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의 시대는 갔는가?
홍위병의 시대는 갔는가?
  • 미래한국
  • 승인 2016.01.1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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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터뷰] 대한민국 대표 작가 이문열

우리에게는 이상한 균형 감각이 있다. 광풍(狂風)의 시대가 가고 

한국 사회는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복원되어 가는 중 

 

인터뷰 / 김범수 발행인, 김용삼 편집장 

정리 /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사진 / 이승재 기자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반대 진영으로부터 ‘문화권력’으로 지목(1997년 <인물과 사상(3)>, 강준만 著)돼 거의 20년 가까이 좌파들로부터 극렬한 공격을 받았던 작가 이문열. 

당시 그를 가리켜 ‘시대와의 간통을 저지른 문화권력’이라고 통렬하게 비난했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그의 1인 매체 격인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실었던 이문열 비평 글들만 모아 4권의 단행본(e-book)을 별도로 낼 정도로 반(反) 이문열 정서는 거셌다. 

이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이문열 공격에 가세했을 때 진 교수가 썼던 칼럼 제목은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2000년 중앙일보)였다. 2001년 일부 선동가들은 이문열 작가가 펴낸 소설들을 모아 파묻어 버리는 ‘책 장례식’이라는 초유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당시 대중들은 좌파적 사고가 횡행하는 시대적 분위기 탓인지 이런 행위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당시 좌파 진영의 ‘낙선 운동’ 같은 정치 선동 공세를 가리켜 작가 이문열이 과거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년~1977년) 시절 마오쩌둥(毛澤東)의 홍위병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던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그들은 이문열을 21세기판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희생자로 만든 것이다. 

▲ 좌파에게 문화권력으로 지목돼 거의 20년 동안 선동적 비난 공세에 시달려온 이문열 작가는 우리 국민이 균형감각을 회복하여 현재의 심각한 좌(左)편향 문화 헤게모니를 극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세한 낙관론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이문열 같은 당대의 지성(知性)들을 문화권력으로 매도해 축출한 문화계의 빈자리는 ‘경제 민주화’나 포퓰리즘 같은 반(反) 시장·반(反) 대한민국적 가치관들이 촘촘히 메워냈다. 이문열에 대한 ‘책 장례식’이 상징적으로 보여준, 바야흐로 좌파 문화 헤게모니 시대가 도래한 지 벌써 오래다.

그들이 문화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피해 당사자로서 생생하게 목격한 이문열 작가는 현재의 문화 현상에 대해 “대한민국의 문인은 열의 아홉, 아니면 열이면 열 명 모두가 좌파로 보면 된다”면서 “한국 문학에서 대한민국의 가치와 발전을 말하면 보수반동으로 찍히게 된 지 오래됐고, 빈부 격차를 강조하고 실업의 이유를 재벌 탓으로 돌려야 제법 의식 있는 작가로 보인다”고 일갈했다. 

이문열 작가는 헤게모니 탈환이든 진지전이든 문화계 자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현 상황의 해결에 대해서는 낙관론을 폈다. 그가 믿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균형 감각이었다. 이문열 작가는 “적절한 시기가 되면 우리 국민들이 문화의 균형감각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9년 등단해 <사람의 아들>(1979), <젊은날의 초상>(197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0), <시인>(1991), <변경>(1994), <호모 엑세쿠탄스>(2006) 등의 소설과 <삼국지> 같은 편역 작품으로 한국문학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총 2800만 부 출판계 추정) 작가인 이문열. 지난해 6월 신장암 수술을 하고 경기도 이촌 부악문원 자택에서 신작을 준비 중인 그를 만나 근황과 한국 사회 이념 갈등의 현주소 및 전망에 대해 들었다. 

- 최근 신장암 수술을 받으셨는데, 건강은 어떠신가요? 

좋습니다. 술 때문에 걱정이긴 해요. 수술 받기 전보다 주량이 엄청 세지고 훨씬 자주 먹고 싶어졌어요. 

