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무너지는 한국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슈분석] 무너지는 한국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 김태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승인 2019.05.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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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군은 영혼 없던 베트남 군대화 되고 있다

한국군이 무너지고 있다. 군대 붕괴 현상은 병사에서 장관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에서 현재진행형이어서 ‘싸워 이기는 군대’라는 구호가 무색해지고 있다. 돈이 없거나 장비나 물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선은 시대와 세태 그리고 군 문화의 변천이 군의 유약화와 웰빙형 사건 사고들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군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진 정치권이 군사 문제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빚어지는 사태들과는 비교될 수 없다.

그 결과,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이 늘어나고 있고 간부들은 승진과 봉급에 매달리는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어 가고 있으며, 국방의 최고 책임자는 무수한 장병들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서해 도발들을 ‘남북 간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백만 명 이상을 희생시키고 삼천리 강산을 피로 물들인 북한의 6·25 도발은 ‘남북 간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큰 충돌’쯤 되는 것이고, 히틀러의 유럽 침공도 ‘독일과 주변국간의 불미스러운 충돌’이 되는 것인가? 분단이 해소되지 않았고 북한군이라는 상대가 있는데도 이래도 되는 일인지 모를 일이다.

한국군 붕괴 현상은 병사들의 유약화(柔弱化) 및 군 기강 해이, 군 간부들의 무사안일 보신주의 행태와 일탈, 정치인들의 ‘문민통제’에 대한 몰이해 및 군사문제 개입으로 인한 군 운영의 왜곡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현상들을 방치하게 되면 군의 전투력 약화와 붕괴가 초래되고 결국에는 망국(亡國)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자 남베트남군이 버리고 간 군복과 군화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자 남베트남군이 버리고 간 군복과 군화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병사들의 유약화(柔弱化) 및 일탈

근년 들어 병사 봉급이 크게 오르고 복지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다. 가난했던 시절 한국군 병사들은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면서 사회와 단절된 군생활을 강요당했고, 가혹행위나 인권침해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편지 말고는 마땅한 연락 방법이 없었던 시절 어머니들은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올 때까지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어 까맣게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그랬던 병사들이 수십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원하는 때 휴가를 갈 수 있게 되었고 외출·외박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일과 후 휴대폰 사용과 개인용무 외출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일과 후 병사들을 게임방으로 실어나르는 군용버스를 운용하는 군부대도 있다.

병사들의 유약화와 군 기강 붕괴 및 이로 인한 일탈 행동은 병영복지 향상 및 인권 개선에 수반된 반갑지 않은 현상으로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훈련 중 발생하는 사고를 이유로 강훈이 사라지고 있으며, 수류탄 투척 훈련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제대하는 병사들도 적지 않다. 부모들이 병사들의 신변 문제에 과도하게 간섭하면서 지휘관들이 강한 병사들을 양성하기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외동아들들이 많아지는 추세도 병사들의 유약화 현상에 가세하고 있는데,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전역하는 병사가 매년 6000여 명에 이른다. 군 기강이 이완되면서 개인적인 이유에 의한 탈영, 총기 난사, 자살, 구타 등의 사건들도 많아지고 있다.

군 간부들의 보신주의 및 일탈

무장 탈영병이 동료들을 사살한 2014년 6월 강원도 고성군 육군 22사단의 ‘임병장 사건,’ 선임병들이 집단 구타로 후임병을 숨지게 한 2014년 8월 연천 육군 28사단의 ‘윤일병 사건’ 등이 그런 사례다. 한국군 병력의 2/3를 점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유약화 및 일탈 현상을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군의 전투력은 크게 저하될 것이며, 한국군은 ‘영혼이 없는 군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그리고 베트남전 이후 참전 경험을 축적할 수 없는 시대가 이어짐에 따라, 한국군의 간부들이 평범한 ‘월급쟁이’로 변해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전쟁이 없는 시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리고 안보교육과 강훈이 사라지는 풍조 하에서 한국군의 1/3을 점하는 장교 및 부사관들에게 있어 진급을 하고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장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안보의 간성’이라는 사명감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간부들은 진급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는 사건과 사고들에 대해 지극히 민감한데 실제로 이들의 진급을 무산시키고 군경력을 망실하는 사건 사고들은 매우 다양하다. 부정부패 사건, 성추행 사건, 무기획득 및 방위사업 관련 비리 등의 범죄 행위에 연루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훈련 중 안전사고, 부하들의 일탈 등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한 사고들도 치명적이다. 회식자리에서 술김에 상관에게 저지른 한 번의 실수나 한 번의 음주운전이 이들을 낙오자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군 간부들이 무탈한 군대생활과 진급을 위해 인사권자에게 아부하고 무사안일과 ‘몸조심’에 연연하게 됨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군 문화 속에서 충성심과 용맹 그리고 지력을 갖춘 유능한 간부들이 양성되기는 어려우며 간부들이 강군 육성을 위해 부하들에게 강훈을 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까딱하면 부정부패로 몰릴 위험성이 있는 사업에 종사하는 간부들은 자신의 임기 중에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 하며 이런 움직임은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방위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필요한 무기획득 사업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보신주의가 만연하면 군대는 또 하나의 거대한 행정조직이 되어버린다. 행정조직화 된 군대는 ‘싸워 이기는 군대’가 될 수 없다. 이런 군대에서는 국방비 규모, 첨단 장비, 우수한 군사기술 등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남북 군사분야합의로 인해 전방지역에서의 연대급 이상의 훈련이 중단되고, 유사시 한국군의 신속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있다.
남북 군사분야합의로 인해 전방지역에서의 연대급 이상의 훈련이 중단되고, 유사시 한국군의 신속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있다.

