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불사(不死)를 원했으나 병이 깊어 결국 죽었다. 그의 권력은 환관 조고(趙高)와 승상 이사(李斯)에게 넘어갔다. 환관 조고에게는 ‘지록위마’로 상징되는 권력 운용의 기술이 있었고, 승상 이사에게는 분서갱유를 입안하고 강행하리만큼 독한 추진력이 있었다.
둘은 권력의 라이벌이었으나 진시황의 죽음을 감추고 권력을 공유하기 위해 공동운명체로 결탁했다. 하지만 권력이란 아버지와 아들도 나눠가질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둘의 공생관계는 오래 갈 수 없었다.
기원전 208년, 진(秦)에 멸망한 초(楚)의 재건을 내걸고 반란군을 결집시킨 항량(項梁)이 항우와 유방의 군사를 이끌고 중원을 공격해오자, 승상 이사는 환관 조고가 거느린 사병(私兵) 10만의 출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조고는 이렇게 말했다. “승상! 내가 가진 10만의 병사는 나의 목숨이오. 만일 내가 승상에게 그들을 내준다면 그 날로 내 목은 즉시 승상의 칼에 떨어지리다.”
승상 이사는 그러한 조고의 비웃음에 진지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지금은 열세요. 나라가 있어야 나 이사도 있고 그대 조고도 있는 것이 아니오? 만일 반란군이 입성한다면 그대나 나나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다.”
그러자 조고는 하늘을 보고 웃었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지금은 내 목숨이 더 중요합니다. 내 승상에게 충고 하나 하지요. 승상은 내게 도전하지 마시오!” 결국 이사는 조고의 10만 사병을 포기하고 자신을 호위하던 군사까지 모두 내보내야 했다.
그러자 바로 조고는 자신의 사병을 동원해 이사를 반란죄로 체포해 그의 목을 쳤다. 조고의 전략은 사람 좋다는 유방에게 항복해서 뇌물을 주고 목숨을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고의 전략은 빗나갔다. 유방이 아니라 항우에게 잡혔고, 항우는 가차없이 조고의 목을 날렸던 것.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왼쪽부터)와 류석춘 혁신위원장, 정우택 원내대표가 9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정당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 연합 |
결자해지를 거부하는 친박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그리고 헌정 사상 최다 대선 실표(失標)로 패배한 자유한국당의 현재 모습은 딱 진시황이 죽은 후의 진나라와 같다. 홍준표라는 승상 이사와 친박 환관 조고들 간에 권력투쟁의 현실이 그렇다.
그 결과, 누가 승리할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탄핵으로 권토중래한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이라는 도전 앞에 한국당은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분열된 집은 반석 위에 세울 수가 없다’고 했다. 결단이 아니면 분열은 해결되지 못한다. 홍준표 대표는 지록위마의 권세를 누렸던 친박 조고에게 결자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속 군상들의 생리가 변할 리가 없다. 조고가 진시황의 시신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그의 죽음을 감췄던 것처럼, 친박은 박근혜의 정치적 죽음을 감추고 있다. 이들에게는 조고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나 보수의 생존이 자신들의 관심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문재인 정권에 의해 적폐세력으로 청산되나, 정적인 홍준표에 의해 청산되나 마찬가지이므로 차라리 한국당을 자신들이 접수해서 야당으로라도 정치적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기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다. 보수가 망하든, 나라가 망하든 다음 총선에서 배지를 달면 그만 아니겠는가. 친박들의 말과 주장에서 환관 조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환청인가.
역사는 우리에게 규범이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이 규범을 만들어 낸다는 진리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다.
