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美-中 해저 케이블 전쟁 시작...한국 케이블 70% ‘먹통’ 위험
[심층] 美-中 해저 케이블 전쟁 시작...한국 케이블 70% ‘먹통’ 위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24.10.04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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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해저 케이블 중 9개는 중국 및 사실상 중국의 영향력 하에 놓인 홍콩을 거쳐 해외로 연결
해저케이블 다자간 안보협의체 참여 서둘러야

최근 해저 케이블이 글로벌 사업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간에 해저 케이블을 둘러싸고 새로운 경쟁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LS가 10조원 대의 서해 케이블 사업 수주와 글로벌 영역으로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미중 간에 해저 케이블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 면밀한 관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의 해저 케이블 대부분이 중국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안보 위협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저 케이블이 미중 간에 새로운 전략 경쟁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9월 21일 호주 IT 기업 '아틀라시안'은 호주 정부로부터 4000㎞에 달하는 해저 전선 케이블 건설 계획을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이 케이블은 호주 해안에서 시작해 싱가포르로 연결되며 호주의 막대한 태양광 패널 전력을 싱가포르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완공은 2029년으로 예측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송전 시스템으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에 뜻하지 않은 경고음이 들어왔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0월2일, 30명 넘는 관계자들과의 인터뷰 및 자료를 토대로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늘어나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인터넷망 개설에 핵심 역할을 담당해 온 해저 케이블 사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해당 지역에서 충돌 위험이 커지면서 기존에 매설된 해저 케이블의 유지 보수비용이 증가한 것은 물론이고, 설비 증설에도 위험이 따르며 많은 사업자들이 대체 경로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베트남이 추진 중인 해저케이블 신규 설치 계획과 관련해 베트남에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의 계열사로 의심되는 해저케이블 기업 등과 거래하지 않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 9월 19일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최근 디지털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국가와 기업 간 데이터 이동의 핵심 인프라인 해저케이블의 전략적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해저케이블은 위성통신보다 안정적이고 대용량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전 세계 데이터 이동의 95% 이상을 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 운영 중이거나 설치가 계획된 해저케이블은 약 600여개 총 120만km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클라우드 컴퓨팅, 5G 네트워크부터 전자상거래, 금융 서비스, 비디오 스트리밍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경제 활동이 해저케이블이라는 보이지 않는 글로벌 정보 고속도로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본격적인 중국 견제 시작..한국은?

해저케이블 시장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SubCom, 프랑스의 Alcatel Submarine Network, 그리고 일본의 NECCorporation 3개 기업의 과점 체제였으나 최근 중국의 HMN Tech(前 Huawei Marine Network)가 급속히 성장해 2019년 기준 전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의 11.4%를 차지했으며, 2025년에는 시장점유율 20%까지 넘보고 있다. 이렇게 중국 해저케이블 업체의 급속 성장의 배경에는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추진한 디지털 실크로드 정책이 있다. 

중국은 해당 정책을 통해 향후 데이터 산업의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과 디지털 연계성을 강화함으로써 자국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글로벌 영향력의 확대를 목표로 한다. 미국은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 정책을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고 2015년부터 해저케이블 프로젝트에서 중국 업체를 배제시키는 등 적극적인 對중국 견제를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은 동남아(SEA)에서 중동(ME)을 지나 서유럽(WE)을 연결하는 총 연장 19,200km에 달하는 SEA-ME-WE-6 해저케이블 프로젝트 컨소시엄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냈음에도 중국 업체인 HMN Tech를 탈락시켰다. 