-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사재를 털어 설립한 부악문원의 젊은 문인들과는 교류를 많이 하시죠? 

어제도 후배들 데리고 낮술을 좀 과하게 했어요. 부악문원은 제가 누구를 가르치는 공간은 아니고, 창작 레지던스라고 해서 젊은 작가들 8명이 머물며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곳입니다. 대부분 소설가인데 극작가도 있고 시인도 있어요. 

‘문화권력’ 

이문열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적(敵) 개념이 확실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시기는 그가 강준만 교수를 필두로 한 좌파 진영으로부터 ‘문화권력’으로 공격 받고, 이문열의 책을 파묻어 버리는 소위 ‘책 장례식’이라는 충격적 퍼포먼스가 자행됐던 무렵이다. 이 때를 전후해 이문열 작가도 보수 진영의 지성으로서 저술과 칼럼을 내며 본격적으로 정치적 색채를 드러냈다. 

이문열 작가는 문화권력을 장악해 나가는 좌파 진영의 선동을 과거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마오쩌둥의 홍위병들이 지식인들을 ‘반동학술권위’로 지목해 공격하는 양상에 비교하곤 했다. 

- 좌파 진영에선 왜 그토록 작가 이문열에 대해 집요하게 공격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번성한 시기(1980년대~1990년대)가 잘못됐던 것 같아요. 그들이 미워하던 시대였고, 게다가 너무 오랫동안 제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이런 말씀 편하게 하셔도 괜찮으세요?

이젠 하도 당해놔서 별로 겁도 안 나요. 그리고 지금은 내가 이런 소릴 해도 그들이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하하.

- 사실 작가 이문열에 대한 공격은 초기에는 운동권적 문학 평론의 측면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공개적으로 진행되더니, 2000년대에는 일반 국민들까지 이문열 선생을 ‘극우 인사’로 매도할 정도로 좌파 진영의 공격은 매우 거셌고 집요했습니다.

2012년 대선 전에 어느 방송에 나갔는데, 진행자가 나를 위해준다는 차원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선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이 진보적이거나, 아니면 약간은 삐딱한 게 정상인데, 왜 선생님은 엉뚱한 소리를 해서 욕을 듣냐”고요. 

그래서 제가 전제부터 확인하자고 했어요. “도대체 어느 나라가 모든 문인이나 예술가가 좌파 아니면 진보이냐”고 반문했어요. 소비에트 혁명 직후의 레닌 초기 러시아에도 사회적 리얼리즘 작가들이 70~80% 정도 됐어요.

진보적 이념 색채가 강하다는 프랑스도 우리처럼 좌파 일색이 아니고, 우리나라만 유독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문화계는 지금 무슨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아주 고약한 상태입니다. 결국 문화 헤게모니 전쟁에서 우파가 패배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니면 좌파의 진지전에서의 승리입니다. 

左右 10 대 0, ‘피해 의식’에 점령당한 문학계 

- 선생께서 몸담고 계신 문학계도 마찬가지입니까?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지난 30년간 선거에서 보여준 이념의 비율은 ‘45 대 55’ 안에 있습니다. 어느 쪽이 10% 정도 더 많은 것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결국은 이 안에 있었어요. 그런데 유독 문인들의 비율은 일반적인 시민과는 너무 다릅니다. 문인들도 연령상 대부분이 유권자인데, 진보 진영이 10 대 0, 아니면 9 대 1로 압도적으로 우세해요.

이 나라의 문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있을 수 있나요? 내 경험을 봐도 내 생각과 같은 경우가 드물다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나 혼자구나 라고 생각돼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복거일 선배 정도밖에 없어요. 

- 젊은 작가들은 어떻습니까? 좀 더 깨어 있지 않을까요. 

