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원균, 끝나지 않는 정쟁
이순신과 원균, 끝나지 않는 정쟁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9.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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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점] ‘명량’의 역사가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에 시사하는 것

영화 ‘명량’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온라인 곳곳에서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나오고 있다. 원균에 대한 ‘간신’ 낙인은 지나치다는 주장과 함께 이순신에 대한 과도한 영웅화가 올바른 역사를 대하는 자세인지에 대한 도발적인 주장까지 출몰한다. 당연히 이순신 옹호론자들은 이에 필사적으로 반격한다.

논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조선시대 당대 기록이 원균에 대해 ‘훌륭한 용장’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의 공신들을 1603년(선조 36)에 이르러 선정할 때 원균은 선무공신 2등에 책록됐으나 “패전을 이유로 공을 깎는 것은 부당하다”는 선조 임금의 지시로 선무공신 1등으로 책정된다. 당시 비망기에서 선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원균을 2등에 녹공해 놓았다마는, 적변이 발생했던 초기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해 주기를 청했던 것이지 이순신이 자진해서 간 것이 아니었다. 왜적을 토벌할 적에 원균이 죽기로 결심하고서 매양 선봉이 되어 먼저 올라가 용맹을 떨쳤다. 승전하고 노획한 공이 이순신과 같았는데 그 노획한 적괴(賊魁)와 누선(樓船)을 도리어 이순신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순신을 대신하여 통제사가 되어서는 원균이 재삼 장계를 올려 부산 앞바다에 들어가 토벌할 수 없는 상황을 극력 진달했으나, 비변사가 독촉하고 원수가 윽박지르자 원균은 반드시 패전할 것을 환히 알면서도 진(鎭)을 떠나 왜적을 공격하다가 드디어 전군이 패배하게 되자 순국하고 말았다. 원균은 용기만 삼군에서 으뜸이었던 것이 아니라 지혜 또한 지극했던 것이다.

나는 원균이 지혜와 용기를 구비한 사람이라고 여겨 왔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운명이 시기와 어긋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일도 실패하여 그의 역량이 밝혀지지 못하고 말았다. 전번에 영상이 남쪽에 내려갈 때 잠시 원균을 민망하게 여기는 뜻을 가졌는데 영상이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공로를 논하는 마당에 도리어 2등에 두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는가. 원균은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선조 “원균은 지혜와 용기를 구비한 사람”

선조의 이러한 평가는 물론 정치적이었을 수 있다. 당시 조선 조정은 당파성에 의해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황을 비롯한 영남학파의 동인과 이이를 필두로 한 기호학파였던 서인으로 나뉘어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폄훼하고 비난하는 싸움에 나라와 임금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당시 이순신이 동인과 서인 어느 쪽에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절친한 유성룡이 서인의 기둥 이이에게 이순신을 천거해서 이이가 이순신에게 한 번 만나자는 것을 이순신이 거절했던 사실은 있다. 명분은 같은 종씨라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성룡은 당시 동인과 서인의 중립지대에서 양쪽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안정 세력을 확보했던 서인 쪽에서는 중립지대였던 이순신을 포섭하고자 했을 것이었지만, 이순신이 여기에 응하지 않았다면 이순신에 대한 조정 주류, 그러니까 서인의 평가는 각박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포섭할 수 없다면 배제하라’는 정치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동지가 아니면 적이며, 적은 파멸시켜야 하는 것이 조선 조정 내 당파투쟁의 본질이었다는 점에서 이순신과 원균의 불행은 이미 예고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명량’에서 왜적의 함선을 들이받는 충파 전술은 사실 원균이 사령관으로서 지휘한 옥포해전에서 처음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원균이 직접 지휘하는 함대가 이순신의 함대보다 비율적으로 더 많은 왜선을 깨트린 점도 지적된다. 문제는 이순신과 원균 사이의 갈등이 이 옥포해전의 승리를 조정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이 마치 이 전투를 자신이 이뤄낸 모든 공적처럼 올렸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순신은 원균을 장수다운 장수로 인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순신은 원균에 대해 그의 난중일기에서 ‘가소롭다’는 표현도 썼다. 어쨌든 이순신은 옥포해전으로 큰 포상을 독식했고 원균이 이에 분노하며 자신의 정치세력인 서인들에게 일러바침으로써 정치적 중립지대에 있던 이순신은 서인들로부터 ‘위험한 자’라는 낙인을 받게 됐을 개연성이 높다.

누가 ‘칼’을 잡을 것인가

당연히 서인그룹의 장수가 혁혁한 공을 세워야 하는 마당에 자신들의 편이 아닌 이순신이 서인그룹의 지지를 받는 원균의 공을 가로챘다면 ‘공공의 적 1호’로서 실로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감이 일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헌부에 의해 상소된 이순신에게는 ‘사형’이 구형돼 있었다. 하지만 선조 임금은 현명했다. 동인과 서인의 세력 대결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으려면 한편으로 정치적 중립지대에 있는 이순신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것도 전략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선 조정의 형세는 오늘날 세월호 정국에 갇혀 있는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누리당과 야당 간의 정치적 투쟁의 문제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내에 잠복한 차기 권력투쟁의 갈등이 불안한 세월호 정국의 지각을 뚫고 언제든지 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이라면 장관들을 비롯해 의사결정권을 가진 관료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통일 문제를 다루는 통일부, 안보의 국방부, 전교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교육부, 창조경제를 떠맡은 미래창조과학부, 세월호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법무부와 검찰 모두가 청와대에 대해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 권력자의 당권에 의해 눈치를 보는 상황이 곧 오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의 공중분해를 점치기도 하지만 새민련이 전열을 정비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들도 만만치 않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당을 지배하면서 친노(親盧)의 화려한 부활을 점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역시 새누리당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말할 이순신은 누가 될 것인가. 세월호라는 이름의 ‘칠천량 해전’에 선뜻 나서려는 새누리의 장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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