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한국 언론들의 ‘먹물주의’ 가식과 위선은 미국 대통령 선거 분위기를 터무니없이 보도했고, 그 결과에 대해서 여전히 뻔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춘근 박사는 트럼프의 유능한 협상 능력을 일찍이 포착하고 있었다.
역사상 가장 다이내믹 했던 미국 대선이 끝났다. 소위 미국의 주류 언론사들과 이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따라 옮기는 한국의 언론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승률 91%라는 힐러리를 제치고 승률 9%에 불과했던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트럼프가 당선된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들 언론들은 이 같은 상황을 “이변” 혹은“ 대역전극” 등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하는 언론들과 분석가들이 적지 않았으며 한국에서도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했던 사람들이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존재하고 있었다.
필자는 작년 가을 이래 트럼프 현상의 특이성에 주목하고 트럼프를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럼프의 경선 가능성을 예측했고 그 이후 2016년 11월 9일 오후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까지 각종 강연, 기고문, 유튜브 등에서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일관성 있게 주장해 온 학자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힐러리의 당선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와중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말했던 필자는 나중에 필자도 저들에 의해 마치 트럼프와 동류의 또라이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된 날 전화가 너무나 많이 왔고 문자도 너무나 많이 왔다.
필자의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모르는 번호들이 쉬지 않고 울렸다. 지난 1년 동안 필자는 미국 대선에 대해 여러 차례 강의도 하고 신문과 인터넷에 글을 썼지만 그동안 필자에게 미국 대선에 관해 문의하지 않았던 분들이 전화를 많이 걸었다.
이변(異變)의 시작
젊은 연구원인 제자가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의 정확한 예측에 감동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맞힌 것이 아니라 한국의 언론이 틀린 것,’ ‘한국 언론은 내일 뭐라고 말할까?’ 라는 답장을 보냈더니 “미국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할 거예요” 라는 답장이 왔다. ‘그게 바로 정답이겠구나’ 라고 다시 답장을 보내줬다.
미국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5년 6월 무렵 필자는 나름 정치학도로서 공화당의 후보는 젭 부시(Jeb Bush)가 될 것이고, 민주당의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될 것이다, 그리고 2016년 11월 치러지게 될 대선전에서 승자는 젭부시가 될 것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별 재미없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미국 선거에 관련된 정치학 이론을 동원한 그럴 듯한 근거를 가지는 것이다.
아버지와 형이 대통령을 지낸 명문가의 아들이자 플로리다 주지사를 성공적으로 역임했고 형인 조지 W. 부시 보다 훨씬 더 총명한 사람으로 인식된 젭 부시는 또한 공화당을 구해낼 수 있는 구세주처럼 인식되었다.
민주당에서는 사실상 힐러리 클린턴에 필적할 만한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 힐러리는 당연히 후보가 되어야 할 상황에 있었다. 그리고 미국 선거 사상 같은 당 출신이 3번 연속 선거에 당선될 확률은 희박하다는 게 정설이니 부시의 승리를 예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역사상 한 정당의 다른 후보들이 3번 연속 당선된 경우는 1988년 대선에서 레이건의 부통령이었던 조시 허버트 워커 부시(41대)가 당선된 경우 외에는 없다. 2차 세계대전 중 대통령에 네 번 당선된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었지만 그는 1인이었다. 아직 대통령 중임 제한이 없던 시절, 그리고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레이건에 이어 같은 공화당 출신인 부시가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많은 미국 시민들은 이를 레이건의 3번째 임기(Reagan’s Third Term) 라고 생각했다. 레이건처럼 인기가 충천했던 대통령을 그리는 미국 시민은 레이건의 분신인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오바마가 만약 레이건 만큼 인기 있는 대통령이라면 아마도 미국 국민들은 힐러리를 대통령으로 뽑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변이 터졌다. 도무지 정상적인 정치가처럼 보이지 않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출현, 공화당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정상적인 정치가가 하면 안 되는 말을 막 해대기 시작했다.
여성을 비하하기도 하고 멕시코 불법이민자들 중에는 강간 살인범도 있으니 이들을 다 추방해야 하며, 더 이상 불법이민이 미국으로 몰려오지 못하게 미국의 남부에 담을 쌓을 것이며 담 쌓는데 들어갈 비용은 멕시코 정부에게 청구하겠다며 윽박질렀다.
타 종교를 차별하는 일이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지도 못하게 된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 종교 차별적 언급을 막 해대는 트럼프는 그야말로 막말꾼, 또라이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은 종교차별 이슈 때문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러데이스” 라고 외쳐야 하는 기가 막힌 나라가 되었다.
놀라운 일이 나타났다. 트럼프는 정치판에서 퇴출되는 대신 인기가 수직 상승했다. 미국 국민들은 정치적으로 하면 안 될 소리를 마음대로 해대는 트럼프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사실 다 맞는 말 아닌가?
