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용의 핵전력 확보해야
한국 전용의 핵전력 확보해야
  • 양욱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손한별 국방대 교수 
  • 승인 2024.03.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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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로부터 듣는다 / 아산정책연구원


미국 핵태세 변화 요구와 한국에 주는 함의


2023년 10월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조직한 ‘전략태세위원회(SPC)’가 최종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조야의 관심을 얻었다. SPC는 2008년 국방수권법에 의해 만들어진 초당적 조사위원회로, 미 의회로부터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태세를 검토하고 권고하는 것을 임무로 했다. 2009년 5월 제출된 SPC의 보고서에서는 냉전 종식 후 러시아 등 핵보유국으로부터의 실질적 핵위협은 줄어들어 핵테러를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봤으며, 억제전략과 군비통제 및 비확산 등으로 핵사용 가능성과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첫 보고서가 나온 지 14년이 지난 2023년 새로운 SPC 보고서에서는 그간의 국제 핵질서와 세력균형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위원회는 1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위협평가와 태세변경을 검토하고, 81개의 구체적인 제언을 제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27-2035년 시기에 직면할 ‘중국과 러시아의 동시적인 위협(two-peer threat)’과 핵전력 증강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핵무기 증강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SPC 보고서의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특히 중국의 핵전력 증강에 위협 평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이 ‘두 경쟁국의 기회주의적이거나 동시적인 공격 가능성’에 대한 전략태세를 갖추지 못하면 공격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둘째, 현재 미국의 핵전략은 안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미 국방부의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전략을 지속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셋째, 위원회는 전략태세를 질적·양적 모두 즉각 증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략핵무기를 양적으로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ICBM에 한정된 전력 구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반영한 핵무기로 현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넷째, 보고서 전반에서 강조된 사항은 ‘비전략태세(Nonstrategic posture)’, 즉 전술핵 중심의 태세전환이다. 이는 유럽과 인태 지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구 핵능력(theater nuclear capabilities)’, 즉 전술핵능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적의 핵사용을 억제하고 각 전구(戰區, theater of war)의 재래전력 열세를 상쇄하려는 것이다. 

다섯째, 전략적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군비통제의 중요성도 포함하고 있다. 비확산과 군축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다룸에 있어, 미국의 안보를 증진하려면 핵군축의 시기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핵심 쟁점
 
SPC 보고서는 미국 의회가 선정한 독립위원회의 조사보고서로,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며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27년 이후의 핵질서를 전망하는 초당적인 보고서라는 점에서 향후 미국 핵교리와 태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보고서이다. 2024년의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미국 조야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행정부는 보고서의 권고 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보고서는 2022년 미 국방부가 발간한 발간한 ‘핵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와 전반적인 위협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바이든 정부도 핵무기 현대화와 핵태세 강화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핵위협과 핵태세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기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한 핵강대국들의 인식이 분명히 달라졌음을 전제할 때, 이번 SPC 보고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살펴보는 것은 향후 핵질서의 변화를 예측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주는 영향 요인을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작업이다.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는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위협평가가 너무 과도하며 현실성이 낮다는 비판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보고서가 ‘지구 종말의 날(Dooms Day)’을 상정하여 가장 위험한 단일 시나리오만을 전제했다고 비판했다. 가능성이 작고 위험성이 큰 중-러 동시 핵전쟁 시나리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경우 소모적이고 편향된 능력 구축이 대응책으로 제시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협평가는 보고서가 제시한 적응력과 유연성을 오히려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미 국방당국은 러시아와 중국 핵전력의 양적 증강이 정말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인가에 대해 계속하여 의문을 품어왔다. 탈냉전기 미국은 상당 기간 핵전력의 질적 우세를 통해 핵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기체계와 군사전략의 질적 우위가 양적 열세를 상쇄하여 상대를 충분히 억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논의인 ‘충분성(sufficiency)’ 논쟁은 지속될 것이다. 

둘째, 해당 위원회가 핵전력에만 집중하여 핵전략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이 있다. 전략적 사고와 결심에 의해 다양한 핵태세가 결정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 핵전력의 양적 비교만 하다 보니 핵무기의 증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결국 핵전략에 대한 고민 없이 미국이 스스로 무제한 군비경쟁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는 군비통제론자들의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셋째,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볼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문제이다. 미국 핵무기에 대한 인식 관련 질문으로, 그동안 ‘억제’에 중점을 두었던 것에서 ‘사용’으로 전환했느냐의 질문이다. 미국이 다양한 비전략핵무기의 개발과 기존 핵무기의 현대화를 강조하면서, 군비통제와 외교의 공간을 간과함으로써 오히려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넷째, 2027년 이후를 예측하는 문건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군사기술의 영향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보고서는 우주, 사이버, 전자전 능력과 이로 인한 위험을 다루고 있지만 여전히 피상적인 언급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섯째, 예산 제약으로 SPC의 권고가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도 비판의 대상이다. 위원회는 전략핵무기의 현대화와 양적 증강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전술핵무기를 추가로 생산할 것을 권고하는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2023년 6월 연설에서 “미국이 경쟁국들의 핵무기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핵전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 “무제한경쟁은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바 있지만, 군비경쟁과 이에 필요한 예산에 대한 논쟁은 지속될 것이다. 