‘정치권’의 군 개입으로 인한 파장과 폐해

시대와 세태 그리고 군 문화의 변천이 초래하는 병사들의 유약화, 간부들의 행정공무원화, 그로 인한 군 기강의 이완 등이 한국군의 전투력을 훼손하는 주요 원인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문민통제에 대한 정치권의 몰이해와 이들의 군 개입으로 인한 폐해는 이보다 훨씬 더 막중하고 광범위하다.

선거로 선출된 민간정부가 군을 통제하는 문민통제의 정착은 지난날 민주화가 가져다 준 소중한 자산이지만, 정권을 장악한 정치세력이 문민통제의 참뜻을 왜곡하고 안보의 공익성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표를 더 중시해 과도하게 군 운영에 개입함으로써 빚어지는 문제점들이 더 심각하다는 뜻이다.

자고로 문민통제란 민간정부가 군이 헌법이 정한 국토수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일탈이 없도록 통제하는 것이지만, 정부 역시 만변에 대비해야 하는 군 임무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군이 본연의 군사논리에 입각해 국방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정론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은 적이 많았다. 이 문제는 특정시대 특정 정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병 복무기간은 24개월에서 21개월로, 그리고 또 다시 18개월로 단축 예정이다. 북한이 핵폐기를 약속한 것도 아니고 공세적·침투적 대남전략을 포기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리고 북한군 병사들이 8년 이상을 복무하는 상태에서 한국군의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는 것은 안보·군사 논리에 맞지 않는다. ‘젊은 표심(票心)’을 사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복무기간 단축을 넘어 ‘무전복무(無錢服務)’에 따른 국민 위화감 조성을 초래할 수 있는 모병제의 조기 도입까지 주장하는 무책임한 만용을 내보이고 있다.

정치가 군대를 망치는 사례는 그 말고도 많다. 정치권이 ‘정치적 표계산’에 민감하여 구보, 사격, 수류탄 투척 등 훈련 중에 발생한 안전사고를 이유로 최고위 지휘관에게까지 과도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군 간부들의 ‘몸조심’ 현상을 부추긴 사례들은 부지기수이며, 군내 부정부패를 일소를 명분으로 ‘대어(大漁) 잡이’ 또는 ‘망신주기’ 식의 수사를 해서 고위 간부들의 복지부동을 부추긴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군생활을 경험해보지도 않은 반군(反軍) 인사들이 주도하는 시민단체들이 ‘군 인권 조사’를 명분으로 군부대들을 들쑤시는 일도 발생한다.

2018년 11월 육군 27사단과 2019년 2월 해군 2함대의 사례에서 보듯, 인권 관련 시민단체가 장병들의 인권을 개선한다면서 군부대에 드나드는 것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했지만, 진급을 위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지휘관들은 이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해군은 제주기지 건설을 집요하게 훼방했던 단체들에 대해 청구했던 구상권을 취하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정치권력을 업은 시민단체들의 재가(?)가 없으면 시급한 안보소요를 위한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군 인사제도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이 역시 특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군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군에는 장성진급 심사에 적용되는 많은 비군사적(?) 기준들이 있다. 출신지역별 안배, 출신학교별 안배, 출신병과별 안배 등 군인으로서의 능력과 무관한 기준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여건에서도 지금까지 한국군이 적지 않은 우수한 장군들을 배출한 것은 그나마 대한민국에 내려진 축복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더해 정치와 이념이 군인사에 영향력을 발휘하면 인사는 더 심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자고로 행정조직화된 군대에서는 인간관계와 아부에 능한 군인들이 진급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충성심, 용맹,지략 등을 갖추고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유능한 군인들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비군사적 기준들이 힘을 발휘하는 군대에서는 아무리 유능해도 운이 나쁘면 진급을 할 수 없다. 정치와 이념이 힘을 발휘하는 군대에서는 열심히 국가에 충성하기보다는 정치세력에 줄을 서는 것이 진급과 출세를 위한 지름길이 된다.