몇 해 전까지 작품 심사할 때 보면 젊은 작가들이 두 그룹 정도로 나눠집니다. 쉽게 말하면 이데올로기는 ‘창비’(창작과 비평), 문체 같은 문학 기술은 ‘문지’(문학과 지성)파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특정 그룹으로 분류하고 이름만 지우면 작품들이 구분이 안 돼요. 개성이 전혀 없는 거죠. 문화계에서 이런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희망 없습니다. 소설은 이대로 분해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소설이 과거보다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이런 문화계 헤게모니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 그렇게 해서 문학이라도 풍성해지면 좋을 텐데요. 특히 젊은 작가들이 발전하는 한국에서 주제를 찾을 수도 있는데, 골방에 틀어박혀서 벌써 시대적으로 소멸 시효가 만료된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만 그리고 있습니다. 

발전과 번영이라는 곳에서 주제를 찾아서 우리가 잘 사니 뭐니 하면 대번에 보수반동으로 몰립니다. 요즘에는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놨다고 써야 의식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나라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SF문학 같은 여러 장르물이 한 해 수천만 부 씩 팔려나가는데 우리는 그것도 없어요. 

- 정치 문제는 예컨대 국회의원이 문제라면 총선에서 사람을 바꾸면 되는데, 한번 뒤틀려진 문화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건가요. 

사실 문화계 사람들이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 헤게모니 문제는 자체에서 해결해야지, 정치나 사회 운동으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문학계에서 보수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게 원래 힘이 없는 목소리가 돼서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하지만 헤게모니 탈환이든 진지전이든 문화계 내부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 이문열 선생께선 지난 2013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파가 문화권력을 되찾는 데 15년 정도 걸리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예측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낙관했었죠.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15년까지 안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긍정적인 것은, 과거 좌파에서 문화권력 쟁취를 주도했던 사람들 중에는 그럴 만한 관록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 젊은 층은 그런 관록과 이력을 갖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약간 낙관하는 겁니다. 문학에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내 얘기 같은 공감이 가고 풋풋한 이야기가 왜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최근에 나타나고 있어요. 근간에 많이 팔린 책들을 보면 소위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가는 글들이 많아요. 이런 글들이 문학과 만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좌파에게 문화권력으로 지목돼 거의 20년 동안 선동적 비난 공세에 시달려온 이문열 작가는 우리 국민이 균형감각을 회복하여 현재의 심각한 좌(左)편향 문화 헤게모니를 극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데올로기 버리고 ‘공감’에 눈을 떠라 

- ‘공감’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좌도 편향돼 젊은이들의 피해의식을 선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인문학 얘기하면서 콘서트나 강좌를 많이 하는데, 어떤 것들은 왜곡된 문화권력의 구도를 개선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더 악화시킵니다. 며칠 전 한 저명한 경제학자의 현실 진단, 특히 청년층을 상대로 한 강연을 보고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지금 빈부격차가 심한 이유가 재벌이 돈을 기업에 쌓아놨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더군요. 이런 주장을 통해 만약 눈앞에 재벌이 있으면 해코지라도 하고 싶게 만들어요. 

단 1원이라도 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재벌이 왜 돈을 처박아 놓겠어요? 그 사람이 온당하게 청년을 위로하고 싶었다면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사정도 알렸어야죠. 기업들은 정규직 늘리는 게 무섭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같은 직종 안에서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게 생산직 노동 분야입니다. 이런 불균형을 없애려면 노동 개혁 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런 것들을 빼고 재벌만 욕하면 안 되죠. 요즘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내놓으라는 식입니다. 이런 인문학적 논리가 너무 많아요. 

- 그래도 이런 문화 현상의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막연한 낙관론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상한 균형 감각이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바뀔 겁니다. 예를 들어 좌파 진영이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믿었던 소위 ‘개발독재’ 세력을 근대화나 산업화 세력으로 이름을 바꿔서 받아들인 것도 하나의 균형 감각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근대화 세력이나 산업화 세력 같은 용어를 쓰는데, 사실 이런 말이 생긴 지가 얼마 안 됐어요. 1998~2007년까지 좌파 정부 10년 동안 이 말이 활성화 됐어요. 특히 근대화 뒤에 ‘세력’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준 것은 그들이 쫓겨 다니고 싸울 때는 모르다가 권력을 잡고 국가를 운영해보니 근대화나 산업화도 하나의 가치라는 사실을 안 겁니다. 

