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놀란 사람은 조희연 본인일지도 모른다.
아, 조희연이 누군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부터 하자면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성공회대학교 교수시다. 긴 시간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교육 경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교육 전문가’라기엔 좀 찝찝한 감이 없지 않다(대신 다른 쪽 경력이 많다).
그러니 서울시민들이 자기 손으로 뽑아놓고도 조희연이 누군지를 궁금해 하는 이 상황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영화배우로 비유하면 ‘문성근의 약간 섭섭한 버전’이니 혹시 길에서 만나면 저 사람이 새 교육감인가보다 하시면 되겠다.
민심은 좌파 교육감을 선택한 적이 없다
조희연 당선은 이번 선거 최대의 이변이었다. 아니 교육감 선거 그 자체가 깜짝 이벤트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 자유주의자(Libertarian)를 자처하면서 선거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큰소리쳤던 나도 이번 결과를 보면서는 침울해졌음을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17곳 중 4곳을 빼놓곤 전부 좌파라는 사실에서 잠시나마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제목 야하게 뽑기로는 전국 최강(?)인 조선일보가 다음 날 1면 톱기사 제목을 뽑아놓은 걸 읽고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조선일보는 이번 선거 결과에 ‘與도 野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것이다. 조선일보가 똥을 된장이라고 하면 그 된장을 고추장이라며 맞받아치는 좌파 언론들은 이게 또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좌파 교육감 당선자들을 축복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첫 번째로 지적해야 할 점은 좌파 언론들이 반복하고 있는 ‘민심이 좌파 교육감을 선택했다’는 논평이 틀렸다는 사실이다. ①전북과 전남을 제외하면 당선된 좌파 교육감들은 전부 절반 이하의 득표를 하는 데 그쳤다. ②좌파 교육감은 대부분 지역별로 단일화가 완료된 상황이었다. ③결국 ‘다수의 유권자는 좌파 교육감을 거부’한 셈이다.
여기에 대해 우파들은 ‘후보 분열’을 패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면 맞는 말 같지만 너무 단순한 해석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은 교육감 선거제도에서 여러 후보가 난립하는 건 어떤 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실은 좌파 후보들의 일사불란함이야말로 연구 대상일지도 모른다. 좌파 성향의 윤덕홍 후보가 중간에 주저앉지 않았어도 과연 조희연이 당선될 수 있었을까?
‘오늘의 너무 큰 성공’은 내일의 실패를 예약한다
출세를 지향하는 인간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우파의 기본 관점이라면 ‘왜 좌파처럼 단일화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제도의 합리성에 대해 고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덧붙여, 결과가 마음에 안 들게 나오자마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 우파들에게도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싶다.
임명제로 바꿨는데 다음 대통령으로 박원순이 당선되면 그땐 다시 직선제를 주장할 건가? 그런 속보이는 행태는 ‘좌익들의 전매특허’라며 비난해 오지 않았던가. 우익은 모두가 오늘만 볼 때 내일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전교조가 이번 선거에서 어부지리로 이득을 챙겼다 한들 그것이 얼마짜리인지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 다음날부터 뜻하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전교조는 사실 구석에 숨어 있을수록 유리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중앙무대에서 조명을 받기엔 켕기는 게 너무 많은 자들이다.
전교조 이미지가 얼마나 안 좋은지는 지난 2012년 치러진 문용린 대 이수호의 대결을 보면 알 수 있다. 전교조의 ‘끝판왕’ 이수호가 출마했던 이 선거에서 문 후보의 득표율은 54%로 37%의 이수호 후보를 압도했다. 같은 날 치러진 대선에서 서울 표가 문재인에게 몰렸다는 걸 생각하면 ‘대통령은 문재인 찍어도 교육감은 전교조 안 찍는’ 여론이 엄존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원순의 득표율 56.1%는 조희연의 득표율 39.1%를 크게 상회한다. ‘시장은 박원순 찍어도 교육감은 전교조 안 찍는’ 여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데도 민심이 조희연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다수의 서울시민은 박원순을 선택했지만 조희연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이게 다 전교조 때문이다”
전국 각지의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상정하면 좌파 교육감의 너무 많은 당선은 오히려 그들 스스로의 입지를 옥죄는 새옹지마를 도출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전교조든 좌파 교육감이든 만수무강하고 싶다면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민심은 결코 그대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으므로.
물론 좌파 교육감들에게 허락된 막대한 인사권과 예산권은 오롯이 그들 몫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시기를 부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잘 버텨내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어쨌든 혁신학교와 세금급식(무상급식)은 확대될 것이다. 신규교사 채용의 문은 좁아질 것이다. 교육청 근방엔 수염 기른 아저씨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마저도 전교조의 진정한 승리로 연결되진 못할 것 같다. 학생들은 교육감과 선생님보다는 엄마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분이 가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싶은 게 그 무렵의 질풍노도다. 우리는 이미 전교조 20년 세월이 청년우파 네트워크를 출현시키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정책에서 이기고 여론에서 지는’ 방향으로 갈 확률이 큰 좌파 교육감의 압승은 훗날 어떤 반작용을 도출시킬까.
교육계의 좌파들이 활동하기엔 김상곤이나 곽노현 같은 ‘선구자’들이 하나둘씩 침투해서 혁신적(?) 정책들을 서서히 내보내는 ‘보수적 방식’이 나았을지 모른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좌파의 교육청 대거 입성은 그들 스스로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게 다 전교조 탓”이라는 아우성이 전국 각지에서 터져 나올 확률도 높아졌다. 압도적 승리와 함께 축포를 울리며 출발했던 MB정부 또한 바로 그런 식으로 침몰해가지 않았던가.
선거 결과에 실망했을지언정 절망까지 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의 교정에 필요한 것은 무분별한 평등이 아닌 원칙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여, 고개를 들라. 결말이 예고된 비극은 더 이상 슬프지 않은 법. 이것이 게임이라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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