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버거씨병 치료제 ‘바스코스템’의 희귀의약품 지정 왜 가로막고 있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국내 바이오업체가 개발한 희귀질환 줄기세포 치료제의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오기업 알바이오가 지난 3월 식약처에 희귀난치질환 버거씨병의 치료제 ‘바스코스템’의 희귀의약품 지정 신청을 했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최종 결과 통보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알바이오는 식약처의 요청에 따라 지금까지 4차례 보완 자료를 제출했으나, 8월 27이었던 최종 결정 일정이 9월 14일로 또 다시 연기됐다.
▲ 국내 바이오업체의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장면. |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임상 2상을 마친 후 품목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임상 3상을 진행할 수 있다. 추후에 임상 3상의 결과를 보고해 최종 결정이 되는 조건부 승인 제도다.
이와 관련 의학계 전문가들은 업체가 제출한 임상 결과 자료를 식약처가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는 정부의 바이오산업 및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규제 완화 방침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식약처는 해당 치료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해당 업체에 대한 식약처의 길들이기 차원의 조치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버거씨병, ‘이미 적절한 치료제 있다’는 식약처
전문가 “현재 바스코스템 외에 버거씨병 치료제 없다”
식약처의 희귀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은 제2조에서 ⓵국내 환자 수 2만 명 이하인 질환에 사용되는 의약품으로서 ⓶적절한 치료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에 사용되거나, 기존 의약품보다 안전성 또는 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된 의약품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식약처가 처음 자료 보완을 요구한 부분은 버거씨 병이 기존에 적절한 치료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희귀 질환에 해당하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규정에 따른 지적일 수 있지만, 보건복지부에서 이미 희귀난치질환(상병코드 I73.1)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 질환에 대해 다른 정부 부처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보건복지부에서 희귀난치질환으로 지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이 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제가 없고, 환자들을 위한 신약 개발이 시급하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버거씨병이 난치성 질환이라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미국의 대표적 병원 메이오클리닉 등에서도 버거씨병은 현재 적절한 치료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이 버거씨병을 대상으로 하는 의약품들이 다수 나와 있기는 하지만, 통증 완화 효과를 갖는 대증요법제로서 허가를 받은 것이다. 유명철 경희대 석좌교수는 “현재까지 버거씨병을 치료해 보행 능력을 유지·개선하고 통증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의약품은 없다”며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바스코스템은 의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회의를 거쳐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서 희귀의약품 지정을 추천한 바 있다. 의학계에선 버거씨병이 특별한 치료제가 없는 희귀 난치병이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제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마당에 식약처에선 이미 적절한 치료제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다.
폐쇄성 혈전혈관염이라고도 하는 버거씨병은 혈관이 폐쇄돼 팔이나 다리 세포가 괴사하는 병으로, 심할 경우 사지 말단을 절단해야 하는 심각한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2012년 버거씨병 환자 수는 4,727명으로 식약처 규정 상 국내 환자 수 2만 명이 안 되는 희귀병에 해당한다.
‘실패한 임상 시험’ vs ‘통계 분석에 문제없다’
또 다른 쟁점은 바스코스템이 과연 기존 의약품보다 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됐느냐는 문제다. 이에 대해 알바이오는 임상시험 결과 바스코스템이 보행거리 개선 효과 48%, 통증완화 효과 40%를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임상 결과에 의하면 기존에 시판되고 있는 치료제를 투여했을 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바스코스템을 투여한 경우 환자들의 보행거리 개선과 통증 완화 효과가 컸다고 한다.
이 개발사가 제출한 임상 결과에 대한 본지의 질의에 식약처는 “진행 중인 민원이라 답변을 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개발사가 전한 바에 따르면 식약처의 입장은 ‘임상 시험의 통계 방법이 잘못되었으며, 통증 감소 수치가 작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상시험계획서의 통계 분석이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반박도 존재한다.
고려대 통계학과 이재원 교수는 “바스코스템의 임상 결과 자료를 분석해보면 환자들에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말이 맞다면 식약처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교수는 이런 견해를 식약처에 의견서로 제출한 바 있다.
안전성 확인된 치료제의 희귀의약품 지정은 유연할 필요
그런데 문제는 만약 안전성이 확인됐다면, 현재 적당한 치료방법이 없는 희귀난치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이런 엄격한 유효성 검증 절차가 과연 적절하냐는 것이다.
예컨대 식약처의 희귀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 제2조 ⓶항에서 ‘(희귀의약품은) 적절한 치료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에 사용되거나, 기존 의약품보다 안전성 또는 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된 의약품’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의 치료제라면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명철 석좌교수는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안전성이 인정되고 있다”며 “그렇다면 희귀난치질환 치료에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서 환자들의 치료 받을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성 대목에선 임상시험 과정에서 ‘이상약물 반응’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다. 알바이오의 이석주 개발팀장은 “식약처에서 의약품 자체에 대한 안전성보다 임상시험에서 실시한 전신마취에 대해 안전성을 우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임상시험의 편의성을 위해 실시했을 뿐 실제 치료에서는 전신마취가 필요 없다”고 밝혔다. 국내 대학 병원의 마취과 전문의는 “바스코스템과 같은 0.5ml의 주사제의 경우에는 전신마취가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점은 이처럼 행정부서의 늑장 행정으로 인해 국내 환자들의 선택의 폭만 좁아지고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바이오는 일본에서 버거씨병에 대한 재생의료 치료계획승인 신청을 완료한 상태다. 정작 국내에서는 희귀의약품 지정이 늦어지면서 상용화가 늦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선 이미 의약품 허가 없이 줄기세포 치료 가능
일본은 재생의료법과 약사법 개정을 통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선 개발 및 배양업체는 제조 허가를 받아 줄기세포 치료제를 만들 수 있고, 치료 자격 허가를 받은 의료기관은 의약품 허가를 받지 않아도 이런 줄기세포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줄기세포 치료를 위한 허가법은 오는 11월 25일 시행된다). 알바이오의 일본법인이 일본에서 줄기세포치료제 제조허가를 취득한 상태다.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과 치료에 대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현재 세계에서 시판 중인 줄기세포 치료제 5종 가운데 4종이 국내에서 개발된 것일 정도로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 개발 상황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이라는 우려가 바이오 산업계와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손가락 말단에 버거씨병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모습. |
상황이 이런 까닭에 정진엽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월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대혈이나 줄기세포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가 많다보니 발전에 제약이 있는 것 같다”며 “윤리적인 문제와 재생의학 발전 양쪽 모두 균형적인 발전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식약처도 ‘의약품 안정공급지원 특별법’을 통해 적절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질환에 사용하기 위한 의약품을 혁신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이들 의약품이 신속하게 개발될 수 있도록 기술·행정 지원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자가 줄기세포로 제조한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희귀의약품 지정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희귀난치병 환자를 위해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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