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Franz J. Strauss)의 변신
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 -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Franz J. Strauss)의 변신
  • 미래한국
  • 승인 2018.03.2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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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Franz Josef Strauss, 1915-1988)는 서독 보수정당 기민당(기독민주당 ; CDU)의 자매 정당인 기사당(기독사회당 ; CSU)의 대표적 정치인으로서 다부진 체구에 뛰어난 정치감각, 신랄한 독설, 권위적인 태도와 더불어 극단적 보수주의 성향으로 유명했지만, 다른 한편 일관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파퓰리스트란 비판도 많았습니다. 

서독 정계를 뒤흔들었던 각종 부패스캔들에 종종 이름이 오르내렸고 서독 정치사상 가장 큰 독직사건이라 할 슈피겔지 사건의 핵심 인물로 결국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는 기민당의 헬무트 콜을 누르고 기민/기사당의 총리 후보로 나서 헬무트 슈미트와 경쟁했으나 패배했습니다. 그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지만 서독 정치인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습니다.

1983년 6월 슈트라우스는 동독에 10억 독일마르크(DM ; 미국 달라의 약 1/2가치?)의 차관을 주선합니다. 이무렵은 유럽지역내 중거리핵미사일 배치문제로 미소 양진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불과 몇달 전 서독주민이 동독 국경근무요원에게 검문받던 중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동서독간 관계도 매우 악화된 시기였기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위 사망사건을 "살인행위라고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하던 슈트라우스가 그 차관의 주선자라는 점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슈트라우스의 변신 이유는 무엇이었을 까요? 그리고 과연 이 지원행위가 동서독관계 발전에 긍정적이었을까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훗날 슈트라우스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동안의 동독, 헝가리, 체코, 그리고 최근의 폴란드 사태에서 보듯이 서방은 자신들의 개입이 동서간 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들 동쪽 진영의 민중봉기를 사실상 수수방관했었고 이런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곳의 민중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되는 지점까지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겐셔를 밀어내고 외교부장관이 되기를 원했던 슈트라우스가 '무자비한 반공주의자'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한 특유의 기회주의적 변신행위라는 혹평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쨌든 동독은 슈트라우스의 도움으로 인해 경제적 파산직전에서 일시나마 회생할 수 있었고 다시 주민들에게 선심쓰는 조치들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즉 동독정권의 연장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가 되므로 바로 이점때문에 당시 당내에서도 이 조치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통일 이후 서독의 대동독 경제적 지원조치 전반에 대해 과연 타당했던 것인지 논의가 있었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서독내 미사일 배치가 이뤄진 뒤에도 호네커가 소련측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우호적 관계유지를 위해 노력했던 것도 사실 이러한 경제적 도움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이 차관에 대해 동서독 양측 모두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고 했지만 공여가 이뤄진 직후부터 동서독 통행에 관한 동독측의 눈에 띄는 태도 변화가 감지되었는데 후일 슈트라우스와 서독 정부가 그 부분에 대한 동독측의 협조를 조건으로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일이 우리 남북관계에서 가지는 함의는 무엇일까요?

우선, 지금 대북제재국면이라 대북지원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상황이 변해 고려가 가능한 상황이라도 지원행위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해야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핵문제 해결, 남북관계의 개선, 북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등이 그것이겠지요. 낭만적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은 금물입니다. 추가로,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행위를 개인적 차원의 이해관계에서 접근해선 안된다는 점을 꼽을 수가 있겠지요

한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남북관게에서 동서독의 예를 참조할 때, 북한은 동독의 실패로 부터 많은 교훈을 얻은 집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전제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포스팅한 클라우스 뵐링의 회고처럼 동독 자체를 변화시키겠다는 것도 '환상'에 불과했다면 북한이 동독의 전철을 밟게 한다는 것은 거의 '망상'수준이겠이지요. 

전 국회의원, 전 주중대사 권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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