정치란 현실의 사태들에 대응해서 적과 동지를 배치하는 구체적인 질서와 행동들인 것이지, 옳고 그름을 따져서 진리를 규명하는 작업이 아니다. 탄핵이 비록 위헌적이고 부당한 것이었다고 해서, 그 탄핵의 결과가 다시 되돌려지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탄핵을 되돌리려면 내전을 치러야 하고 내전을 치르려면 목숨을 각오하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파 보수진영에 그렇게 할 세력이나 인물들은 없다. 그럴 이들이 있었다면 탄핵은 진작에 국회에서 결의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당 개혁 이끌 제2기의 혁신위 구성해야
자유한국당의 무기력한 현실은 자체 내부적으로는 혁신되지 못한다. 정치에 뜻이 있는 인물들이 혁신위를 하고 있기에 그들 역시 누가 자신에게 공천을 줄 것인지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오늘 승상 홍준표 대표의 목소리가 크면 거기에 따르고, 내일 환관 친박의 목소리가 크면 거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지금 자유한국당 혁신위 사람들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한국당의 혁신위가 혁신의 대상’이라는 비판이 다 나오는 상황이 아니던가.
따라서 자유한국당은 현재의 혁신위를 제1기로 끝내야 한다. 이들의 역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과 친박의 두목들을 함께 청산하는 결론으로 족하다.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다만 현재의 한국당 혁신위는 자신들의 결론을 당에 실천으로 요구할 능력도 정치력도 없기에 스스로 짐을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혁신위 제1기에 이어 혁신안을 실천에 옮길 전위대의 성격을 가진 혁신위 제2기가 출범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당 혁신위의 안을 친박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각성을 촉구한다. 만일 홍준표 대표가 승상 이사처럼 친박 조고의 거부에 밀리면 조고가 이사의 목을 반란죄로 쳤듯이, 반드시 홍준표의 정치적 목을 날릴 것이라는 것은 권력의 속성상 중언부언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들의 생각은 천년만년 야당을 하더라도 자연사할 때까지 권력의 금배지를 다는 것 외에 그 어떤 관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단되는 이유는 이들이 박근혜라는 진시황을 등에 없고 환관 조고처럼 지록위마의 권세를 누렸음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탄핵 투쟁 국면에서는 모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박근혜의 정치적 동지들이었다면 보수 우파의 탄핵 거부 투쟁 선두에 나섰어야 했고, 박근혜가 옥에 갇힐 때 자신들의 금배지를 떼어 내고 박근혜를 가둔 교도소 정문 앞에 천막이라도 치고 농성을 했어야 했다.
환관 친박의 무리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1심 유죄판결이 나오더라도 항의하는 차원에서 그 누구 하나 정치적 자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박근혜라는 존재는 그저 자신들의 권력추구 도구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그러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패배했으며, 정치적 재기의 꿈이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패배는 나의 몫으로 가져가고 최후의 승리는 보수의 몫으로 남겨두겠다’는 살신성인의 덕(德)을 품어야 모두가 산다. 하지만 이제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로는 기대하기가 난망하다.
지난 겨울, 우파 보수는 태극기를 손에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는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한 숭배를 가진 이들도 있었고, 박근혜라는 개인보다 대한민국의 법치가 무너졌다는 울분에 뛰쳐나온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태극기 시민들의 수가 촛불보다 많으면 탄핵이 기각되리라는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권력투쟁의 승자가 역사의 심판대에 서야
하지만 탄핵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그 정치란 주권자의 행위라는 것이고, 주권자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통령님 보고 싶어요’라고 소리치는 팬클럽이 아니라 위헌적, 초법적인 탄핵철회를 하지 않으면 5·18 광주처럼 태극기를 든 손으로 총과 칼을 들겠다는 헌정수호 정신의 주권자적 결단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를 이끌었던 그 누구도 그런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것은 우파보수의 한계였다기 보다는 탄핵심판의 결과를 우리가 ‘기각’으로 기대했기 때문이고 보수우파 스스로 법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탄핵심판에 대해 우리는 법치적 관점에서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선택은 저항이 아니라, 법치와 체제에 순종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 민주적 방법으로 정권을 되찾는 일이다. 그것은 선거로만 가능하며 선거란 일반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의 창출에 있으며 정권을 창출하려면 주권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미 많이 늦었다. 그나마 더 이상 늦으면 기회가 아예 사라진다. 정치적 권력투쟁은 여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끝장을 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승리한 자가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변화에는 운명이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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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데 누구한테 망하는지 알기들이나 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