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로서 저술가로서 원래 문용린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 선언
지난해 6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고승덕 후보와 치열하게 3파전을 치렀던 문용린 전(前)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지도 벌써 1년 가까이 지났다.
2012년 12월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재보선을 합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선거만 두 차례 치렀다. 이때 승리로 서울시 교육청의 수장(首長)이 됨으로써 진보 대 보수 간 이념 대결이 첨예한 교육 현장에서 1년 7개월을 보냈다. 이력만 보면 선출직에 익숙한 정치가형 학자로 오해할 만하다.
▲ 교육감 불출마 선언을 한 문용린 전 서울시 교육감. 그는 최근 판타지 소설을 집필하며 소설가로의 제 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로 지난 30년 동안 후학을 가르쳐온 그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만나 한시(漢詩)를 읊조리거나 시조창을 즐기는, 타고난 학자이자 선비다. 치열한 선출직 공무원의 현장에서 벗어나 다시 평범한 학자로 돌아온 문용린 교수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는 2002년 본지 창간 때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여 교육 관련 옥고(玉稿)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본지 지령 500호 기념 특집호에 게재할 기고문을 상의하기 위해 만난 문 교수는 뜻밖에도 “한국판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학자에서 선출직 교육행정가로의 진출에 이어 두 번째 변신. 이번에는 소설가로의 도전이었다.
판타지 소설에 도전, 한국판 ‘해리포터’ 집필 中
“그 전부터 논픽션 판타지 소설을 기획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해리포터 같은 이야기죠. 해리포터가 런던의 한 기차역 플랫폼에서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듯이, 우리나라도 성황당이나 장승이 있는 곳에서 마법의 세계로 가는 거예요. 우리도 예전부터 마술, 술법이라고 해서 샤먼의 영역이 강했잖아요. 무속인들은 아직도 최영 장군이나 연개소문 장군을 신(神)으로 모시고 있기도 하고요. 대학 교수 때부터 기획하고 초반부를 써오다가 교육감을 하느라고 중단했었는데, 다시 작업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저술하는 판타지 소설에 대해 말을 꺼내는 문용린 교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평소에 탐정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스토리를 가미해도 좋을 것 같다”면서 “비록 교육감 선거에 떨어졌지만 숙제처럼 남아 있던 소설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현재 3분의 1 정도 집필을 마쳤다고 한다.
아직도 일반인에겐 서울시 교육감 이미지가 강하지만, 문 교수는 원래 학계에서 인정받는 교육학자였다.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 교육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람은 다양한 지능을 타고나기 때문에 각자의 지능을 잘 발달시켜 나가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행복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여기에는 인성(人性) 교육도 포함된다. 이를 교육학에선 ‘다중지능이론’이라 하는데, 문 교수가 국내에 처음 소개해 화제가 됐다.
서울시 교육감 시절 학생들의 꿈과 끼를 강조했던 ‘행복교육론’도 학자로서의 교육적 신념의 연장이었던 셈이다. ‘행복한 성장의 조건’(2011) ‘행복한 도덕학교’(2010) ‘지력(知力) 혁명’(2009) 등 교육 관련 저서만 20여 권일 정도로 학자로서의 열정이 깊었다.
본인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지만, 최근 끝난 1심 재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 30일 문 교수에 대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단일후보’라는 명칭을 사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였다.
같은 보수 후보로서 경쟁을 벌였던 고승덕 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이를 고발했다. 검찰이 구형한 100만 원보다 형이 높아진 의외의 판결이다. 이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정부로부터 보전 받은 선거비 32억 원을 반납해야 한다.
문 교수는 조만간 항소할 예정이다. 문 교수는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없느냐는 질문에 “법원 판단이기 때문에 이래라저래라 말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두 번 다시는 출마 안 한다”
“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어요. 평생 모은 재산으로 집 한 채가 전부인데, 이대로라면 집을 매각한다고 해도 10여억 원을 더 내야 해요. 평생 빚쟁이로 살아가야 할 형편이죠.”
문용린 교수에겐 다소 부담되는 질문이지만,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대한 재도전 의사를 물었다. 그는 “이번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앞으로 교육감 선거에 다시는 나갈 의향이 없다”면서 “학자로서 저술가로서의 원래 문용린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 더 이상의 외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용린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감에 재도전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 교수는 “선거에서 떨어지자마자 두 번 다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밝혔다”면서 “보수 진영에서도 내 뜻을 분명히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2년 서울시 교육감 재보선에 출마한 것도 본인의 자발적 의사라기보다는 보수 진영 인사들이 워낙 강력하게 추천했던 게 큰 이유였다. 당시는 곽노현 전(前) 교육감이 2011년 교육감 선거에서 경쟁 후보에게 2억 원의 금품을 지급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음으로써 교육감 직을 상실했던 때였다.
거물급 후보를 물색하던 보수 진영 시민단체들이 보수 교육감을 만들기 위해 문용린 교수에게 출마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문 교수는 서울시 교육감 재선에 도전한 것도 “혁신학교나 학교 예산 문제를 한창 바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선거에 재도전하기에는 건강도 허락지 않는 눈치였다. 문용린 교수는 2010년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어 과로를 피하고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두 차례 치른 선거로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고 한다. 올 초에는 얼굴에 난 혹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처음 교육감 출마를 고사했던 이유도 건강 문제가 컸다”며 “담당 의사가 과도한 스트레스는 절대적으로 피하라고 했으니, 이제 내가 출마하겠다고 해도 가족들이 만류하는 형편”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엔 아침저녁으로 한강 고수부지를 걸으면서 운동을 해요. 국악을 원래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새롭게 시조창을 배우고 있어요. 예전에 가르쳤던 대학원생들 많이 만나면서 위로도 받고 있고요. 참 먼 길을 돌아서 다시 책상 앞에, 제자리에 온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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