1년에 약 30만 명의 불법이민이 미국으로 들어온다는데 그중 약 1/5 정도가 멕시코에서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이라는 사실은 다 아는 비밀이다. 이들 중에는 살인범, 강간범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국민들은 크게 말은 할 수 없지만 멕시코인의 불법이민에 불만이 많다. 미국 국민들 중 70%가 국경에 담장을 쌓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우선 트럼프는 젭 부시를 집요하게 공격, 그를 2월에 낙마 시키는 데 성공했다. 가장 큰 말을 쓰러트린 트럼프를 당할 공화당 후보는 없었다. 공화당의 기성 권력은 트럼프를 차단하기 위해 별 꼼수를 다 써 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후보에 지명된다. 그리고 며칠 후 힐러리 클린턴은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다. 우리나라 주요 언론의 인터넷 판중에는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가 된 것을 ‘힐러리 대관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제목을 단 경우도 있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된 것은 정말로 이변이었다.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누구도 그가 공화당의 후보가 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문제 그대로 불가능의 게임을 벌인 것이다. 미국의 전문가들 중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본 사람이 예측한 숫자는 20%였다고 한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직을 거머쥔 뒤 그 사람은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고백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은 트럼프와 힐러리가 벌이는 본선 게임을 설명할 수 없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자격을 획득한 후에도 언론은 그를 또라이 라고 묘사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리버럴 주류 언론들은 이번 대선을 마치 미친 또라이 트럼프와 정상적인 인간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처럼 몰고 갔다. 이변을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게임의 룰이 바뀐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본선 대결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음은 오히려 당연하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당선 이후 처음으로 백악관을 찾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다. 트럼프 당선자는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 포즈를 다시 취해 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뿌리쳤다. |
이번 선거 무엇이 예외적인 일이었나?
트럼프는 오랫동안 미국 대통령을 꿈꿔왔던 인물이다. 이미 20년 전 대통령 출마를 계획했다가 관둔 적도 있었으며 그때 교훈을 얻었다. 즉 미국의 정치 상황에서 제3당의 후보가 되어서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을 두더라도 민주당 공화당 중 한 정당을 장악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경선 출마 공식 선언을 소개하던 미국 보수방송인 폭스뉴스는 배경화면에 트럼프가 진정한 후보인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줬다. 단 9%가 그를 심각한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폭스뉴스는 보수이지만 트럼프 편이 아니라 부시 편이었다. 웃기는 후보가 나와서 선거가 재미있게 되었다는 조롱조 였다. 어떤 언론은 다음부터는 트럼프 관련 기사를 앞으로는 정치면이 아니라 연예면에 싣겠다고 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자들의 오만이었다.
트럼프는 공화당을 착착 장악해 나갔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했을 때의 모습은 기성 공화당이 트럼프의 공화당에 의해 적대적으로 장악(hostile take over) 당한 꼴이었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외연을 확대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공화당에 들어갔고, 공화당의 기성 권력은 그들을 공화당의 일부로 취급하지 않으려 했다. 회사로 치면 적대적인 인수합병(M&A)을 당한 꼴이니 기존의 사장단은 물러나는 게 순리다.
41대 대통령 부시는 트럼프에게 점령당한 공화당에 있기가 민망해서 힐러리를 찍겠다고 선언했다. 선거 당일 그는 대선 후보 누구에게도 표를 던지지 않았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과 트럼프의 갈등을 적전 분열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공화당의 주도권이 기존 핵심층으로부터 트럼프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이라고 봐야 맞다.
대선이 끝난 이 마당에 트럼프는 공화당의 확실한 대주주가 되었고 트럼프가 이끄는 공화당은 과거의 공화당과는 성격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과거의 공화당이 워싱턴의 기득권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언론, 월스트리트 등과 상호 공생하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트럼프라는 외부인사(Outsider)에게 점령당한 공화당이 된 것이다.
민주당에서도 외부인사 격인 샌더스의 선전으로 힐러리가 고생한 일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힐러리는 샌더스를 누르고 민주당 후보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의 대선은 아웃사이더 트럼프 vs 울트라 인사이더 힐러리의 싸움이 되었다. 전통적인 민주당 대 공화당, 보수 대 진보의 시각으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지지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미국의 공업지대인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간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일자리가 다 외국으로 나갔다고 투덜거리는 노동자들이 사는 지역이다. 공장이 녹슬어서 허물어져 가는 흉물스런 꼴을 보고 이 동네를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지역에 산재한 녹슨 공장들의 모습은 미국의 쇄락을 상징하기도 한다. 공장 노동자들은 조합원이며 조합원은 민주당이라는 과거의 공식을 트럼프가 깨버리려고 나섰다.
그리고 성공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세계화의 조류에 밀려 별 재미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의 백인 노동자층이 대거 트럼프 지지자로 몰렸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역인 미시간 마저도 트럼프의 공화당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와 대통령 빼놓고는 다해 본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인 힐러리 클린턴의 싸움에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은 재벌 출신 후보 트럼프의 지지세력이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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