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동북아를 지키는 미군 힘의 원천
오키나와, 동북아를 지키는 미군 힘의 원천
  • 김효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전문위원
  • 승인 2017.03.14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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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관념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문다. 그런데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공간이 갖는 ‘현장성’은 종종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직관을 선사하기에 ‘현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일본 남쪽 최변방, 본토에 사는 일본인들과 정서가 다른, 미군 덕에 먹고 사는 보잘 것 없는 섬 정도로 오해했던 정체불명의 땅. 오키나와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목록이다.

남쪽의 나하 시내로부터 북부의 나고, 니키진 유적과 에메랄드 비치로 유명한 해안가를 돌다 엉뚱하게도 이 섬이 갖고 있는 전략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감각이 깨어난다.

▲ 미 군부의 셈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남한과 오키나와 둘 중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면 미국은 어디를 포기할까? 단언컨대 남한 땅이다. 통일 한반도를 이루지 못한 남한의 존재는 계륵과도 같다. 중국과는 바다를 경계로 서로의 ‘평화선’을 유지할 수 있다. 애치슨 라인은 그 증거였던 거다.

망망대해 태평양 한가운데 대륙의 동북과 동남 사이 남쪽 끝에 자리한 이 작은 섬이 가진 지정학적 가치는 미국에겐 신이 내린 선물이고 중국으로선 쿠바가 미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턱 밑에 박힌 가시다. 해방정국 당시 미 군부가 남한에 대해 그리도 미온적이었던 근본 이유가 오키나와를 점유한 덕택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미 군부의 셈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남한과 오키나와 둘 중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면 미국은 어디를 포기할까? 단언컨대 남한 땅이다.

통일 한반도를 이루지 못한 남한의 존재는 계륵과도 같다. 중국과는 바다를 경계로 서로의 ‘평화선’을 유지할 수 있다. 애치슨 라인은 그 증거였던 거다.

지금 중국이 원하는, 곧 미국에게 태평양을 ‘반분’하자고 조르는 도발적 제안은 한반도라는 애매한 반도 땅은 잊고 과거 애치슨 라인이 보여준 것 같은 ‘바다의 선’을 기준으로 상호 패권을 인정하고 안정시키자는 유인이다. 물론 여기에 한국의 안위 따위는 없다. 다행히 미국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북핵 문제만 해결한다면, 미국은 남한을 제물로 삼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북핵이 아니라면 동북아 역내에서 남한이 차지하는 안보적 중요성과 군사적 필요성은 얼마인가?

미국이 중·러와 충돌을 감수하면서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엉뚱한 영토적 야망을 본격화하지 않는 한, 남한의 전략적 가치는 오키나와보다 작다는 인식이 애치슨 라인이었던 거다.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동북아 미군전략의 두 핵심

미국에게 일본은 지리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공간을 개별적이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도록 제공하는 유일한 동맹국이다. 미군에게는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는 서로 다른 작전이 가능케 하는 사실상 두 개의 다른 동맹지인 셈이다.

미국에게 오키나와가 없는 일본은 안보 관점에서는 절름발이와 같다. 미국이 중국과 북한을 향해 발휘하는 막강한 억지력의 원천은 괌과 일본 본토의 중간에 위치한 오키나와에서 비롯된다.

동북아에서 미군의 군사적 지위를 떠받치는 두 개의 일본 땅은 마치 장기판의 왕을 지키는 두 개의 포(包)와 같은 존재다.

한국은 어떨까? 결정적 ‘한방’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기왕에 있으면 좋으나 또 없어도 그만인 상(象, 코끼리)과 같다. 그럼에도 이 한국은 동북아 초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뭔가 독자적인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방법은 있다. 기존의 세계 안보 규범(governance)을 논리적으로 깨는 도전을 감행할 때다.

정상국가라면 핵 무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그러나 북한 핵이라는 현실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핵 질서의 규범을 타파하려는 논리와 설득, 행동이라는 3박자를 정치적으로 동시에 추진하면 핵 강대국들의 기득권을 흔들 수 있다. 그 정도 모험은 감행해야 동북아에서 한국의 상대적 자율성을 운운할 가능성이 열린다.

외교란 실질적인 물리력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 공염불일 수 밖에 없다. 단지 외교로 중국의 대남 협력과 존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착각은 희망고문조차 되지 못하는 자가당착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존중해야 할 진짜 이유가 있기나 할까? 중국인들이 한류를 좋아한다고 중국이 한국의 안보를 존중할 거란 발상은 유아적일 뿐이다.

오키나와의 존재는 한국에게 동북아 안보 질서의 현실을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도대체 일본이 어떻게 미국으로부터 변함없는 전폭적인 안보 지원을 받는지를 설명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역사적으로 아픔의 땅일 수 밖에 없는 그곳이 동북아 패권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에 썩 공감이 안 된다면 현장을 가보라. 나하 국제공항과 맞닿아 있는 공군기지에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최신예 미 공군기들의 이·착륙 모습을 아침마다 목격할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제트기 굉음 속에 무방비로 노출될 때 당신 내면의 직관이 속삭일지도 모른다. 한국이 어떤 안보.외교 플레이를 해야 살아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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