- 문화권력의 피해 당사자로서 시대의 변화를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변화를 느낍니다. 우호적이랄까. 드러나진 않지만 눈빛이나 말 한마디라도 예전처럼 “저 사람은 절대 안 돼”가 아니라 “당신도 뭐 할 말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 좌우의 문화 전쟁이 본격화 된 게 1980년대인 것 같습니다. 특히 1980년 광주 5·18 사건을 겪으면서 보수우파가 수세에 몰렸습니다. 그런데 민주화라는 옷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건전한 세력 외에 혁명 전위세력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에도 민주화 운동이 있었지만, 이것은 그 앞의 연결된 단계가 없이 나타난, 뭐랄까 난데없는 느낌이었는데, 여기에 실체를 준 것이 신군부의 광주사건이었습니다. 

왜 문학을 보고 역사를 배우느냐? 

- 1980년대 이문열 선생 외에 후반에는 소설가 조정래가 또 하나의 대표 작가로 등장합니다. 전 그가 소설 <태백산맥>으로 우리 현대사를 왜곡, 날조해 가치관을 전도시켰다고 봅니다. 본인이 ‘잃어버린 현대사의 복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런 왜곡 현상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해야 합니까? 

작가의 무지인지, 아니면 발 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쩌면 본인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을 수 있어요. 문제는 “왜 문학을 보고 역사를 배우냐” 하는 겁니다. 소설 <태백산맥>을 보고 역사를 새롭게 알았다는 사람들은 다 골 빈 사람들이고, 그렇게 유도하면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역사는 역사서를 가지고 공부해야죠. 

- 문제의 1980년대를 무대로 하는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번 되풀이 하다 보니 꼭 이행해야 할 약속처럼 돼 버렸습니다. 지금은 두 달째 어깨 힘을 빼느라 고생입니다. 사실 1980년대에 대한 해석을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고, 무언가 잘못됐다면 내가 바로잡을 수도 없는 일인데, 의욕이 앞서다보니 지금은 후회하고 있어요.

그래서 좀 편하게, 1980년대 이야기를 쓰되 내가 바라본 시각 안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어떤 것들은 지금 통용되고 있는 사회적·역사적 기억들과 일치하는 것도 있고, 어떤 사안에 대해선 사회적 기억이 틀렸고 내가 본 것은 이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해석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 1980년대는 산업화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의 에너지가 해외로 용솟음치던 시대였다는 평가와 함께, 한 쪽에서는 민주화를 마치 그 시대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우리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로 민주화만을 제창했던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라는 것이 오직 그 목소리 하나였는지는 의문입니다. 산업화라는 목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새 소설에선 시대정신이나 특징을 하나로 못 박고 시작하지 않으려고 해요. 사람들이 시대정신이라고 해서 주류 목소리 하나만을 상정해서 가는데, 사실 그런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여러 가락들이 공존합니다. 

이 대목에서 YS(김영삼 대통령)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피를 흘리고 시작했는데, YS가 나중에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가 공존하도록 무대를 만들어줬어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YS를 민주화의 목소리에 가두는 것도 반대합니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 다음에 그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입니다. YS를 다른 것은 다 빼고 민주화의 가치 위에만 올려놓는 것은 역사의 변조입니다. 

- 1980년대의 취재는 주로 어떻게 하시나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 진행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이 가장 중요합니다. 작년 한 해는 1만 매 정도 되는 재판 기록을 읽었어요. 재판 기록과 내 기억, 사회적 기록과 비교하면 재밌는 일들이 많습니다. 재판 기록을 보면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도 없고, 그 날짜 신문에도 없는 내용들이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너무 역사적 실체를 파헤치는 방향으로 치우치면 얘기도 시작하기 전에 몰매를 맞지나 않을까 경계하고 있습니다. 