여섯째, 이번 SPC 보고서의 골자는 러시아와 중국의 핵전력을 동시에 공격하기 위해 보다 많은 수의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더 많은 핵무기가 필요하냐’는 질문은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너무 많은 핵무기가 필요하여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대가치 표적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결국 SPC 보고서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기존의 핵군축체제의 근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논란이 가열되는 것은 냉전 종식 후 지속된 핵군축 정신의 역린을 건드린 것에 핵군축론자들이 치열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최악의 핵경쟁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SPC 보고서의 과감한 주장은 핵능력에 기반하여 국제질서를 유지해야만 하는 미국의 절박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동맹의 억제 태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백에 대응하여 한국 전용의 핵전략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억제 태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백에 대응하여 한국 전용의 핵전략을 확보해야 한다.

한반도 안보에 대한 함의와 정책 제언
 
SPC 보고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과 논의는 향후 미국 핵태세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와 한반도 지역에 미치는 영향도 클 수 밖에 없다. 2024년의 대선 결과에 따라 트럼프 정부 출범 시에는 SPC의 권고사항이 적극 반영될 수 있지만, 바이든 정부가 지속되더라도 SPC 보고서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SPC 권고사항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보는 것은 한국 국방전략의 방향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꼭 필요하다. 

첫째, 한미동맹의 억제 태세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백에 대응하여 한국 전용의 핵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SPC 보고서는 핵강대국 간의 핵경쟁에 초점을 맞추므로 북한의 핵무기는 부차적인 위협으로 인식된다. 미국은 두 핵강국의 위협 하에서 북한의 미 본토 타격 위협이 가시화될 경우 확장억제 태세를 조정할 것이고, 이는 한국이 직접 북한을 억제할 수 있는 태세를 강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동북아 지역의 핵위협이 점차 고조될수록 미국 확장억제의 신뢰성은 지속적으로 의심받게 된다. 결국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고 북한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려면, 한반도에서의 확장억제 태세에 빈틈이 없도록 한국 방어에 전념할 수 있는 핵전력이 할당되어야 한다. 

둘째, 미국 전술핵무기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므로,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고 구체적인 핵 작전계획도 수립되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에서 탈퇴하고 다양한 전술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예견된 것이었지만, 바이든 행정부도 경쟁국들의 전술핵무기 위협을 무시할 수 없었다.

SPC 보고서에서도 역시 전술핵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는 전술핵무기의 한국 배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아산-RAND의 최근 보고서 내용과도 방향성을 같이 한다. 북한이 전술핵무기 사용을 위협하고 나서면서 한반도 억제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전술핵 사용을 고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와 ‘재래-핵전력 통합(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 CNI)’을 강화하는 가운데, 한국도 점증하는 핵사용의 위험을 고려하여 한반도 전구에서의 ‘모든’ 군사작전에 대한 기획과 실행을 주도해야 한다. 

셋째, 군사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표적화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SPC 보고서를 둘러싸고 억제의 효과성, 작전의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표적화 논쟁이 뜨거우며, 북한의 핵위협이 고도화될수록 한미동맹 역시 구체적인 표적화가 요구된다. 북한의 핵공격 징후를 정확히 식별하고 선제적으로 위협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전력에 대한 정보분석, 감시정찰, 지휘통제, 타격 및 방호, 사후관리로 이어지는 일련의 핵작전을 공백 없이 기획해야 한다. 

2023년 워싱턴 선언의 정치적 공약을 군사적 차원에서 이행하는 과정에서 표적화 문제에 대한 한미 간의 인식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표적을, 어떤 수단으로, 누가, 언제 타격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한 번 공동기획과 공동실행, 연습·훈련을 통한 지속적인 조정의 과정이 요구된다. 

넷째, 군비통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SPC 보고서는 군비통제보다 군비경쟁으로 방향을 설정했다고 비판받는다. 미국은 강대국과의 핵무기 감축을 이뤄낸 경험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전략경쟁에서 승리하고 전략적 안정성을 이뤄냈다는 인식으로 인해 군비통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 사이의 핵군축 시도 그 자체는 북한의 핵무장 용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한국은 섣부른 군비통제 시도를 저지하고 비핵화에 집중해야 한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양국의 공통된 목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하고 핵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위기관리에 나서야 한다. 한미 양국은 추구해야 할 현실적인 비핵화 로드맵과 위기관리 목표를 상호 간에 정렬하고, 전술핵 재배치 등 핵 억제를 위한 최적의 동맹전력을 구성함은 물론, 양자·다자 차원의 대북제재 이행과 반확산의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하여, 양국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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