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신화(神話)의 비참한 최후
포퓰리즘 신화(神話)의 비참한 최후
  • 김충남 대통령학 전문가
  • 승인 2016.06.02 0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 뉴스] 브라질 좌파정권의 예견된 몰락

원자재 가격 폭락에도 불구하고 방만한 연금과 실업지원제도 운영으로 재정위기 직면. 엄청난 재정적자 국영은행 차입금으로 메우고도 정부회계에 기록하지 않아 

‘브라질의 대처’로 알려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5월 12일 탄핵 심판을 받고 직무가 정지되었다. 탄핵 심판 후 최종 결정권을 가진 브라질 상원은 탄핵 찬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의 탄핵 위기 탈출 가능성은 낮다. 

▲ 김충남 대통령학 전문가

지난해 말 정부회계 부정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호세프의 탄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룰라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층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된 초대형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정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이 와중에 세계경제 위기로 석유·철광석·구리 등 브라질의 주력 수출품목인 천연자원의 국제 가격이 급락하면서 지난 해 마이너스 3.8%라는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방만한 복지정책을 고수하는 등 정권의 난맥상과 무능이 드러나면서 호세프에 대한 지지도는 9%까지 추락했다. 

호세프가 탄핵 심판 대상이 된 결정적 이유는 정부회계 조작이다. 지난해 10월 브라질 연방법원은 정부가 재정적자를 흑자로 조작하는 등 정부회계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룰라 집권 이래 13년 간 노동자당(Worker’s Party) 정권이 무분별한 복지정책을 펴왔고, 최근 최악의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복지정책을 고수하면서 엄청난 재정적자가 발생하자 이를 국영은행 차입금으로 메우고도 정부회계에 기록하지 않았다. 

재정적자의 주원인은 연금과 실업자 보호제도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복지정책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가족에게 매달 4만 7000원의 현금을 주는 제도다. 룰라 정부는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5000만 명에 달하는 빈민층 가구에 매달 4만 7000원의 현금을 지급해왔고, 이밖에도 전 국민 무상의료와 대학등록금 면제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룰라는 노동자층에 의해 구세주처럼 떠받들어졌고, 한때 그의 지지도는 87%에 달했다. 퇴임 당시에도 룰라의 지지도는 80%를 상회했다. 

브라질의 연금제도는 인기영합정책의 결정판이다. 55세 정년퇴직 후 받는 연금이 일할 때 받던 봉급보다 훨씬 많다. 브라질 경제학자들은 브라질의 연금제도가 재정 파탄을 초래한 그리스 연금보다 더 방만하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40~50대에 직장을 그만두고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은 실정이다. 

2000년대에는 수출용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브라질 경제가 호황을 맞았기 때문에 그 같은 복지 지출이 지탱될 수 있었다. 당시 메릴린치는 브라질을 브릭스(BRICs) 국가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주목받는 나라였다. 그러나 룰라 정부는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인프라 구축 등 성장을 위한 투자를 외면했기 때문에 오늘의 파탄에 이른 것이다. 
 
‘깨끗한 정치’ 구호로 가려진 비리 복마전 

호세프는 2001년 노동자당에 입당한 지 2년만인 2003년에 출범한 룰라 정부에서 에너지부장관에 오르면서 그녀의 운명은 룰라의 부침과 함께 하게 되었다. 

룰라는 초등학교만 나온 가난한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노동자와 빈민층에 영웅적 존재였다. 노동자당은 야당 시절부터 부패 추방과 빈곤 추방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깨끗한 정치의 상징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런 이미지에 힘입어 집권했고, 집권 후에도 깨끗한 정치를 강조해왔다. 

때문에 2007년 멘살랑((Mensalao)으로 불리는 조직적인 야당 의원 입법매수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들은 배신감에 크게 분노했다. 이 사건은 여소야대(與小野大)에 처한 룰라 정권이 필요한 법안과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법안 찬성을 조건으로 야당 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해온 사건이다. 2012년 브라질 연방법원은 멘살랑 사건은 “노동자당의 계속 집권을 위한 정치공작”이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으로 룰라의 수석장관(비서실장 및 국무총리 역할), 집권당 대표 등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기소되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룰라는 참신한 인물로 알려진 호세프를 수석장관에 임명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룰라는 퇴임 후 자신의 보호막으로 삼기 위해 호세프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 결과 호세프는 2011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15년에 재선되었다.

▲ 브라질의 재정 위기와 정부의 회계 부정 사건은 룰라 대통령 같은 방만한 복지 포퓰리즘 정책의 실체와 도덕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룰라는 한 때 황무지를 일궈 미래로 가는 도로를 닦은 영웅으로 칭송되었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아서 진보적 지도자의 롤 모델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퇴임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비리 혐의로 조사 대상이 되었다. 수출용 원자재 가격의 일시적 상승에 따른 경기 호황의 거품이 꺼지면서 그의 재임 중 업적과 명성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결국 투옥되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권력형 비리사건의 회오리 속에 취임한 호세프는 ‘깨끗한 청소’를 표방하고 비리에 연루된 장관 6명을 해임하는 등 단호한 자세로 임했으나 추락된 노동자당 정권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초대형 권력형 비리사건인 페트로브라스(Petrobras) 사건이 터졌다. 

브라질 연방경찰은 2004~2012년 기간 중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에서 1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여 그 대부분이 집권층으로 흘러들어갔고, 2014년 대통령 선거에도 투입되었다고 밝혔다. 

한국, ‘제2의 브라질’이 될 가능성은? 

호세프는 2003~2010년 기간 중 에너지부 장관으로서 이 회사 이사회 의장을 겸했기 때문에 이 사건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 

이 회사는 룰라 정부로부터 석유의 채굴, 정제, 수출 독점권이라는 특혜를 부여받았으며, 국제 유가(油價)가 고공 행진했을 때는 연매출이 1000억 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룰라가 곤경에 처하자 호세프는 룰라를 보호하기 위해 수석장관에 임명하려다가 국민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브라질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다. 높은 원자재 수출가격에 따른 경제 호황이 일자 복지정책을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최근 원자재 가격의 폭락으로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시행한 복지혜택은 표심, 민심이 두려워 거둬들이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재정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은 투기 등급으로 전락했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좌파 정권이 이끌었던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브라질과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쳐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했거나 추락 중에 있다.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면 수출이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10년 간 급속하게 복지정책을 확대했다.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 이래 한국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지 지출의 축소는커녕 여야 간 포퓰리즘 경쟁으로 국가부채 증가속도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실정이다. 

한 경제학자는 “마약 갱단과 게릴라보다 더 무서운 것이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과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방만한 복지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파탄에 빠뜨리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한국은 결코 그 뒤를 쫓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