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든 그리피스 (Sir Eldon Griffiths) 前 영국 환경부 장관 · 한미우호협회 Southern California Chapter 회장 · World Affairs Council 회장
김상철 씨는 이상주의자였습니다. 명예, 선한 일, 가족의 가치와 나라 사랑을 품어온 확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변호사로서 그분은 인내심이 많았으며 정중했고 신중했습니다. 그런 직업적 특징은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는 부당함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그분의 헌신을 제약하거나 바꾸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사로 활동했던 한미우호협회를 통해 저는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가족은 서울과 캘리포니아에서 김상철 씨와 자주 회동을 했습니다. 당시 그분의 관심은 북한의 기근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중국 북쪽으로 탈출한 북한 난민들을 도아 이들이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 경제 그리고 외교적으로 이 과업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상철 씨는 수년 간 이 일에 전념했습니다. 자신의 에너지, 아는 사람들, 대외관계 능력 등을 저 역시 지지했고 존경했던 이 일에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김상철 씨를 통해 저는 한국의 많은 고위 관료들과 기업인, 기독교 교회 지도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서울시장으로 임명되던 해에 기뻤고 며칠 뒤 그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야 했던 것에 끔찍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유감스러운 이야기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제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취임한 후 48시간도 되지 않아 저는 다른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신임 서울시장이 된 그와 사적으로 만찬을 하는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연회장에서 그는 약속한 시간에 우리를 맞이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의 30분가량 늦게 온 것에 놀랐습니다.
그는 도착하면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건배를 들었지만 김상철 씨의 마음과 생각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떠난 후 그는 비로소 제게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날 밤 김상철 씨는 김영삼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를 갔습니다. 그는 경고를 받았고 김 대통령은 김 박사에게 서울 시장을 그만두라고 지시했습니다.
언론에 소개된 이유는 전혀 정당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상철 씨는 제가 그의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해질녘의 시간을 보냈던 집을 자신의 소유가 아닌 땅에 지었고 지역 계획위원회의 동의 없이 자신의 정원을 확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변호사이자 근면하고 성실한 그분이 일부러 다른 사람의 땅을 침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는 정치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한국 정치를 흉하게 만들 수 있는 부패의 근절을 정강으로 삼고 선거운동을 펼쳤습니다. 김상철 씨는 손쉬운 희생양이었습니다. 그는 마녀사냥을 하는 미디어와 좋게 보이려는 대통령의 야망의 제단에서 희생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일로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국내적 혹은 국제적으로 더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한 사람에 대한 정치적 암살이라고 믿습니다. 김상철 씨는 한 영국 정치가의 말처럼 자신이 살기위해 친구들을 죽이는 대통령의 희생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철된 그의 신념
하지만 김상철 씨는 자신의 길을 그대로 갔습니다. 그는 중국에 오랫동안 억류된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구출해내는 운동을 전개하고 또 전개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한국통일의 필요성을 소개하는 소양 있는 대변인이 되었습니다. 아세안(ASEAN) 국가들의 다양성 가운데 연합을 강조하는 그는 한미우호협회에서 시작된 회원을 싱가포르, 태국, 미얀마,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에서 같은 뜻을 가진 조직들로 확대했습니다.
저는 서울과 홍콩에서 김상철 씨가 주최한 행사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행사에는 멀리 델리, 마닐라, 야블론, 상하이 등에서 날아온 대표단들이 자신들의 고유 전통의상을 입고 춤추며 자신들의 국가를 부르면서 손을 잡고 태평양 아시아 커뮤니티 회원으로 공통의 정체성을 축하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김상철 씨를 기억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정의를 위한 싸움, 뛰어난 학식, 본질적인 자상함 등입니다. 오랜 투병 끝에 겨우 66세의 나이로 그분이 세상을 떠난 것은 한국과 미국의 모든 친구들에게 큰 상실입니다. 또한 한국 통일부의 지원으로 김상철기념사업회가 그를 추모하는 책을 출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제 책상 위에 적혀 있는 아래 영국 시의 한 구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 분을 추모하는 여러분의 활동에 동참하며 감사를 표합니다.
“좋은 친구는 기쁨을 두 배로 하고 슬픔은 반으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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