미국은 HMN Tech를 국영 기업인 Hengtong(亨通) Group이 소유한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대리인(proxy)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HMN Tech는 이에 굴하지 않고 China Mobile 등과 함께 파키스탄에서 동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을 연결하는 PEACE(Pakistan, East-Africa Connecting to Europe) 해저케이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해저케이블 패권경쟁에 돌입하면서 거의 동일한 노선에 두 개의 다른 해저 케이블이 네트워크 선점 효과를 두고 경합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의 해저 케이블의 70%이상은 중국과 홍콩에 연결되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중국 vs 대만 대리전 양상도

중국의 해저케이블 굴기(屈起)가 우려되는 이유는 중국 주도의 해저케이블 확장이 초래할 네트워크 선점 효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군사적 목표를 위해 해저 케이블을 의도적으로 훼손한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23년 중국 함정은 대만과 마주섬(馬祖島, Matsu Island)을 잇는 해저케이블 2곳을 훼손해 통신장애를 일으킨 바 있다. 중국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대만은 이를 유사시 대만 전체를 통신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중국의 회색지대전술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저케이블 유지보수에서 중국 국영 기업인 SB Submarine Systems(SBSS)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안보위협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해저 케이블을 유지보수할 수 있는 전용 선박은 50척에 불과해 Google이나 Meta와 같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도 자사가 소유한 해저케이블 유지보수를 위해 SBSS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SBSS의유지보수 서비스가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SBSS는 유지보수 중에 선박의 송수신기를 의도적으로 꺼서 자신의 수리 위치를 은폐한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해저케이블 소유자 입장에서는 대체 어느 구간이 수리되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에 대만의 중화전신(中華電信)은 최근 Google, Meta와 함께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해저케이블 프로젝트인 Apricot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일본, 인도네시아, 괌을 연결하는 총11,972km 길이의 해저케이블로 최초 계획에는 홍콩이 경유지로 포함됐으나 미국 정부의 요구로 홍콩을 제외시키고 인도태평양 6개 지역을 연결해 중국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을 최소화했다. 대만은 2026년부터 Apricot을 통해 괌을 거쳐 미국본토와 안정적으로 통신망이 연결될 예정이다.

중국 경유하는 70% 한국 해저 케이블 

한편 한국의 해저케이블은 안보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다. 한국에서 해외로 연결되는 해저케이블은 현재 총 11개이다. 이 케이블의 대부분은 거제와 부산 등 동남권 육양지(Landing Site)를 통해 해외로 연결되는데, 11개의 해저케이블 중 9개는 중국 및 사실상 중국의 영향력 하에 놓인 홍콩을 거쳐 해외로 연결된다. 중국을 경유해 해외로 통신을 제공받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데이터 관련 안보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인다. 

양안 갈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된 대만 경유 해저케이블까지 제외하면 지정학적으로 안심할 수 있는 연결은 단 1개뿐이다. 대만이 총 15개의 해저 케이블을 통해 해외와 연결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한국은 경제규모에 비해 해저 케이블의 숫자도 작고 그 마저도 대부분 중국과 같이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국가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태안 1개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육양지가 부산과 거제에 몰려있어 유사시 부산과 거제 지역의 해저 케이블이 외부 테러로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나라 전체 통신 회선의 72%를 한꺼번에 상실할 수 있다.

해저케이블을 둘러싼 미중 간 보이지 않는 패권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시장에서 중국 업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과 동시에 해저케이블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對중국 디리스킹(de-risking)을 위한 對중국 디투어링(우회, de-touring) 작업까지 본격화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관련 리스크 대응을 위한 기업 및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안보적 요소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이에 따라 비용이 저렴한 중국 해저케이블 업체가 시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기업에게 기회가 열릴 수 있다. 

한국경제인엽합(한경연)은 최근 관련 보고서에서 '중국 업체보다 비용 측면에서는 다소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중간 수준 이상의 품질과 기술력,그리고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영활동을 이어 나간다면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해저케이블이 가지는 국가안보적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의 이중화 및 복원성 개선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 확충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해저 케이블 유지보수 전용 선박 개발을 위한 기술개발 및 자금지원에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QUAD(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에서 논의 중인 Partnership for Cable Connectivity and Resilience와 같은 해저케이블 관련 다자간 역내 안보 이니셔티브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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