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설득할 때 우리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메시지를 정교하게 만들거나 매력적인 정보원을 찾는 데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하지만 설득에는 항상 상대방이 있고 그 상대방은 ‘저항’이라는 무기로 자신을 빈틈없이 보호하고 있다. 이처럼 상대방의 거센 저항이 예상될 때 설득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형 설득 전략의 최고 권위자이자 커뮤니케이션학자인 이현우 한양대 교수는 신간 『거절당하지 않는 힘』에서 설득 현상을 저항 관점에서 접근하는 ‘거절의 심리학’을 소개한다. 그는 설득은 요란한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설득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덧셈의 과정보다는 피설득자가 스스로 설득자에 대한 불신이나 메시지에 대한 회의를 벗어던지도록 유도하는 뺄셈의 과정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설득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상대방의 저항의 정도에 따라 거세게 반발하는 사람, 의심 많은 도마, 무관심한 사람으로 나누어 설득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저항으로 설득을 이기는 법을 알려준다. 주변 인물들을 장기 추적한 사례와 관련 심리 이론을 녹여 넣어 실용적인 가치와 학문적인 가치를 동시에 제공한다.
일찍이 1996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이 교수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들의 설득 원칙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할 수 없음을 발견하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만의 설득 전략을 연구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설득의 심리학’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거절의 심리학은 상대방의 저항을 없애는 데 주력한다고 말한다. 요즘처럼 공급능력은 넘쳐나지만 수요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결정권을 쥐게 된다. 커뮤니케이션도 자연스럽게 송신자가 아닌 수신자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저자는 상대방의 저항을 핵심 개념으로 삼는 거절의 심리학은 설득의 심리학이 놓치고 있는 수많은 사각지대를 볼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저항하는 자, 인간이다!
옹고집, 불복종, 완고함, 강퍅함, 극강 반대, 노답 등의 단어들은 상대방이 거세게 저항하면서 반발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들이다. 저항이 인간의 본질적인 행동 중 하나라면 설득 현상에서도 저항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것이다. 저자는 저항은 최소한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형태는 ‘반발’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 자유를 위협하는 외부의 설득 시도에 반발한다. 거세게 반발하는 상대방을 설득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단 상대방이 내 설득 시도에 저항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표현으로 대화를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상대방의 저항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린다. 이는 상대방의 저항을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오히려 상대방이 더 크게 저항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저항을 인정하고 저항의 역할을 공식화하면 역설적으로 저항의 힘은 약화된다. “네가 ~하기 싫어하는 건 아는데”, “네가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건 아는데”처럼 상대방의 저항을 인정하는 표현을 구사한다면 훨씬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 사람의 가치를 공격해 저항을 무력화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효과적인 우회 전략이다. 가치는 태도보다 상위 개념에 해당되므로 가치가 변화하면 태도는 자동으로 변화하게 된다. 훌륭한 리더들은 가치와 태도의 이러한 미묘한 관계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동성애에 관한 태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성애자라 해도 선한 의지를 갖고 주님을 찾는다면 어떻게 심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영혼의 ‘구원’이라는 상위 가치는 ‘동성애’라는 하위 태도를 수용하게 만든다. 교황은 지혜롭게도 동성애보다 상위 개념인 구원이라는 절대 가치의 영역으로 답함으로써 곤경에서 벗어났다.
의심을 풀어주면 확신이 된다
저항의 두 번째 형태는 특정 설득 내용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인 ‘의심’이다. 상대방의 제안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왠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법하다. 반발이 설득 과정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저항을 의미한다면 의심은 자신을 설득하려는 설득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자 특정 설득 내용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특정 설득 내용과 관련해 미심쩍어하거나 미더워할 때 정공법은 양면 메시지를 사용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양면 메시지란 자신의 입장에 우호적인 주장뿐 아니라 반대하는 주장도 언급하거나 인정하는 메시지를 말한다. 제품에서 나는 냄새에 소비자가 불쾌한 반응을 보이자 유한락스는 그와 관련된 양면 메시지를 담은 카피로 반론을 제기해 위기에서 탈출했다. “별 냄새 없는데? 이거 뭐예요? 유한락스의 진실, 유한락스의 냄새는 살균할 때 나는 현상입니다. 생활에 안심을 더하다. 유한락스.”
시간은 설득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시간 해석 이론이 그 답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먼 미래 관련 행동에는 보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반면에, 가까운 미래 관련 행동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또한 사람들은 먼 미래 관련 사건은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바람직한가의 관점에서 평가하지만 가까운 미래 관련 사건은 그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따라서 먼 미래에 실행을 요구하는 요청은 그것이 얼마나 바람직한가에 초점을 맞추고 가까운 미래에 실행을 요구하는 요청은 그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춰야 사람들의 저항을 약화시킬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게 설득당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요지부동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거세게 반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 설득 시도에 전혀 반응하지 않으므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설득 시도에 대한 반발을 제거하거나 설득 내용을 변경하는 전략도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저항 본질은 현상유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저항은 그리 높지 않지만 무관심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는 기분이 좋으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지 않는가? 이 과정에는 자기가치 확인 이론이 적용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요청을 하면 그는 당연히 저항한다. 이 경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청하기 전에 상대방이 중시하는 자기가치를 확인시켜준다면 그 사람의 저항을 약화시킬 수 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저항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게 설득당할 가능성이 높다.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무반응으로 대처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하듯 선택권이 주어지면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내 제안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이중구속의 딜레마 전략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현명한 부모는 늦은 시간에도 자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잠자리에 들라고 지시하는 대신에 “자기 전에 이를 먼저 닦을래, 아니면 잠옷을 먼저 갈아입을래?”라고 묻는다. 이 경우 아이는 부모 말에 순종해 이를 먼저 닦을 것인지 아니면 저항해 잠옷을 먼저 갈아입을 것인지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아이가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부모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의 경우에도 아이의 행동은 바람직한 결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항으로 설득을 이기는 법
가끔 설득의 목표가 상대방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존 태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려서부터 담배가 얼마나 백해무익한 것인지 귀가 따갑도록 들어 이미 담배를 피울 생각이 전혀 없는 아들에게는 그런 태도를 계속 유지하게 만들기 위해 흡연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할 것이다.
저항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 필수적으로 예방접종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진짜 병원균이 몸에 침투할 때를 대비해 미리 적은 양의 병원균을 주입해 면역력을 기르는 데 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믿고 있는 특정 사실에 대해 약한 정도의 공격 메시지를 제시해 의도적으로 설득에 저항하도록 만든다면 기존 태도를 고수하게 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맥 빠지게 만들기’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을 때 투표일을 닷새 앞두고 성희롱 문제가 터졌다. 슈워제네거 선거 캠프에 최대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슈워제네거 캠프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맥 빠지게 만들기 전략을 미리부터 실천에 옮겼다. 슈워제네거는 출마하자마자 상대방이 자신을 ‘행정 경험이 없고 여자들이나 따라다니는 한심한 놈’이라고 공격할 것이라고 미리 말해버림으로써 맥 빠지게 만들었다. 사건이 터진 후에도 성희롱 해명 기자회견에서 그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새 사람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맥 빠지게 만들기 전략을 현명하게 사용한 슈워제네거는 무난히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거절당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거절당하는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경험이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하지만 회피는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시도조차 못 하고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거절당하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거절의 심리학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거절당하지 않는 힘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특히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거절과 저항의 쓴맛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짜릿한 역전승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거절당하지 않는 힘을 키우면 남을 설득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게 된다. 거절당하는 말과 거절당하지 않는 말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사소한 차이가 당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