이런 군대에서 넬슨 제독과 같은 맹장이 등장하기란 쉽지 않다. 넬슨은 말썽꾸러기에다 육체적 장애가 있고 여성 문제로 구설수를 달고 다녔지만, 영국은 군인으로서의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해 나폴레옹 연합함대를 막아내는 사령관에 보임했고, 넬슨은 조국을 지켜냈다. “이순신 제독이 지금 한국군에 복무한다면 위관급에서 전역당했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의미하는 바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송영무(사진) 전 장관이 5월 16일 한국국방연구원(KIDA) 세미나 기조발언에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유민주사상에 접근한 상태”라고 말해 또 다시 빈축을 샀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송영무(사진) 전 장관이 5월 16일 한국국방연구원(KIDA) 세미나 기조발언에서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유민주사상에 접근한 상태”라고 말해 또 다시 빈축을 샀다.

남북상생 시대에도 안보정론은 준수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상생을 위해 ‘평화’를 화두로 삼을 수 있다. 분단국인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노력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정론들이 있다. 북한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남북상생 노력과 확고한 안보는 병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북정책의 정론이다.

정치인들이 평화를 외치는 중에도 군은 “평화를 담보하는 방법은 싸워 이기는 태세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정론을 준수해야 하며, 위협이 있으면 대비하고 위협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항상 훈련하여 임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곧 유비무환(有備無患)·백련천마(百練千摩)의 안보정론이다.

정치권은 군이 그렇게 하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군에서는 이런 정론들이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9·19 남북 군사분야합의’로 전방지역에서의 연대급 이상의 훈련이 중단되고 북한군의 동향을 살펴온 대북 감시정찰 비행이 크게 제약되었는데, 이는 유사시 한국군의 신속 대응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장병들의 피로 지켜온 북방한계선(NLL)을 형해화시키면서 서해 도서의 군사적 고립화와 수도권 측방의 전략적 취약성을 초래할 수 있는 서해 적대행위금지수역 문제 역시 심각하다.

이런 합의들은 공자(攻者)와 방자(防者)의 차이점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결코 공정하지 않다. 공자인 북한에게는 항공정찰이나 감시초소들이 없어도 무방하지만 방자인 한국의 눈과 귀를 가리고 손발을 묶는 것은 군비통제 원칙에도 맞지 않는 위험한 일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트럼프 대통령의 상업주의적 동맹정책 간의 합작이 가져온 결과이지만, 이것이 군에 미치는 영향도 메가톤급이다. 사람의 육체가 살아 움직이기 위해 혈액 순환이 필요하듯 군대가 유사시 즉각 대응하는 임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착한 나라’로 변했다는 증거도 없는 상태이기에 더 그렇다. 그것이 곧 안보정론이다. 동맹도 연합훈련이 지속되어야 동맹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동맹정책의 정론이다.

하지만 지금은 3대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훈련, 독수리 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등은 중단·축소되었고, 대규모 연합 상륙훈련인 쌍용훈련도 폐지되었다. 맥스선더, 비질런트 에이스 등의 공군 훈련도 폐지가 유력하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한국군은 미군의 전쟁수행 능력을 습득할 기회가 상실됨은 물론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증원 여부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무위도식 오합지졸이 되며 연합훈련을 하지 않는 동맹은 고사(枯死)하고 말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통해 ‘복무기간 18개월’ 방침을 천명했고, 병력감축, 지상군 사단 숫자 축소, 동원예비군 축소 및 동원기간 축소 등 축소지향적 국방개혁 계획을 밝혔으며, 이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 방침도 밝혔다. 북한의 무력태세가 불변인 상태에서 그리고 중국이 심대한 미래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력을 줄이겠다는 것은 안보정론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지만 어쨌든 정부는 그렇게 하고 있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적극 회피하는 정부의 기조를 옹호하는 전문가들은 “군사력은 양이 아니고 질이다”와 “병력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에 따른 문제는 정예화·첨단화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교과서적 논리를 전개한다. 이런 주장들이 일반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거나 젊은 표심을 살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의 이야기는 상당히 달리진다.

정예화와 첨단화란 “어느 정도까지 해야 충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상한선이 없는 개념인데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문제다. 그럼에도 “군사력은 양이 아니고 질”이라는 말은 첨단화와 정예화의 상한성도 없고 예산 현실성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함부로 외치는 후렴구가 되고 있다. 북한을 의식해 병영 내에서 주적 표현이 사라지고 안보교육도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에서 외쳐지는 ‘정예화’ 구호이어서 더 을씨년스럽다.
 

