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정책위원장
헌법재판소는 각종 법령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이름 그대로 재판소다. 법의 정당성 여부를 가려야하는 만큼 법 조항과 헌법정신과의 정당성 여부를 면밀하게 살핀다. 헌법재판소의 설치나 활동 자체가 법에 근거한 것이고, 다른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판단의 정당성도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헌법재판소의 모든 결정과 판단은 법리에 충실해야 한다.
▲ 1월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엄마부대 회원 등 시민들이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 연합 |
대통령 탄핵심판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인지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전기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법리의 해석과 판단도 공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과연 헌재가 법리에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의심할만한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다. 헌재의 심판이 법리를 뛰어넘는 잘못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과정 자체가 정당하지 못하고, 그것에 따라 도출된 결과 역시 정당한 효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의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시할 수 있다.
수사, 재판, 소추 중인 사건에 대한 사건기록 열람 허용은 위법
첫째, 부당하게 자료 열람을 허용한 것은 위법이다. 헌법재판에서 재판, 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 기록을 요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헌재는 국회 소추위원 측이 요청한 인증등본송부촉탁 공문을 검찰에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순실, 안종범 등 이번 사건의 주요 피고인들의 수사기록을 열람, 복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명백한 법률 위반이다.
헌법재판소법 제32조는 “재판부는 결정으로 다른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의 기관에 심판에 필요한 사실을 조회하거나, 기록의 송부나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하여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이 시작된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소추위원 측이 신청한 인증등본송부촉탁 공문을 서울중앙지검 등에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은 전날 열린 1차 준비기일에서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주요 피고인들의 수사기록 등을 확보하기 위해 헌재에 인증등본송부촉탁을 신청했었는데, 헌재 재판부가 이를 승인한 것이다. 헌재는 헌법재판소 심판규칙 제39조를 근거로 승인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건이 완결된 경우에 한하는 것이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열람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서증(사건 관련 수사기록 등의 증거자료) 신청에 관한 사항을 명시한 헌법재판소 심판규칙 제39조는 “서증의 신청은 제34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 문서를 보내도록 촉탁할 것을 신청하는 방법으로 할 수도 있다. 다만, 당사자가 법령에 따라 문서의 정본이나 등본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며, 위 규칙 제40조 제1항 및 제2항도 “법원, 검찰청, 그 밖의 공공기관(다음부터 이 조문에서 이 모두를 ‘법원 등’이라 한다)이 보관하고 있는 기록 가운데 불특정한 일부에 대하여도 문서 송부의 촉탁을 신청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제1항의 신청을 채택한 경우에는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법원 등에 대하여 그 기록 가운데 신청인이 지정하는 부분의 인증등본을 보내 줄 것을 촉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재판·소추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진행이 완결되어 보관 중인 기록에 대한 규정이다. 결과적으로 헌재의 자료 열람 승인은 이뤄졌고, 국회 소추인단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통령 측 탄핵심판대리인단은 헌법재판소의 수사기록 송부촉탁 결정에 대해 법과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의 준비절차 수명(受命) 재판관으로 지정된 이정미·강일원·이진성 재판관은 그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의 법률 위반 사항이다.
없는 규정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헌법재판관의 월권
헌재 재판부가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이의를 기각한 것은 헌법재판소법 제10조(규칙제정권)를 들어, 헌재가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필요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해석한 때문이다. 즉 제10조(규칙 제정권)는, 헌법재판소는 이 법과 다른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심판에 관한 절차, 내부 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규칙은 관보에 게재하여 공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이정미 재판관은 이 조항이 헌재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칙 제정권 조항이 법 제32조 위반을 정당화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위 규칙 제정권에 따라 법 제32조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는 규칙이 이미 제정되어 있고, 그 규칙에 따라 이번 송부 요구 행위가 이뤄졌다면 당연히 맞는 것이지만 이번 경우는 법취지를 왜곡한 과도한 해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기소(소추)한 후이고, 형사공판이 시작되기 전 시간대였으므로 ‘재판, 소추 진행 중인 사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하여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는 법 제32조 규정을 기소 후 제1회 공판기일 전 틈 시간대엔 송부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해석일 뿐이다. 여기서 ‘재판 진행 중’이란 ‘공소제기부터 소송절차가 종결될 때까지의 전절차’를 의미하는 ‘공판절차 진행 중’이라는 의미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신속재판’이 법률위반 면죄부는 아니다
헌재는 탄핵재판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속개를 계속하고 있다. 적법한 절차 범위 내에서 진행하는 것은 헌재의 재량 판단 범위에 드는 것이지만 ‘법’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초반 진행 단계에서 재판부는 대통령 변호인단에게 서둘러 제출서류의 증거동의 여부를 압박하고 나왔다.
