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들은 소위 혁신교육이라는 목표를 위해 ‘혁신학교’라는 정치적 상징을 내세우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편중 지원으로 인한 학생 간 역차별 문제를 초래하는, 위헌(違憲)소지가 있는 교육정책이다. 어찌 보면 진보 교육감들이 내세우는 보편적 무상급식의 이념에도 반하는 선별적 교육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곽노현 전(前) 서울시 교육감의 혁신학교는 조건만 보면 일견 그럴듯하다. 환경이 열악하고 교과과정 수행이 어려운 학교에 예산을 지원하여 학급 인원을 25명 이하로 만들고, 이런 좋은 여건 하에서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한다. 획일적인 교육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교육과정을 다양화·특성화하고 ‘질문이 있는 수업’을 만드는 것도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교실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교원 50% 이상, 학교 운영위원 50% 이상의 구성원이 동의할 경우 학교가 교육청에 신청하면 교육감이 혁신학교로 지정한다. 이렇게 보면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시행에는 수많은 문제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교육
예컨대 전교조 간부 출신인 평교사를 곧바로 교장으로 승진시킨 후 혁신학교를 맡김으로써 교내 위계질서를 파괴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자율적 학교 운영이라는 명목으로 교과과정 등 주요 의사결정을 특정 교사모임이 사실상 주도하면서 교장-교사-학생 간의 규범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학생과 선생님들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시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13년 서울시 교육청의 자료에 따르면 혁신학교의 전교조 교사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두 배 가량 높을 정도로 전교조 교사들이 혁신학교로 몰리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의 해방구?
실제로 혁신학교 중 전교조 교사 비율이 80%를 넘는 학교도 있었고, 서울의 S초등학교의 경우 교장과 양호 교사를 제외한 모든 교사들이 전교조 교사였다. 혁신학교를 전교조 교사들의 ‘해방구’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혁신학교로 지원·신청하는 학교가 적어 곽노현 전(前) 교육감 때는 신설 학교를 무리하게 지정해 해당 학교 학부모들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교육의 내용보다 예산 지원 때문에 혁신학교를 선호하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 혁신학교 주변 집값이 오른다는 등의 언론 플레이(‘매일경제신문’ 2012년 5월 18일자)가 대표적으로, 혁신학교가 진보 교육감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이용되는 대단히 비교육적인 현상이다.
예산 편중 지원도 문제가 많다.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 혁신학교 학생 수가 전체 초등학교의 29%, 중학교의 10%, 고등학교의 38%임에도 불구하고, 일반학교에 비해 혁신학교에 연간 1억4000만원이 추가로 지원된다.
이런 예산 편중 현상은 헌법에 보장된 균등한 교육을 보장 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예산 지원 내역을 들여다보면 각종 체험활동비, 간식, 예체능비 등이다. 혁신학교는 교육청 예산으로 집행하지만, 일반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으로 집행하기 때문에 불공평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5월 10일 예비혁신학교 22개를 새로 선정했다. 예비혁신학교란 혁신학교 전환을 위한 준비단계로, 혁신학교 프로그램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3월 혁신학교 신청을 할 수 있다.
▲ 교원의 동의율을 크게 낮추는(50%→30%) 식으로 선정 기준을 완화하면서 혁신학교를 신규 선정하고 있는 조희연 교육감. 혁신학교는 일부 학교에만 예산을 편중 지원(1억4000만원 추가)함으로써 非일반학교에 대한 상대적 차별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
혁신학교 확대는 조희연 교육감의 핵심 공약으로, 현재 88개교인 혁신학교를 올해 말까지 100개, 2018년까지 20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 교육청은 신청 기준을 크게 완화해서 혁신학교 확대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번 예비혁신학교 공모에서 교원과 학부모 대표들의 동의율을 50%에서 30%로 낮추는 등 신청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와 학생 지도 부담 때문에 학부모와 교사들이 반기지 않자 학교 수를 채우기 위해 기준을 낮춘 것이다.
모든 학교를 혁신하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제언을 하고자 한다. 조 교육감은 학교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현재 초등학생, 중학생, 특성화 고교생은 모두 무상교육을 받고 있다. 유독 일반고 학생들만 수업료를 내고 있는데, 이 수업료가 연간 1500억 원 미만이다.
그런데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예산이 5400억 원(서울시 교육청 50%+서울시 30%+25개 구청 20%)이다. 그러니 단순하게 계산해서 소득 하위 70%만 선별급식을 한다고 해도 5400억 원 가운데 1600여억 원을 절약해 일반고 학생들이 무상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수업료를 일반고의 3배 이내로 책정하되 교육과정 등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율 운용할 수 있는 자율형 사립고의 폐지 공약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하향 평준화 교육 정책일 뿐이다. 무엇보다 ‘서울시 교육청의 예산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대안 수립이 먼저다.
정말 혁신교육을 하고 싶으면 혁신학교가 아니라 정책으로 형평성 있게 모든 학교를 혁신하면 된다. 수요자 부담 원칙이 있는 특목고, 자사고를 늘리고, 무상급식을 선별적 급식으로 바꾸면 1조 원 이상의 교육 예산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예산으로 적체된 명예퇴직 선생님의 요구를 들어주고, 새내기 교사를 임용할 수 있다. 특히 안전 문제가 심각한 D등급 학교 건물에 대해 보수·방수·창호공사 등 환경개선 작업을 당장 시행할 수 있다.
또 학교 현장에서 시급한 MTS²(돈 교육:Money, 감사 교육:Thanks, 스마트 교육:Smart, 안전 교육:Safety) 인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교육의 균형을 이루는 세계 제일의 교육 현장이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혁신학교를 무리하게 밀어붙여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 아니라 급식은 보편적 급식으로, 교육은 혁신학교에만 편중 예산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조희연 교육감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잘하는 학생들은 더 잘하게 하고, 더딘 학생들은 더디더라도 관심을 가져 더 잘하게 하는 교육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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