남베트남 패망을 기억하자

오늘날 한국군 붕괴 현상은 ‘조용한 암살자(silent assasin)’ 처럼 소리 소문 없이 군의 각 계층에서 진행되고 있다. 군 기강이 이완되는 중에 병사들이 유약화되고 있고 간부들은 진급, 월급, 연금 등에 승부를 거는 평범한 ‘월급쟁이’로 변모하고 있다. 세태의 변화와 함께 웰빙형 사건사고들도 늘어나고 있다. 정치권이 인사권과 예산권을 앞세우고 군에게 군답지 않은 행동을 요구하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정치권력과 가까운 민간 시민단체들이 군을 들쑤시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중에 정부는 ‘북한 끌어안기’ 기조를 군에게도 요구하고 있다. 남북의 정치인들이 화해협력의 악수를 나누는 중에도 군과 정보기관들은 부릅뜬 눈으로 북녘을 주시하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국정원이 남북협력의 핵심창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군이 ‘군사합의 준수’와 ‘전작권 조기전환’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군 수뇌부가 평양 정권의 심기를 살피면서 정치인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려고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안보정론에 위배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런 군대에서 주적개념과 강훈이 사라지고 연합훈련도 중단되고 있는 것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렇듯 한국군은 ‘영혼이 없는 군대’로 그리고 ‘싸워 이길 수 없는 군대’로 전락하고 있다.
 

김태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판문점선언 1년, 한국군 전력 약화의 심각성

1959년 쿠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카스트로의 공산군은 고작 5000명이었다. 이에 대항하는 버티스타 정부군의 병력은 10만 명이었지만 부패하고 분열된 오합지졸이었다. 이 내전에서 카스트로군은 완승을 거두고 쿠바는 공산화되었다. 베트남에서도 그랬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철군하면서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휴전 엄수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 남북 베트남,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베트콩) 등 4대 교전당사자, 안보리 상임이사국 4개국, 휴전감시위원국 4개국 등 무려 12개국이 서명했다.

휴전감시위원단 250명이 하노이와 사이공에 체류했고, 북베트남 고문단 150명도 사이공에 머물렀다. 미국은 북베트남에 4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고, 남베트남과 별도의 방위조약을 체결해 북베트남이 평화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을 투입해 남베트남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전투기와 전차를 포함한 막대한 군사 장비도 남베트남군에 넘겨줬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파리평화협정 이후 남베트남은 혼란과 분열의 도가니였다. 수만 명의 공산당원과 첩자들이 남베트남의 정부와 군대, 시민단체, 종교단체, 언론 등에서 암약하면서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 민족주의자 등으로 활동했다. 좌성향 인사들이 ‘진보’로 행세하면서 자신들의 이념 성향을 비판하는 인사들에게 ‘해묵은 색깔론,’ ‘극우’ 등으로 역공을 펴는 오늘의 한국이 이와 얼마나 다를까? 평화 무드 속에서 혼란이 이어졌고 연일 반미·반정부 데모가 벌어졌다.

여중생들이 “사회주의가 답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오늘날의 한국이 이와 얼마나 다를까? 군대도 그랬다. 조국수호 의지나 충성심과는 거리가 먼 부정부패와 일탈이 난무하는 ‘개판’ 군대였다. 도처에 붕괴 현상을 보이는 오늘날의 한국군은 이보다 얼마나 나을까?

남베트남의 분열과 혼란을 확인한 북베트남은 1975년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18개 사단을 동원해 남침을 재개했다. 남베트남군은 북베트남군에 비해 병력, 장비, 물자, 재원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전쟁이 재개되자 군인들은 미군이 넘겨준 장비들을 버려둔 채 도주했다. 조종사들이 없어 미군이 남긴 전투기들은 이륙조차 하지 못했다.

북베트남군은 남침 개시 56일 만인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군이 버린 미국제 패턴(Patton) 전차를 몰고 사이공 시내로 진주했고 남베트남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미군은 오지 않았고 북폭도 없었다. 공산통일 이후 처형·숙청 바람이 불면서 600만 명이 희생되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남베트남 군대에게 병력, 장비, 재원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 한국군이 그 시절 남베트남 군대, 즉 ‘영혼이 없는 군대’를 닮아가고 있다.

얼마나 더 방관할 것인가. 그래도 국방부는 “문제가 없다” “9·19 군사합의나 축소형 국방개혁에도 문제가 없다” “전작권을 조기 전환해도 위험하지 않다” “군을 잘 몰라서 걱정한다” 등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정치적 답변을 반복할 것이다. 이들의 말을 믿고 얼마나 더 방치해야 하나?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기 직전 한국군 수뇌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민군이 남침하면 곧 바로 반격하여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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