- 재판기록에 새로운 것이 있었나요? 

5·18 관련 소문이 돌다가 소멸된 것들, 예컨대 광주에서 죽은 사람 190명 가운데 125명이 총상이었는데, 이 중 3분의 2가 M1이나 카빈으로 죽었고, 3분의 1이 우리 군이 사용하던 M16으로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물론 5·18에 대한 역사적 사실 자체는 손댈 생각이 전혀 없지만, 흥미로운 대목이 여러 군데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1980년대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시대입니다. 독자들은 이문열 선생님의 1980년대를 주제로 한 작품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내 나이 70세(현 68세)를 넘기기 전에는 다 써야 해요. 막상 써 나가면서 부딪치는 게 있어 걱정인데, 역사 해석이니 이런 건 다 털어버리고 개인의 수기나, 주관적인 내 기억의 수준으로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증명하고 하기는 힘듭니다. 감춰져 있는 특별한 해석을 찾아내려면 더 힘들고요. 요새 아마 그것 때문에 술 맛이 더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문열 작가는 세계화 시대의 민족문제를 거론하면서 ‘친일’에 대한 정의와 범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왼쪽부터 김범수 발행인, 김용삼 편집장, 정재욱 기자, 이문열 작가. 

성경은 문학적으로 굉장한 책 

- 초기 작품을 보면 인물들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독교와 나와의 관계는 이런 겁니다. 어느 시대나 적(敵) 개념이 강화되면 적의 적은 동지, 동지의 적은 나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내 어렸을 때 경험인데, 기독교는 적의 적으로서 우파들에게는 동질감과 유대감이 형성돼 있었어요. 내 어머니와 할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는데, 내 경우는 어려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주일학교 가서 교육을 받다가, 철이 들자 오히려 반감이 생겼어요.

지금은 믿음에 대한 친화가 생겼을 정도로 우호적인 편입니다. 젊은 날에는 그저 반대하지 않는 정도였죠. 나는 가끔씩 성경의 문학성을 생각하는데, 성경은 문학적으로 굉장한 책입니다. 신앙은 몰라도, 인상적인 비유나 말하는 방법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지금까지 쓴 작품 중에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변경>은 아마 따로 냈으면 괜찮은 책 5~6권이 나왔을 정도로 가장 많은 이야기와 노력이 들어갔다는 면에서 아무래도 애정이 갑니다. 또 공이 든 것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모양이 마음에 들거나, 많이 팔려서 좋은 것도 있고. 아니면 우리나라에선 안 팔렸는데 외국에서 히트를 친 작품도 있습니다.

해외에선 <시인>이라는 작품이 가장 많이 팔렸어요. 14개국에서 출판되어 그 중 절반이 재판에 들어갔어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좋아했던 작품으로는 <황제를 위하여>가 있어요. 이상하게 좌파에서도 이 작품 가지고는 욕을 안 하더군요. 봉건적, 고답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러다 보면 잘못 써서 언젠가는 고쳐 써야 한다고 생각되는 두세 작품 제외하고는 다 애정이 갑니다. 

- 2016년 새해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내부적 일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하지 않으면 큰일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북한이 문제가 아니라 남한에 살고 있는 사람끼리의 거리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단독 정부의 책임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돌릴 때 가장 답답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분단의 원인처럼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럼 그때 그 상태로 통일을 하자는 얘기냐”고 되묻고 싶어요. 이런 종류의 비판은 쉽게 말하면, “이승만이 없었으면 해방 직후 혼란기에 김일성 위주의 통일 됐을 텐데 이승만 때문에 실패했다”는 주장일 뿐입니다. 