헌법재판소 심판규칙 제62조(서증에 대한 의견진술)는 “소추위원 또는 피청구인은 증거로 제출된 서류를 증거로 하는 것에 동의하는지 여부에 관한 의견을 진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록 등의 서류를 증거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의견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선택적인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절차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서 헌법재판소법 제32조 단서에 위반하여 송부 받은 수사기록 3만2천 쪽에 대하여 위 심판규칙 제62조에 따른 증거동의 일정을 대통령 측 심판대리인단에 지속적으로 재촉했다.
3만2천 쪽을 열람, 복사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다 그것을 읽어보고 검토하는 시간 또한 상당하다. 대강의 내용만을 살펴보는 수준이라면 서두르거나 건너뛸 수도 있지만 자료의 정당성, 적법성 여부, 반론과 변론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꼼꼼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서두른다 하여도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헌재는 이런 실정을 무시한 채 단지 며칠 만에 증거동의 여부를 재촉하는 자세를 보였다. 사건 기록을 다 검토하기도 전에 증거 여부를 밝히라는 것이다.
헌재에 의한 적법절차 위반의 중대성
헌법재판소는 재촉의 이유로 ‘신속’이란 재판 이념을 들고 있으나, ‘신속’도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 원리의 실체적 측면인 적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신속이어야 하며, 그 한도를 초과할 때에는 ‘졸속’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심판규칙 제62조는 탄핵심판절차에 대한 특별규정으로서 형사소송법상 증거인부 절차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좁게는 전문법칙 넓게는 위법수집증거배제의 법칙에 관련되어 있다.
형사소송법상 전문법칙(傳聞法則-전해들은 이야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뜻의 법률용어)과 위법하게 만든 증거 또한 증거능력이 없다는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은 재판의 중요한 사항이다. 이는 각각 반대신문권의 보장과 헌법 제12조 제1항 상 적법절차 원리가 형사소송 절차 속에서 구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법 제32조 규정을 위반하여 송부 받은 방대한 수사기록에 대해 철저하게 증거인부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히 헌법재판소 심판규칙 제62조를 위반한 정도에 그치는 성격의 일이 아니라, 헌법재판소 자체의 부활을 가져온 1987년 개정 헌법의 핵심인 적법절차 원리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일이 된다. 한마디로 재판 자체를 진행할 수 없으며, 어떤 결론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원천적으로 정당한 효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된다.
헌재 심판은 단심제로 진행되는 탓에 더 이상의 불복절차가 존재할 수 없으며, 헌법질서 보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명백한 법 규정과 중대한 헌법원리 위반을 스스로 범한 채 종국결정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헌법재판소의 최종심적 권위에 막대한 손상을 초래함은 물론 우리 헌법질서 상에도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며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는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공허하고 위험한 신속과 공정을 외치기 전에, 송부 받은 수사기록에 대한 증거 동의(인부) 절차를 철저히 거쳐야 할 것이며, 전문법칙과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적용되어야 하는 기록들에 대해서는 판단의 오염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 최종심의 최고 권위는 끊임없는 자기 점검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임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공정한 법률의 집행은 법치의 기본이며 시작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 재판을 진행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헌재가 헌법수호의지와 양식이 있는가를 심판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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