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두만강 보다 더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새해 들어 갑자기 한여름 무더위로 돌변했다. 엊그제까지 북한군 병사의 귀순으로 총소리가 잦았던 판문점 회담장이 언제 그랬나는 듯 웨딩홀 분위기에 푹 젖어버렸다.
김정은은 새해 신년사에서 특별히 남한의 동계 올림픽을 걱정해 주었고 그렇게 문 정부의 애잔한 ‘北러브스토리’가 막 시작되었다.
집권 전부터 평양의 로켓보이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던 문 대통령은 미국의 단독 북벌(北伐)을 결사반대했고 계속해서 북문(北門)을 두드렸다.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라는 사람은 워싱턴까지 날아가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한미동맹 깨져도 북한과 전쟁은 불가’하며 ‘북한정권이 항상 주장해오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를 제창했다.
트럼프는 분노했고 시진핑은 박수쳤다. 동네 사람들 보기에 워싱턴과 결혼했다고 믿었던 서울은 옆집 양아치와 바람난 것이 분명했다.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는 열대기후의 근원지가 풍계리의 수소폭탄인지 청와대의 닭살스런 애정행각인지 국민들은 그저 얼떠름 할 뿐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가, 하필이면 이 때 극장가에서는 북핵공포를 상기시키는 영화가 개봉돼 흥행 중에 있다.
항상 북한군은 멋있고, 정의롭고, 용감하게 묘사하면서 남한 경찰은 찌질 하고, 못생기고, 비굴하게 보여준다는 보수 네티즌 일각의 볼멘소리도 이제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쳐버렸다.
옛날, 남북이 힘을 합쳐 일본을 손봤다는 격동의 드라마로 전국민을 흥분시켰던 소설가 김진명의 의중(意中)이 이번만은 조금 달라보였다. 그가 발간한 최근의 소설책 속에는 평양과 서울에 대한 백악관의 동시적 분노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백악관에서 있었던 최근의 사건은 분명 대한민국 유명 소설가의 상상 속에 있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의 방한 시 국회연설은 한국에 대한 훈시에 가까웠다.
‘우리가 너희들을 피 흘려 지켜주었거늘 지금 와서 이러면 섭하잖아’ 트럼프는 아마도 이 한마디를 30여분동안 풀어서 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30여분동안 날린 ‘모르스부호’를 Moon이 제대로 해독했는지는 미지수다.
김진명의 소설속 트럼프의 분노가 실제 트럼프의 생각과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그 소설이 한국인의 뇌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Fact라고 할 수 있겠다. 역설적으로 많은 한국인들은 트럼프가 그렇게 한국을 분노할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문이 친중(親中)을 하든지 말든지, 한국인의 DNA속에는 수천 년 동안 쌓였던 대륙에 대한 반감이 잘 보존되어 있는 듯하다. 안 그랬으면 한국의 유명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이런 시진핑의 속내를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조선의 백년숙적이라면 중국은 조선의 천년 숙적”이라는 명쾌한 역사인식을 뜻밖에도 김정은에게서 듣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가 화났든, 시진핑이 딴 궁리를 하든, 평양·평창·평화 잔치에 남북 모두가 신나게 공중부양 중이다. Moon은 마치도 ‘평양’만 ‘평창’잔치에 합류하면 ‘평화’가 올 거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에게 주변국의 조소 섞인 쓴 웃음이 보이지 않는가 보다. ‘결정적 한방’이라고 여겼던 히든카드 3피읖(평양·평창·평화)이 ‘쓰리피박’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청와대는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가,
‘남북평화’가 눈앞에 있는 것 같기는 하나 ‘남북통일’은 과연 어디쯤에 있는지, 한반도의 하늘에 낀 짙은 안개는 70년 동안 전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먼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대한민국 버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될지,
다시 한 번 미국의 스텔스 폭격기 전단이 풍계리와 평양으로 조용히 스며들기만을 바라야 할 처지다. 김진명의 장편소설 <미중전쟁>을 읽고, 영화 ‘변호인’을 만든 양우석 감독의 새 작품 <강철비>를 보고 한국인의 긴 한숨을 내쉰다.
= 백요셉 미래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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