북한은 항일 빼면 아무 것도 없다 

- 결국은 내부적 동질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모두들 이야기하는데, 그 방법이 뭐냐 이렇게 물으면 다들 곤혹스러워 합니다. 

문제가 간단치 않죠. 공통선(善)과 공동의 이익을 찾아내고 서로 공감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특히 SNS 상에서 치고받는 의견들을 보면, 우리끼리 통합하자는 의견보다는, “저 놈 죽여라” 하는 목소리가 훨씬 큽니다. 동지 아니면 적(敵)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넘쳐나는 겁니다.  사실 여기에는 SNS의 전파 방식, 설득 방식이 그런 선동에 유리하게 돼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SNS의 단문단답, 즉문즉답 형태가 무슨 요사를 부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민족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에선 친일파 척결 문제가 이성적 시비가 아니라 민족 문제와 결부돼 한 번 낙인찍히면 사형선고나 마찬 가지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세계화 개념과 민족 문제는 철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주의를 선점해서 생기는 문제가 있고, 친일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된 지 70년이 됐는데, 아직도 친일 문제가 살아 있는 규범으로서 우리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입니다.

내가 얼마 전 대구 강연에서 말했어요. 내가 우파고 보수라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달라고 전제를 하고, 내 개인적인 의심은, 그 가운데 하나의 원인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존재 자체는 항일(抗日)을 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주 드물게 무력 항쟁의 전통을 가진 권력 집단이라고,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나중에 그들에게 권력을 가져다 준 것도 항일 밖에 없습니다. 

일제시대의 친일, 부역 등도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친독(親獨) 행위자들에 대해 엄하게 처리했다고 하는데, 독일이 프랑스를 지배한 것은 4년 정도 됩니다.  프랑스 밖에서는 자유프랑스 정부가 군대를 갖고 싸우고 있었던 전시 점령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의 부역은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에게 36년 간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어떤 아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라와 조상에 등지고 부역을 했다고 비난을 받으면 억울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해방 전후 민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무정부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이상한 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친일이나 항일 문제에서 다시 한번 우리 경우의 특성을 봐야 합니다. 

실제로 외국의 식민 지배를 오래 받은 나라, 예컨대 영국 같은 나라의 지배를 받은 국가 중에 반영(反英) 운동한 것이 권리가 되어 정권을 잡은 경우는 없습니다. 이집트가 영국에 지배를 받은 기간과 방식이 우리와 비슷한데, 1954년부터 1970년 사망할 때까지 이집트를 통치하며 근대화를 이뤄낸 나세르는 영국이 키워낸 세력입니다. 인도에서도 아직까지 반영 투쟁을 이력으로 해서 정치에 성공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간디는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을 위해 나가 싸우라고까지 했는데, 이것 갖고 욕하는 사람도 없어요. 

-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열망도 커지고 있습니다. 

독일이 통일 된 후 독일에 가서 외무부 관리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통일은 언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을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자기들도 이것저것 다 따져봤지만 당시 어느 누구도 라이프치히의 저항 운동에 주목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통일을 생각한다면 북한에 그런 운동의 싹이 자라고 있는지 그런 것을 주시하라는 충고였어요. 

- 마지막으로 <미래한국> 독자들에 새해 덕담 부탁드립니다. 

새해는 이상한 악쓰기를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세월호 같은 불행한 사건이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 그런 사건에 의지해서 너무 악을 쓰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원래 갖고 있는 사건의 본질에 관계없이 정치적 성향 때문에 도매금으로 악쓰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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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자들아 2018-05-26 15:27:24
반역무죄 애국유죄 이게 이 나라의 현주소
이문열같은 대단한 작가도 ㄱ ㅐ ㅈ 되는 ㅁ ㅣ 친 나라
도대체 올바른 소리를 하면 매도되고 책이 불태워지는 나라가
이 세상 천지에 이 ㅁ ㅣ 친 나라 외에 또 있을까?
미개해 미개하기가 진짜 끝이 없어 아프리카의 미개한 나라보다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