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미투의 정치학....성폭력 사건에서는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추궁당하는가? 
[신간] 미투의 정치학....성폭력 사건에서는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추궁당하는가?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9.02.2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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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조직 내 성폭력 피해 고발 이후 정계, 문화예술계, 스포츠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미투’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 중심적 성 문화를 뿌리째 뒤흔들어 일상의 혁명을 촉구하는 매우 급진적인 운동이다. 호주제 폐지 운동 이후 이렇게 전 세대의 여성들이 고르게 지지한 운동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투 운동은 법과 제도, 사회 질서 전반에 성차별적 통념이 얼마나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하기’ 이후 피해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히 너무 크고,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거의 진전이 없다. 용기 있는 목소리가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쉽게 조성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직장 내에서 벌어진 권력형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남성이면 노동 문제가 되고 피해자가 여성이면 성적인 문제로 둔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루어 온 연구 모임 ‘도란스’는 네 번째 책 《미투의 정치학》에서 미투 운동을 둘러싼 주요 쟁점을 분석하고 미투 이후를 모색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성적 자기결정권’,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는 한국 사회의 남성 연대, 사법부의 젠더 감수성, 젠더 폭력과 젠더 개념 등을 살펴봄으로써 성차별과 성폭력을 지속시키는 우리 사회의 부정의를 파헤친다. 
 

‘안희정 사건’의 의미와 미투의 정치학 

2019년 2월 1일, 한국 여성 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바로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 성폭력 사건의 2심 판결이었다. 

안희정 전 지사는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수행비서 김지은에게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강제추행 등 총 10건의 성폭력 혐의로 기소하여 4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2018년 8월 14일에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성폭행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에 관한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폭행 피해를 당한 뒤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들어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은 공판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보수적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고 10개의 공소 사실 가운데 9개를 인정하여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안희정 전 지사는 법정구속 되었다. 전문가들은 2심 결과를 두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인정하는 판례가 거의 없는 한국 실정에서 중요한 지표가 될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현행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에서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세를 말한다. 따라서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한 성폭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법정에서 ‘위력 성폭력’이 인정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더욱이 안희정 사건은 피해자 김지은의 ‘미투’ 고발 이후 거의 1년간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다른 성폭력 사건 재판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희정 사건을 비롯해 여러 ‘미투’ 사건이 법정으로 가면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성적 자기결정권’ ‘성인지(性認知) 감수성(gender sensitivity)’ 같은 낯선 개념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개념들은 성폭력 사건에서 재판부의 판단을 좌우하는 주요 쟁점이기도 하다. 《미투의 정치학》은 이러한 쟁점들을 중심으로 안희정 사건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말하기’, 미투의 본질,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의미 등을 살펴본다. 

〈그 남자들의 ‘여자 문제’〉(권김현영)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이다. 권김현영은 1심과 2심 공판을 방청하면서 사건과 관련해 무엇이 어떻게 언론에서 보도되는지, 피해자를 둘러싼 음모론이 어떻게 확산되고 어떤 프레임이 만들어지는지, 여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재판부에 대한 차가운 분노와 피해자를 향한 뜨거운 연대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이 글에서 필자는 언론의 지나친 개입과 왜곡에 주목한다. 언론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거치면서 여성 인권 의제는 가십거리로 전락했다. ‘정치 공작’이라는 프레임도 만들어졌다. 한편으로 이 글은 성폭력을 “큰일 하는 남자의 사생활 문제” 정도로 치부하는 한국 진보 남성 집단에 대한 정신 분석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정희진)은 미투 운동을 중심에 두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젠더 개념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희진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으로 가시화되는 폭력은 극히 일부임을 지적한다. 드러나는 폭력과 감추어지는 폭력은 누가 결정하는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성 사회가 관심을 두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이나 인권 침해가 아니라 해당 사건이 남성 사회에 얼마나 타격을 주는가이다. 가해자가 조직의 권력자인가, 사건이 남성 전체의 위신에 타격을 주는가 따위가 사건의 성격을 좌우한다. 가정 폭력 피해나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피해가 ‘미투’로 수용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춘향에겐 성적 자기결정권이 필요했다〉(한채윤)는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소설 《춘향전》을 통해 ‘정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이 바뀐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한다. 또 ‘(여성이) 정조를 지키겠다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 정도로 오해받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안희정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피해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은 것이 곧 동의를 뜻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죄를 가해자에게 묻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조를 지킬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성폭행 피해자를 비난하고 처벌했던 과거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한채윤은 《춘향전》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지금껏 우리 사회가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왜 남성에게는 전혀 없는 정조 관념이 여성에게는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젠더 폭력과 젠더 개념〉(루인)은 성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고찰한다.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대외 침략을 지지하는 우익 페미니즘이나 성 역할을 이용해서라도 여성이 출세해야 한다는 ‘파워 페미니즘’과도 다르다. 루인의 글은 미투 운동이 대중화되고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일부에서 페미니즘과 퀴어를 나누어 진영화하려는 흐름을 비판한다. 루인은 왜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 폭력이 되고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렇지 않은지를 묻는다. 곧 누가 진정한 ‘여성’이며 폭력의 개념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여성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논쟁을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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