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신간]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12.03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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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현실 사이에서 사람을, 사회를, 세상을 보는 일

6년 차 국선전담변호사인 저자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국선’에 관한 숱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온갖 크고 작은 범죄들을 다루며 약 2천 명의 피고인을 만나왔다. 국선변호인과 함께할 피고인에겐 조건이 있다. 구속 중이거나 미성년자 혹은 70세 이상의 노인이거나 장애가 있거나 변호인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어야 한다.

성범죄 및 마약범죄 전담 재판부에 배정돼 매달 주어지는 25건 내외의 형사 사건을 살피는 동안 저자의 눈에 밟힌 것은 범죄 자체만이 아니라 국선변호인을 만날 자격을 갖춘 취약 계층이 맞닥뜨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현실이었다.

형사 법정에 선 피고인은 돈이 없어도 변호인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의 뜻은 준엄한데 잘못한 개인에 대한 당연한 처벌 그 너머 취약 계층의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저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의 말을 듣고, 그를 둘러싼 가족과 소외된 이웃과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장발장법 폐지를 이끌어낸 변방에 선 국선변호인

배가 고파서 빵 하나를 훔쳐도 몇 차례 절도 전과가 있다면 3년 이상의 징역을 처하도록 하는 이른바 ‘장발장법’을 없애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저자는 이력이 조금 특이하다.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5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국선변호인, 그중에서도 형사 사건 외 일반 사건은 맡을 수 없는 국선전담변호사가 됐다.

그는 본인을 변방의 인물이라 여긴다. 짧지 않았던 기자 시절, 큰일이 벌어진 현장에 있기보다 주로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 기사를 작성했고, 지금의 직업을 가지고 나서도 현장이 모두 정리된 후, 때로는 정리가 되고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상황을 수습하는 자리에 있었다. 흔한 말로 ‘폼 나는’ 기자도, 변호사도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기자가 폼 나기만 할 수는 없듯이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흔히 ‘잡범’이라고들 하는 사람의 범죄 사후 뒷수습도 필요하기 마련이고, 이를 도와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저자는 그런 일을 해왔다. 늘 열정에 넘치고, 정의에 들끓고, 변론이 끝날 때마다 보람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전에 신문에서 메인이 될 수 없거나 지면에 다 담지 못하는 기획 취재에 열중했던 것처럼 매번 새로운 피고인을 마주할 때마다 분명 끊임없는 고민을 거쳐 변론을 준비했다. ‘장발장법’ 폐지는 본인이 늘 변방에 있었고, 그래서 누군가는 관심 없는 사안에도 눈을 돌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이뤄낸 쾌거였다.

더 나은 사회로 뻗어 나갈 법 이면에 존재하는 작고 분절된 이야기

한 건의 범죄에는 단순히 법적 제도 안에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수사 기록의 언저리에 피고인의 가족이나 친구, 소외된 이웃, 주변인들이 묵묵히 서 있고(1장), 형사와 민사, 기소와 불기소와 같이 모든 사안을 뚜렷하게 구별해놓은 법과 달리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삶이 존재하고(2장), 특정 범죄에 대한 재범, 누범으로 너무나 당연한 처벌을 받은 개인 뒤에 이를 막을 만한 제도를 갖추지 못한 사회가 있고(3장), 세상 모든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한 직업인으로서의 성찰이 있고(4장),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과 현실 사이에서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이 있다(5장).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범죄는 각종 언론 매체를 가득 채운다. 형사 재판과 관련된 소식을 전해 듣는 것 또한 낯선 일이 아니다. 전직 검사도, 전직 판사도, 전직 대법원장도, 심지어 전직 대통령도 피고인이 되었다. 하지만 국선변호인이 변론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작게도, 크게도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그 속에 더 깊이 숨은 생각거리를 타인과 나누는 역할을 자처하는 자리에 국선변호인이 있다. 그 꼭꼭 숨은 이야기에는 “국선변호제도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방법”이 있을 수도, “더 크고 구조적인 ‘악’에 대한 대책”이 있을 수도, “범죄에 취약한 계층의 자립을 돕는 방안(274쪽)”이 있을 수도 있다.

저자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는 이렇게 작고 분절된 이야기밖에 할 수 없지만, 우리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은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내 그 안에서 우리 사회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의’ 경계를 조금씩 넓힐 수 있(274~275쪽)”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이야기의 힘을 믿듯이 결국 법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게 하는 공동의 이야기로 확장될 것을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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