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들의 종교를 말할 때는 이슬람으로 부르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말할 때는 무슬림이라 부른다.
21세기 초반을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터번을 두르거나 차도르를 착용한 무슬림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을 실감하게 된다.
한편으로 국제화 된 우리 사회를 볼 수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 겪고 있는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게 된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 체류하는 해외 이주 무슬림은 14만3500여 명으로, 전체 외국인(175만6000명) 대비 10명 중 1명꼴이다.
불법체류 무슬림(약 2만1000여 명)과 한국인 무슬림 약 3만5000명을 포함하면 국내 무슬림은 대략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직은 문화부가 이슬람교를 ‘기타 종교’로 분류할 만큼 타종교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다. 하지만 이런 숫자는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가 조직된 1965년 당시 3700명에 비하면 50년 만에 무려 5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슬람의 기원은 서기 610년 예언자 무함마드가 40세 때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근교의 히라 동굴에서 참선을 하던 중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나님(아랍어로 ‘알라’)의 계시를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후 수차례에 걸친 계시는 모두 114장에 이르는 꾸란으로 완성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천지창조와 인간의 창조, 이후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에 대한 내용과 인간 생활 전반에 걸친 가르침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가 구약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들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엮어낸 것을 마치 흉내라도 내듯이 꾸란은 구약 성경을 바탕으로 하되 그들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엮어냈다.
꾸란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구약 종교의 아랍식 변형이라고 말할 정도의 내용이다.
종교개혁 당시 무력으로 유럽을 침공했던 이슬람은 오늘날 오일 머니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정부 주도하에 전북 익산에 대규모의 이슬람 식품인 할랄 전용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이슬람에 접근하는 것은 적지 않은 위험 부담을 스스로 떠안는 것이 될 것이다.
최근에 파이살 전(前) 사우디 국가정보원장이 “테러 청정지역이라는 한국도 IS(이슬람 국가)같은 단체의 활동에 늘 주의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IS를 ‘파헤시(외설)’라고 부르도록 요청했는데, 그들은 “이슬람 가치를 악용하고 도용해서 영향력을 넓히고, 난잡하고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단체”라고 하면서 이들이 생겨난 이유는 “반(反)정부 세력을 양산한 시리아나 이라크 정부의 잘못된 국정운영 때문”이라고 했다.
기독교적 인본주의를 표방하면서 무슬림들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 왔던 서구 기독교 국가들에서 보게 되는 어려움들이 우리나라에서 재현될 가능성에 대해 우리 모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세계 인류 속의 한 구성원으로 서로 이해하고 돕고 살아야 할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이미 우리의 가까운 이웃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하여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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