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소련은 미국과 '전략'무기감축협정(SALT 2)를 체결하였지만 그 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닌 SS-20과 같은 중거리 '전술'핵미사일들을 바르샤바 조약기구 구성국가들에 대량으로 배치하기 시작하였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여 퍼싱 2를 비롯한 중거리 핵미사일을 서독을 포함한 서유럽 지역에 같은 규모로 배치함으로서 소위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istruction; MAD)'의 균형을 회복시키려 함에 따라 유럽지역에서 다시금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유럽 내 군사적 대결가능성을 우려한 NATO 유럽회원국들은 1979년 12월 소련을 압박, 지역내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소위 이중결정(Double-Track Decision), 즉 미소간 협상을 통해 양측 모두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를 철회를 시도하되 1983년까지 결과가 없을 경우 미국의 퍼싱-2, 순항 미사일을 포함한 중거리 핵미사일을 전면적으로 배치한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미소진영간 군사적관계와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연결되어 있던 서독 내에서 이 문제는 당연히 첨예한 국내정치 이슈로 부각이 됩니다. 자당 총리 헬무트 슈미트의 적극적 찬성입장에도 불구하고 좌파 사민당 의원 다수는 이 결정에 반대합니다. 직전 총리 빌리 브란트는 '미국은 소련의 중거리 핵무기 철수보다 자국의 신형핵무기 배치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며 반대의 선봉에 섭니다. 사민당과 공산당과 결별을 이끌어냈던 붸너지만 '소련의 중거리 핵무기들은 순수하게 방어용'이라고 주장하며 이중결정과 미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독일 배치에 반대합니다. 새롭게 총리가 된 헬무트 콜과 그의 기민/기사당, 그리고 자민당(FDP)은 이 결정에 찬성합니다.
이무렵 좌파 성향의 정치학자, 역사가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이 이중결정에 대한 사민당의 반대입장을 비판합니다 ; '대결정책으로 소련을 무장해제시킬 수 없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일방적인 양보와 신뢰구축조치만으로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서방이 결연하게 단합되어 있지 않는 한 소련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서독 내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 논쟁은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상호확증파괴' 개념에 입각한 '공격적 방어조치'를 둘러 싼 논쟁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사드배치 논쟁과는 사뭇다릅니다. 위협주체의 측면에서도 북이 훨씬 예측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드배치 반대론자들은 서독 사민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 다른 것은 위 서독 좌파학자같은 혜안을 가진 이들이 우리 진보좌파학계에는 없다는 점입니다.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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