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위한 제언 - 북한인권 가해자에 국제적 압박 높여야
북한인권을 위한 제언 - 북한인권 가해자에 국제적 압박 높여야
  • 이정훈 미래한국 고문·연세대 교수
  • 승인 2019.08.2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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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Commission of Inquiry) 보고서의 핵심은 북한의 3대에 걸친 수십 년간의 조직적 인권 탄압이 ‘반인도 범죄’로 규정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 보고서는 유엔헌장 제7장의 안보리 권한을 바탕으로 북한 내의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유례없는 결론을 내렸다. 이 상황이 그 당시 북한에 얼마나 큰 압박이 되었는지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인권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응은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이라는 명분하에 계속 강화되었다. 일찍이 대니얼 골드하겐 하버드대 교수가 홀로코스트의 책임이 히틀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침묵한 독일인 전체에게 있다는 주장을 펼친 지 20년 만에 국제사회가 뒤늦게나마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을 깨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마이클 커비 위원장은 북한인권 범죄가 홀로코스트 범죄를 연상시킨다는 파격적인 비교까지 했다. 그런데도 국내의 일부에서는 아직도 북한인권을 논하는 것 자체를 내정간섭, 실효성 부재 등의 이유로 집요하게 반대하고 있다. 통일 후 북한 주민에게 어떻게 변명할지 궁금할 뿐이다.

북한인권 문제는 이제 남북관계 차원을 넘어선 난민, 기후변화, 핵확산 등에 버금가는 국제적 이슈이다. 즉, ‘보편적 가치’의 원칙하에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변화 없이는 실질적인 인권 개선이 어렵다는 인식 역시 확산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책임 추궁을 통한 북한인권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지 유엔은 마음만 먹으면 북한 체제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방안들을 갖추고 있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이 방안들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2014년 2월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인권 상황에 관한 최종 보고서를 공개한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 그는 북한인권 관련 유엔 권고사항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4년 2월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인권 상황에 관한 최종 보고서를 공개한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 그는 북한인권 관련 유엔 권고사항이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은 내정 간섭이 아닌 국제 레짐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동시에 전쟁범죄, 제노사이드 등 잔혹하고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권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600만 유대인의 대학살에 대해 국제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라는 끔찍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진 독가스실 학살, 생체실험, 고문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국제사회가 느낀 강한 혐오감은 바로 뉘른베르크 재판, 극동국제군사 재판, 그리고 세계인권선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일찍이 연합 진영이 강조한 4개의 기본적 인권 분야, 즉 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 공포로부터의 해방(Freedom from Fear), 종교의 자유(Freedom of Religion),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와도 일맥상통한 결과였다.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차원에서 추진된 국제인권운동은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을 1948년 12월 10일 채택하면서 강화되기 시작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정신이 담긴 이 선언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권리를 명시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구속력 있게 만들기 위해 유엔은 1966년 국제인권규약(International Covenants on Human Rights)을 채택해 세계 최초의 법적 구속력을 가진 인권 관련 국제법을 탄생시키게 된다.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유권자 운동 출정식’에 전시된 북한의 공개처형 그림.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유권자 운동 출정식’에 전시된 북한의 공개처형 그림.

국제형사재판소 적극 활용해야

1945년 이래로 현재까지 여러 국제인권조약들이 채택되고 관련 기구들이 생겨나면서 지구촌의 다양한 인권 문제는 법적인 측면에서나, 때로는 군사적인 차원에서 다뤄지면서 인권 논의는 계속해서 발전되어왔다. 국제조약과 관습법들은 나름 인권 유린에 맞서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안보리 827호에 의해 1993년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의 설치, 그리고 안보리 955호에 의해 1994년 르완다 종족분쟁 및 제노사이드 책임자 처벌을 위해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The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가 설립된 것이 좋은 예다.

