게는 배당이 좋을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이든 지배주주이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모든 주주에게 손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합리한 기업 정책 풍토도 문제다. 기업 전략과 경영 판단, 기업의 가치평가가 불법이라고 기소하는 나라다. 2016년 1월 1일부터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했으나, 시장의 판단보다 도식적인 규정이 우선이다. 정부의 도식적 규정에 어떤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가. 글로벌 자금을 받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인정받은 경영 능력에 대한 보상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가 나온다. 쿠팡이 외국기업이라는 이야기는 약방의 감초처럼 나온다. 우리의 제도와 시장에서는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페이스북’보다 먼저 나온 ‘아이러브스쿨’, 애플의 ‘아이팟’보다 먼저 나온 ‘아이리버’, 이들의 운명은 왜 달라졌는가. 


재벌 타도만 부르짖는 일부 시민단체들, 이론적 실증적 엄밀성을 외면하고 곡학아세하는 일부 지식인들, 남이 이룬 성과에 묻어가려는 자본시장, 정치에 휘둘리는 정책 당국 등 모든 참여자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 시장에서 크지 못한 벤처기업들은 쿠팡을 따르라. 쿠팡이 선택한 전략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길잡이다. 벤처기업들은 조변석개하는 정부 정책에 기대지 말고, 해외에 자금 조달 창구를 만들고 해외에 자신의 기술과 경영 전략을 홍보해야 한다.


시민단체로 포장을 했든, 노동조합으로 포장을 했든, 언론으로 포장을 했든, 기업에게 무엇인가 요구하는 세력들은 정치 세력에 불과하다.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이유는 기업이 정치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경영환경이 정책에 의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다 보니 기업들도 정치에 민감해졌다. 이제 기업들이 본연의 경영에 충실할 수 있도록 우리의 경영환경과 자본시장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쳐야 한다. 


경제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은 경영 능력이다. 뚝심 있게 난관을 헤치면서 성공한 비결은 경영 안정에 있었다. 이제 경영권을 넘보는 세력들이 너무 많다. 정말 일자리를 원하고 경제가 다시 도약하기 바란다면 경영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차등의결권과 같은 제도의 도입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경제가 침체하는 나라의 국민은 다른 나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우리의 자본시장이 잘못되면 기업들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쿠팡의 사례를 교훈 삼아 기업 경영 환경을 개혁하기 바란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