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영농, 더 이상 미루면 농업 망한다
기업영농, 더 이상 미루면 농업 망한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12.0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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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성장동력으로서의 농업

농업은 단순한 1차산업이 아니라 2차·3차산업과 연계된 미래지향적 6차산업 

충남 예산에 사는 자영업자 A씨는 요즘 마음이 급하다. 주변에서 “빨리 농업법인을 만들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치킨집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가 마음이 급해진 것은 내년 1월 지자체와 농림축산부에 신청할 ‘농업6차산업 특별지원금’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고교 동창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사업을 접고 농업법인 만든다고 난리에요. 작년에는 30억 원 지원 받은 친구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A씨는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보거나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A씨가 농업법인에 참여하려는 것은 농지를 사기만 하면 농업인으로 등록이 가능하고 온갖 혜택과 융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 치킨집 해서 돈 못 법니다. 차라리 보증금 빼서 동료들이랑 밭뙈기 두어 평이라도 사서 농업인 등록하고 영농법인 사업하는 게 백번은 낫겠다 싶어요. 원료비 대주지, 시설비 대주지, 판매비까지 대준다는데.” 

A씨가 어떤 사업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6차산업에 관광이 들어간대요. 그래서 예당저수지 쪽에 연꽃 좀 심고….” 
말끝을 흐린 A씨는 머뭇거리더니 사실을 고백했다. 
“숙박시설을 짓는 거죠. 펜션.” 

A씨의 영농법인이 연꽃마을 사업을 하며 관광객을 위해 숙박시설을 짓는다는 것은 나름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펜션은 사실 모텔이었다. 말이 연꽃마을이지, A씨와 동료들은 근처에 다방과 주점을 차리고 겸업으로 모텔업을 하는데 영농법인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A씨는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요즘 농가들 가운데는 정부 지원으로 눈 먼 돈들이 넘쳐나서 탈선과 유흥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러브모텔과 같은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숙박시설을 지으려면 자부담으로도 꽤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한다. A씨가 치킨집 보증금을 빼서 하기에는 부담이 커 보였다. A씨는 은근히 참여를 권유하며 그런 의문에 비밀을 털어놨다. 

“건축업자가 영농법인 자부담 증명을 다 해줘요. 나중에 받아가는 거죠.” 

▲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업법인의 대형화가 시급하지만, 공정거래법이 법인의 출자를 방해함으로써 사유화되는 경향이 있다. 사진은 최근 국내 첨단농업기술박람회에서 출품된 다용도 로봇 트랙터가 물건을 옮기는 장면이다.

정부의 영농 보조금은 눈 먼 돈 

실제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최근 경남도경은 한 영농법인이 원예작물 사업을 한다면서 시설 자재비를 부풀려 10억 원의 자부담 증명원을 제출하고 정부 보조금 10억 원을 타낸 사업자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당시 투입된 실제 자재 및 건축비는 5억 원에 불과했지만, 업자가 영농법인 이름으로 자부담 한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사업자는 앉아서 정부 국고 보조금 5억 원을 가로챌 수 있었다. 이런 불법 행위에는 지자체 공무원들도 개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 10월, 제주검찰은 영농법인 B사에 대해 ‘제주마(馬) 육성사업’을 내걸고 거액의 국고지원을 횡령한 범죄에 대해 구속 수사를 하고 있다. 제주감사위는 2013년부터 2015년 4월까지 도내 241개 영농조합법인에 지급된 정부 보조금 집행 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여 77개 법인이 보조금 비리에 연관됐다고 판단해 검찰 수사를 의뢰해 놓은 상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6차산업 진흥’은 이렇듯 영농법인들의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규제와 감사가 강화되고, 정작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우수한 영농법인들은 정부지원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다. 

“진짜 기술 있는 농업인들은 정부의 규제나 감사기준, 이런 것들에 대해 문외한들이에요. 아는 거라고는 작물밭과 원예실에 틀어박혀 연구한 것이 전부인데, 정부지원 좀 받았다가 나중에 전과자 되기 십상이죠. 그래서 정부지원 같은 것은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대신 기업 투자를 열어 줘야죠.” 

남양주에서 발효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한 농업벤처 기업인의 말이다. 그는 농촌을 살리려면 정부의 눈먼 보조금이 아니라, 기업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와 농림축산부가 공동으로 출범시킨 ‘아그로 비즈(Agro Biz)발전포럼’이라는 신농업경제 민관(民官)협력기구에서도 강력하게 주장됐다.

