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청년세대 끌어안기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 최근 충남 천안 백석대학교에서 진행된 대학생 간담회에 후드티와 운동화 차림으로 참석한 한 위원장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웬만하면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데 청년 정책에 대해선 미안한 마음이다. 저희 청년 시기 고민의 어려움보다 (지금의 청년들이) 훨씬 힘들다는 걸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잘해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MZ세대는 정치 관심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저희 20대 때 청년층 투표율과 지금 투표율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훨씬 낮았다. 지금 청년세대들은 정치를 통해 삶을 바꾸려는 입장이다. 청년세대가 목소리 더 내고 지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룰대로라면 그게 어렵기 때문에 보정이 필요하다. 서울 강남 등 (여당 강세 지역에서) 국민 공천, 제한 없는 공모를 받고 그중에 선택하는데 그 과정에서 청년의 정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한동훈 위원장의 말은 과거 노회한 기성 정치인들의 말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청년이 미래의 희망이라는 식의 의미 없는 수사법으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한동훈에게는 그런 수사가 없다. 그가 오늘 한국 청년들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읽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한동훈 위원장은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 부분은 매우 특이한데, 일반적으로 청년들은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어 보수성이 강한 정당으로서는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득표율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전망이다. 

청년이 실망하고 있는 한국 정치

최근 실시된 20대 대통령선거와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비롯하여 다수의 선거에서 후보들은 청년과 관련된 다양한 공약을 내놓았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에서도 20~30대 청년세대와 40~50대, 60대 이상의 세대별 지지 후보가 달리 나타나면서, 청년세대 표심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었다. 이처럼 정치권이 청년세대의 표심을 잡으려는 이유는 청년세대가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캐스팅보트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세대는 국내 정치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2022년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에서 실시한 ‘청년정치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0.6%가 현 정치권이 청년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20대 청년세대에서도 94.3%가 이같이 응답했다. 정치권에서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세대의 정치효능감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정치가 나의 삶을 바꿔줄 수 있다는 기대를 안 하는 사회이며, 정치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당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싫다”며 “5년간 당비를 지불한 정당에서 탈당했다”고 답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청년의 정치효능감이 저하되었음을 내비쳤다.

한마디로 한국의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봐야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효능감이 낮은 세대나 집단에게는 정부 정책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소통 부재가 누적되면 정부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과격하고 급진적인 정치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는 2018년 이탈리아에서 벌어졌다. 

2018년 3월 4일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40세 미만의 청년 당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탈리아 청년당’이라는 별칭을 가진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단일 정당 득표율 32.22%를 기록하며 이탈리아 최대 정당으로 도약했던 것. 2위를 차지한 민주당(득표율 18.9%)을 거의 더블 스코어로 따돌리는 기염마저 토했다. 

노인 정치로 실패한 이탈리아와 스페인

당의 창건자는 베페 그릴로라는 코미디언 출신 시민사회운동가였다. 반부패, 반기득권, 시민참여 민주주의 등을 주창하며 설립된 오성운동의 대표는 31세의 루이지 디 마이오. 만 26세에 역대 최연소 하원 부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지난해 9월 오성운동의 대표가 됐다. 이탈리아 정치에 세대 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이탈리아 청년정당 오성운동이 급부상하던 시기에 스페인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급진적 좌파 포퓰리즘 정치세력 포데모스가 2015년 12월 스페인 총선거에서 21%를 득표해 총 350석 중 69석을 차지,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의 30여 년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기염을 토했던 것.

포데모스 소셜미디어팀의 일원인 엠마 아버레즈(Emma Alvarez)는 “포데모스는 새로운 정치 플랫폼에서 개인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며 “포데모스를 포함한 여러 사회운동들이 실제로 현 스페인 정치부패에 무기력함을 느껴왔던 청년들 또한 정치에 참여하게끔 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일어난 포퓰리즘 청년 정치세력의 부상은 그 배경에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에 대한 반발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설이다. 제론토크라시란 ‘노인에게 유리한 정치체제’ 또는 ‘노인 정치’를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이 문제를 연구한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2016년 자신의 논문에서 ‘노인정치가 작동하는 민주국가에서는 노년층은 과대 대표되고 청년층은 과소 대표된다’고 분석했다. 최태욱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노인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투표율 격차 때문이다. 흔히 일본은 출산이나 보육 등의 가족복지보다 노인복지를 위한 지출에 열 배를 더 쓰는 이른바 ‘노인의 나라’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된 핵심 원인은 청년층의 낮은 투표율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역시 노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나라라고 평가된다. 결국 청년세대들이 노인을 위한 정치 ‘제론토크라시’에 반기를 든 현상이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스페인의 포데모스로 등장했다는 것. 실제로 ‘이탈리아에서의 노인정치는 정권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는 것이 최 교수의 분석이다. 이러한 노년정치를 탈피하기 위한 한국 정치의 개혁은 당연히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한동훈 위원장은 그 부분을 청년들에게 약속했다. 

2020년 윤혜영의 박사학위논문과 이후 보완된 논문에 의하면 유럽지역 국가들은 비교적 청년의원 비율이 높다. 반면 한국의 청년의원 비율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현저하게 낮다는 점이 드러난다. 2013년 기준으로 국제의원연맹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 보면 29개 회원국 중 해당 자료가 집계되지 않은 일본을 제외하고 28개 회원국 중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국가는 네덜란드(44.4세)이며, 가장 높은 국가는 미국(57세)이다. 

한동훈, 청년세대 신뢰 얻을까

OECD 주요 회원국의 평균 연령 역시 45세 이상이 27개국에 이를 정도로 의회 구성원의 연령이 낮지 않으며 한국은 OECD 국가에서도 평균 연령이 미국 다음으로 높다. 2019년 기준으로 최연소 의원의 연령이 ‘20대’인 국가는 오스트리아, 캐나다, 체코 등을 포함한 21개국이며 ‘30대’인 국가는 그리스, 일본, 한국이 포함된 3개국이다.

우리 의회에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선거제도를 통해서겠지만 청년들이 지역구 공천을 받아 당선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 개선 논의의 한 축으로서는 청년의 정치 후보 할당제 도입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정부에 대해 청년세대가 갖는 낮은 신뢰는 우리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청년세대의 신뢰 저하의 문제는 그 대상이 정부뿐만 아니라 사회를 향해서도 나타난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청년이 2013년 71.4%에서 2020년 44.9%로 26.5%나 감소하였다. 

이처럼 신뢰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되는데, 실제로 2021년 국민일보에서 MZ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명 중 2명이 ‘한국 사회가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청년세대가 사회를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주된 이유는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로 인한 기회의 불평등으로부터 비롯된다. 

특히 청년세대에서는 이러한 공정성의 확보가 정부와 정권에 대한 신뢰와 지지로 이어지기도 하며, ‘공정’을 화두로 발생한 사건이 정권교체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청년세대가 인식하는 ‘공정’이라는 가치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으며, 2022년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상식과 공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며 ‘공정’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동훈 위원장과 국민의힘은 최근 청년 연령 기준을 기존 34세에서 39세로 높여 청년 혜택 대상자를 넓히고 신혼부부 주택구입 대출 부부합산 소득 요건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2020년 제정된 청년기본법을 개정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한 위원장은 “그렇게 되면 청년을 위한 자산형성 지원, 주거지원 대상이 확대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부연했다.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한동훈 위원장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