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UN)은 유엔 헌장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1,2차 세계대전으로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쉽게 표현한다면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창설된 것이다.
따라서 유엔은 특정한 국가가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또는 침략 행위를 할 경우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거나 이를 회복하기 위해 헌장 제6장과 제7장에 규정된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유엔의 배타적 기구가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이다.
유엔 안보리는 과거에 한국을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자 유엔 안보리는 당일 부로 “적대행위의 즉각 중지와 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즉각 철수”를 결의(결의안 제82호)했다. 6월 29일에는 “대한민국에게 무력침공을 격퇴하고 이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 제83호를 채택했다.
7월 7일에는 결의안 제84호를 통해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병력 및 기타 지원을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사령관(유엔군사령부)하에 두도록 권고하고, 미국이 통합사령관을 임명할 것과 통합사령부에 참전 각국의 국기와 함께 유엔기 사용 권한을 부여”했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전투부대를, 스웨덴 등 5개국이 야전병원부대 등을 파병했고 과테말라 등 39개국이 물자를 지원했다. 유엔 창설 이후 처음으로 헌장 제7장 제42조 규정되어 있는 군사적 조치인 집단안보가 한반도에서 실현된 것이다. 한국이 멸망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제재 주도한 유엔 안보리
유엔 안보리는 현재도 한국 안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자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복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이 2006년부터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본격화하자 그 때마다 안보리 결의안, 의장성명, 언론 성명 발표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해 경고하거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06년에는 두 번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2009년 한 번, 2013년 두 번, 2016년 두 번, 그리고 2017년에는 네 번 등 총 열한 번에 걸쳐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이 통과될 때마다 대북제재는 점점 더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북한 수출의 90% 이상 차단, 북한 노동자의 해외 송출 금지 및 기존 노동자의 복귀, 북한과의 합작사업 금지 및 기존 합작사업의 폐쇄, 공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 환적 금지, 그리고 석유제품 통제 등에 대한 제재 조치가 이뤄졌다. 유엔 안보리는 헌장 제7장 제41조에 명시되어 있는 비군사적 대북제재 조치를 결의한 것이다. 북한 정권이 한반도 비핵화 회담장으로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50년에 결의한 유엔 안보리 결의 내용은 미래에도 한국 안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여부에 따라 유엔군사령부(UNC)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CVID)를 할 경우, 한반도 정전협정체제는 평화협정체제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전체제 관리의 주체인 유엔사는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84호에 의해 창설되었기 때문에 유엔사의 해체는 어떤 형태로든 안보리에서 매듭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미북간의 비핵화 회담에서 이탈해 한반도에 긴장이 다시 고조될 경우 유엔사는 해체 대신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진화하는 유엔사
사실 정전체제의 해체와 평화체제의 도입 문제는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영역인 반면, 유엔사의 강화 문제는 군사적인 영역이다. 현재의 유엔사는 이 두 가지 가능성에 모두 대비하되 특히 후자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비하는 듯하다.
유엔사는 2018년 6월 말 유엔사 부사령관에 캐나다 육군 중장을 임명했다. 유엔사 부사령관은 주한미군부사령관 겸 미 7공군사령관이 관례적으로 맡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유엔사 부사령관을 타국 장성에게 맡겼는데 이는 유엔사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유엔사 참모장도 주한미군사령부에 직책을 가지고 있는 미군 소장이 맡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유엔사 참모장은 오로지 참모장 직책 하나만 전념하도록 조정했다. 또한 유엔사는 유엔사의 핵심 보직에 제3국 장교를 추가로 임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런 변화는 북핵 협상, 평화체제, 전작권 전환 등을 고려한 유엔사의 홀로서기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얼른 생각해 보면 전쟁 억제와 유사시 전쟁에서의 승리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임무이다. 그런데 왜 유엔사가 이런 변화를 시도하는 걸까?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미국만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보다는 6?25 때처럼 가능한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선 평시에 6?25 참전국들과의 유대 강화가 절실한데 유엔사가 바로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군만의 유엔사가 아니라 6?25 참전국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유엔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말에 미 국무부는 2018년 1월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6·25 참전국을 대상으로 긴급 외교장관회의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20개국의 외무장관이 참석했고 미국은 국무부 장관뿐만 아니라 매티스 국방부 장관도 참석했다. 이 회의를 통해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만일 다음에도 6?25 참전국 장관급 회의가 개최된다면 이는 외무장관 회담이 아니라 6?25 참전국 국방장관 회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유엔은 한국의 정부 수립 과정에서도 대단히 큰 역할을 했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물론 선거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엔은 북한이 남침했을 때, 그리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 등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을 했을 때 어김없이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한국 안보를 지원해 왔다.
만일 북한 비핵화 과정이 궤도에서 이탈할 경우 유엔 안보리 결의로 창설된 유엔사가 다시 한 번 한국 안보를 위해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유엔사의 해체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최근 북한이 유엔 총회의 각종 위원회 회의장에서 유엔사는 괴물 같은 조직이기 때문에 빨리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도 곱씹어 봐야 한다.
사실 유엔은 1945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안보의 담지자 역할을 해왔고 심지어 미래의 어느 시점까지도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단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통과되지 않는다. 거부권(veto)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밴쿠버 외무장관 회담은 한반도 유사시 유엔을 우회할 수도 있다는 집단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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