CJ와 롯데 등 국내 20여 개 기업과 농촌경제연구원, 농림축산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사양 일로에 있는 국내 농업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내 농업의 기업 진출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가로막혀 헌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해외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기업의 농업 진출로 세계적인 식품기업들이 존재한다. 

영농법인을 대기업으로 키워야 하는 이유 

미국의 오렌지 농업기업 선키스트는 6000개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오렌지를 ‘선키스트’(Sun kissed)라는 브랜드로 통일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반면에 국내 쌀 브랜드는 1383개나 되지만, 일부 유명 브랜드 외에는 소비자 인지도가 크게 떨어져 ‘한국판 선키스트’가 나올 수 없다. 농업에 대규모 자본과 함께 기업투자가 이뤄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4년 기준, 국내 GDP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부가가치는 2.3%에 불과하다. 

농업에 대기업이 진출해야 하는 이유는 농업이 단순한 1차산업이 아니라 식품, 바이오, 에너지 등 2차산업과 함께 관광, 레저 서비스의 3차산업과 연관되어 시너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계는 농업을 6차산업(1차×2차×3차)으로 정의한다. 산업 간 부가가치의 사슬이 연계되면 그 생산성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세계 현황을 살펴보자. 

영국의 리서치&컨설팅 기관인 데이터 모니터 사(社)의 집계에 따르면 2014년 세계 식품산업 시장 규모는 5.3조 달러로 자동차(1.7조 달러), IT(2.9조 달러), 철강(1조 달러)시장 규모보다 각각 3.2배, 1.8배, 5.1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럽 등은 네슬레, 몬델레즈그룹, 다농 등 굴지의 식품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고, 국가별 글로벌 식품 기업 순위는 미국(15개), 유럽(7개), 중국(5개), 싱가포르(3개), 한국(1개 : CJ)에 이른다. 

규모로 보면 2014년 국내 상장 식품회사 총 매출액이 네슬레 한 기업 매출(108조 원)의 64% 수준이다. 네슬레 한 기업이 33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국내 상장 식품회사 전체 고용은 네슬레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국내 식품회사들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엔 그 규모가 턱없이 작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에서는 어떻게 글로벌 식품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미국은 대표적인 기업형 영농국가다. 매출순위 세계 1위 카길로 부터 10위 타이슨 푸드까지 전 세계 10대 글로벌 영농기업 가운데 상위 6개가 미국 기업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협동조합 형태를 띠고 있는 대표적 농업기업인 선키스트와 CHS는 우리나라 협동조합과는 달리 조합원의 생산량과 매출 규모에 따른 비례선거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즉 조합원 1인 1표제가 아니라, 출하량에 따른 차등의결권을 갖고 있다. 

동시에 전문 경영진 제도를 통해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외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경영인을 발탁한다. 즉 모양은 협동조합이지만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형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 국내 첨단농업기술박람회에서 전시된 식물 공장 베드 시스템. 일본, 북유럽 등의 농업 선진국은 기업 영농으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일본농업은 ‘작물공장’으로 전환

미국의 이런 제도는 우리 영농법인 제도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재 우리 영농조합법인(농업인 5인 이상 농업인 설립 가능) 등 농업법인들이 대형 농업법인으로 전환하면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다.

법인 출자가 늘어나면 공정거래법상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농조합법인은 규모가 커질 경우 사유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영농조합법인은 그 의미가 퇴색하기 마련이다. 아울러 미국처럼 출하량에 따른 비례투표제를 허용해서 조합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일본은 첨단 ICT기업들이 ‘작물공장’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작물공장이란 도시에 빌딩을 지어 실내에서 층별로 작물을 인공광과 수경으로 재배하는 기법이다.
작물공장 사업에는 소프트뱅크와 후지쓰 도시바 등 ICT 기업은 물론 도요타 등 자동차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비해 부유층을 대상으로 인터넷 판매까지 구상하고 있다. 스미토모는 쌀 생산·판매에 참여하고, 소니는 농업용 드론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다. 