뿐만 아니라 남아공의 인종격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위해 유엔 총회가 결의안 1761호를 채택하고, 국제사회가 포괄적인 보이코트를 실행해서 결국 1994년에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쾌거 역시 인권을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세계인권선언문의 30개 조항 모두를 위반하고 있는 북한은 수십 년 동안 유엔의 인권망을 용케도 피해왔지만 21세기를 진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3년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을 시작으로 유엔인권이사회는 2013년에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설립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게 된다.

COI 보고서는 1년간의 광범위한 조사 끝에 마련된 북한인권에 있어서 이제까지 가장 포괄적이며 공신력 있는 보고서이다. 특히 이 보고서의 권고안에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유엔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책임 추궁 장치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실효성을 따지기 전에 북한 상황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유엔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가장 효과적인 압박 수단은 COI가 제시한 북한 지도층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일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반인도범죄, 집단학살, 전쟁범죄 등의 대규모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로마규정을 근거로 2002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상설 재판소이다. 북한은 로마규정의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ICC 사법권 적용이 불가하다.

그래서 사법권 적용을 위해 COI는 유엔 안보리 결의 및 회부를 권장한 것이다.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이 문제지만 2005년에는 다르푸르, 그리고 2011년에는 리비아를 상대로 안보리가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북한의 ICC 회부 여부도 꼭 부정만 할 것은 아니다.

유엔의 보호책임원칙(R2P) 작동도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치이다. 이 개념은 국가가 자국민을 지키기는 커녕 자국민에 대해 인종청소 같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등 자국 시민을 보호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경우 국제사회가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국제규범인 R2P는 2011년 리비아 사태 때 리비아 국민을 무아마르 카다피의 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발동된 적이 있다. 북한의 경우는 실행 가능성이 낮지만 명분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된다.

평화에 대한 위협, 파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역할이 거부권 때문에 좌절될 경우 유엔 총회가 집단적 조치를 권고하는 방안도 있다. 유엔 총회 결의 제377호(평화를 위한 통합 결의· Uniting for Peace resolution)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1950년에 채택되었다. 북한인권 상황은 국제평화를 위협한다고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엔 헌장 22조에 따라 총회 산하에 재판소와 같은 특별기구 설치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보편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 역시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을 압박할 수 있는 한 수단이다. 반인도적 국제범죄에 대해 어느 나라에서도 재판 관할권이 인정된다는 것이 보편관할권의 취지이다. 지난 2005년 스페인의 보편관할권 원칙에 따라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는 칠레의 전 군사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을 기소한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도 기소한 바 있다.

세계적인 극악 범죄는 어느 곳에서든 재판이 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이 제도는 북한 지도층에도 적용이 물론 가능하다. 문제는 누가 할 것인가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가르손 판사 같은 인물이 언젠가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타이드 인종분리정책은 1994년 종결되면서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 아파르타이드 캠페인이 있었다. 남아공은 1980년대 내내 국제사회로부터 스포츠, 문화, 투자, 경제, 외교 활동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제재·보이콧의 대상이었다.

이정훈 미래한국 고문·연세대 교수
이정훈 미래한국 고문·연세대 교수

유엔에서도 20년 동안 모든 위원회 등 활동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남아공 정부는 결국 국제사회의 압박에 승복해 정권교체를 허용하게 된다. 우리가 북한을 다루는 상황과는 180도 다르다. 반인도범죄를 일삼는 북한에 평화와 민족이라는 구호에 가려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인권을 무시하는 반국가적이고 반통일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렵겠지만 지금이라도 북한인권을 핵심 국정 목표로 설정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5가지이다. 첫째, 세계인권선언문 정신에 부합한 인류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둘째, 유엔이 북한인권 상황을 반인도 범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셋째, 인권외교를 통해 소프트파워로의 비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넷째, 인권은 핵과 달리 주도권 확보가 가능한 통일정책의 주춧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째, 올바른 인권정책으로 떳떳하게 통일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시도하는 북한 체제 변화는 곧 통일을 앞당길 촉매제가 될지도 모른다.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을 필요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올바른 대북 인권정책 마련이 북한 주민의 기본인권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 자유·민주적 통일을 촉진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엔이 앞장선 지금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우리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검토 및 전략이 시급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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