일본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주는 것은 일식당(日食堂)의 수출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 소개돼 현재 유럽, 아시아, 북미 등지에 올 7월 기준, 약 8만 9000개의 일식당이 영업 중이고,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일식의 세계화를 통해 일본산 식재료, 음료, 식기 등이 패키지로 수출된다. 이 과정에서 고시히카리 쌀, 기꼬망 간장을 비롯하여 일본 술(사케), 녹차음료, 젓가락, 일본 된장과 고추냉이 등이 동반 수출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을 벤치마킹해서 2008년부터 한식 세계화를 추진했으나 현재 해외 한식당 수는 1만여 개로 일본의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기업적 영농의 사례로는 식품 클러스터로 2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덴마크·스웨덴 합작의 외레순(Oresund)을 꼽는다. 1980년대 후반 덴마크는 실업률이 16%까지 치솟는 등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같은 시기 스웨덴도 유럽연합(EU) 가입에 따른 시장개방으로 위기감이 확산됐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인구 과밀화, 물가 상승, 주택부족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반면, 농촌지역인 스웨덴 스케네 지역은 일자리가 없어 낙후성이 심화되어 갔다. 

이런 이유에서 두 나라 국경 외레순에 대교(大橋) 건설이 추진되었고 완공 후 두 지역 통합 경제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양 정부는 고품질 식품 수요가 증가하는 점에 착안해서 이 지역을 식품산업 클러스터로 개발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낙농업으로 유명한 외레순 지역에 기업, 대학, 농민과 함께 거대 식품클러스터가 조성됐다.

그 결과 25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자일리톨이 이곳 덴마크 기업 다니스코 사(社)에 의해 개발되어 2010년 2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외레순 룬트대 벤처기업 프로비 사는 1984년 유산균 과일 음료 ‘프로비바’를 내놓아 북유럽 기능성 음료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외레순 지역에는 코펜하겐 대학, 룬트대학 등 대학과 기능성식품센터, 유기농식품센터 등 연구기관, 유니레버, 칼스버그 등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400여 개의 식품 기업이 밀집해 있다. 이들은 한 곳에 모여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활발한 네트워킹을 이루고 있다. 

최근 전경련은 덴마크-스웨덴 합작 식품클러스터를 벤치마킹하여 아이디어를 내놨다. 전북의 식품클러스터를 중국 칭다오(靑島)와 연계해서 한중(韓中) 식품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국내에서는 전북 익산에 2012년부터 2020년까지 358만㎡의 산업단지에 총 사업비 5535억 원(국고 1358억 원, 지방비 608억 원, 민자 3569억 원)의 자금이 투자되어 국가식품 클러스터 구축작업이 시작됐다. 

참여기관으로는 농식품 연구기관(농촌진흥청, 한국식품연구원, 장류연구소 등), 식품기업(하림, 차오마마, 햄튼 그레인즈 등), 대학(전북대, 원광대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과 가공식품은 시장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중국 칭다오와 연계 합작하는 클러스터 모델이 제시된 것이다. 

이 아이디어의 배경에는 중국 식품시장이 약 1000조 원(세계 식품시장의 약 18%)에 달한다는 점, 연 평균 7.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 2018년경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식품 소비국이 될 예정이라는 점 등이 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호감을 갖는 식품 국가에 대한 설문 결과, 프랑스(1위), 한국(2위), 미국(3위), 일본(4위)라는 점도 전망을 밝게 한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식품수요에 대비한 국내 기업들의 진출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현재 한국 기업들이 가장 많이 투자하고 진출한 칭다오를 전북 식품클러스터와 연계하자는 아이디어다. 

우리도 농업 기적을 이루자 

전북 식품클러스터와 칭다오 시는 2011년부터 상호 교류를 시작했다. 전북은 칭다오에 식품물류기지 구축, 칭다오는 전북 식품클러스터를 주요 수출 거점으로 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2013년에는 중국의 선도 식품기업들과 국가 식품클러스터 입주 MOU가 체결되었는데 여기에는 칭다오 조리엔그룹, 칭화즈광 과학원, 디샤야오에 그룹, 칭다오 식품회사 등이 참여했다. 

전북 국가식품 클러스터와 중국 칭다오 물류기지를 포함하는 한중 식품클러스터가 구축되면 시너지가 막대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 구상에는 기업들이 식품개발과 제조 과정에서 안정적인 농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아 있다. 국내 영농조합법인들의 영세한 구조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기업농의 진출을 환영하는 것도 아니다. 

“이대로라면 중국과 FTA로 중국 농산물과 식품들이 한국에 대거 밀려오게 될 겁니다. 그러면 또 국내 농업은 죽는다고 아우성치면서 정부에게 보조금 타내려고 난리를 치겠죠.” 

익명을 요구한 전경련 관계자는 우리 농민들의 의식 전환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농자천하대본(農者天下大本)은 미래에도 진리일 수 있지만, ‘스마트한 농자’만이 그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는 우리 농업이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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