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판 성경에는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는 꽃이 등장한다.
구약성경 아가서에는 “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라는 구절이 그것인데, 샤론은 평화를 의미하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들판이다.
그래서 이 샤론의 장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문제는 이 ‘샤론의 장미’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뜨거운 논쟁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를 노란색의 크로커스나 새프론일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샤론의 장미’로 부르는 무궁화
하지만 이 샤론의 장미가 다름 아닌 ‘히비스쿠스 시리야쿠스’라는 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바로 우리의 무궁화다. 물론 그러한 주장을 우리나라 학자들이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무궁화의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라는 학명은 18세기 식물학자 린네가 붙였다. 흔히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신 히비스와 닮았다고 해서 히비스쿠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히비스쿠스(hibiscus)라는 이름은 1세기경 그리스의 식물학자이자 약학자였던 베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Pedanius Dioscorides)가 오늘날 마시맬로우라고 불리는 서양아욱에 붙인 이름이었다. 고대 그리스어 히비스코스의 어원은 현재까지 밝혀져 있지 않다.
린네는 이 서양아욱에 붙은 히비스쿠스라는 이름을 자신이 시리아에서 발견한 무궁화에 붙였다. 서양아욱 마시맬로우는 그리스어로 ‘알데아 로사’라고도 하는데 이는 ‘치유력 있는 장미’라는 뜻이다.
시리아가 무궁화의 원산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국의 농무부가 발간하는 <식물연감>에는 히비스쿠스 시리야쿠스, 즉 무궁화의 원산지를 인도와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로 기명하고 있다. 우리 무궁화는 이 가운데 동아시아종이다.
그런 무궁화는 15세기 유럽과 미국에 전파됐다. 그로부터 우리의 무궁화에는 영어권에서 ‘샤론의 장미’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물론 그들이 팔레스타인의 샤론 들판에 핀 이 무궁화를 확인했기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무궁화가 이들에게 ‘샤론의 장미’가 된 것일까.
린네가 시리아에서 무궁화를 발견하고 ‘히비스쿠스 시리야쿠스’라는 학명을 붙이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에서는 우리의 무궁화와 아주 유사한 종을 ‘알데인’(Althein)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알데인’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치유하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아욱과인 무궁화는 약효가 있는 식물이다. 꽃과 잎, 뿌리 등에는 진정 효과가 있다. 특히 무궁화 씨를 다량 섭취하게 되면 백일몽과 같은 환각증세가 발생한다.
무궁화가 언제부터 중동지역에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우리의 무궁화와 사촌지간인 ‘알데인’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약용으로 사용됐다. 그런 무궁화는 ‘알데아 로자’(장미 아욱)이라는 이름으로 무궁화와 비슷한 시기인 15세기 영국에 전해졌다.
전래지는 중국 남부로 알려진다. 당시 영국에서는 이 무궁화종을 ‘홀리혹’(hollyhock)이라 불렀는데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접시꽃’이다. 실제로 접시꽃의 어떤 종들은 무궁화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무궁화는 일화(日花), 접시꽃은 일일화(一日花)
<동의보감>에 접시꽃은 일일화(一日花)라고 기록돼 있다. 옛 문헌에 무궁화를 알화(日花), 일급(日及)이라고 칭했던 것을 보면 고대의 무궁화는 오늘 우리의 무궁화가 아니라 어쩌면 같은 아욱과 꽃인 접시꽃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현재의 무궁화는 국내에 자생지가 없지만 접시꽃은 이 땅에서 그 역사가 깊으며 길가와 같은 야생에서도 자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조선시대에 과거 급제자에게 임금이 하사한 꽃이 있었으니 바로 종이로 만든 접시꽃이었다. 그것을 어사화(御史花)라고 불렀다.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다시 샤론의 장미로 돌아가 보자. 성경에 등장하는 ‘샤론의 장미’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바셀렛’(habasselet)이라는 꽃을 말한다. 이 단어가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치유의 꽃’을 뜻하는 알데아(Althaea)로 번역됐다.
그리고 ‘알데아 로자’라는 무궁화종이 영국에 전해져 15세기경 홀리혹(hollyhock), 즉 유럽의 십자군이 시리아에서 가져온 ‘성지의 꽃’이라 불리면서 킹제임스 버전의 영어성경은 히브리인들의 하바셀렛을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로 인식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알데아 로자’라는 무궁화와 아주 유사한 한 종의 접시꽃이 우리의 무궁화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와 혼동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인들과 이집트인들이 알고 있던 ‘알데아 로자’는 팔레스타인 히브리인들에게도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이 꽃은 아주 오래 전 이라크에서 재배해 왔으며 현재도 재배되고 있다. 문제는 알데아 로자의 원산지가 중동이 아니라 중국에서 전래됐다는 점인데, 그 시기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무궁화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무궁화는 순수 자생종이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라는 지금의 무궁화 자생군락이 없다. 그렇다면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애호했던 무궁화는 지금의 무궁화가 아니란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무궁화는 온대와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개량으로 내한성이 생겼지만 무궁화는 추운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런 무궁화가 고대 한반도 북쪽인 고조선 지역에서도 피어났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무궁화가 한반도 남부에서만 집중적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무궁화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군자의 나라, 근역(槿域)의 무궁화는 과연 한국에서 자생하지 않는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인가? 아니면 한반도 곳곳에서 터를 잡고 자생하며 부단히도 피고 졌던 접시꽃, ‘알데아 로자’인가.
‘나라 사랑’의 상징이 된 ‘무궁화’
무궁화는 한국인의 마음 속에 피어 있는 ‘민족의 꽃’이다. 꽃 이름처럼 무궁화는 한국인이 가진 불굴의 민족혼을 상징해 왔다. 통일신라시대의 문장가 최치원은 당에 보낸 국서에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일컬음)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화살을 만드는 나라, 발해를 일컬음)은 강폭함이 날로 더해간다.’고 썼다. 신라가 무궁화를 나라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려는 무궁화에 열광적이었다. 몽골의 침입 하에 민족적 각성이 이 무궁화에 투영됐던 이유였을 터인데,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당대 최고의 원예지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우리나라에는 단군(檀君)이 개국할 때 무궁화(木槿花)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무궁화의 나라(槿域)’라 말했으니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봄을 장식했음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무궁화에는 많은 다른 이름들이 있다. 무궁화(無窮花, 無宮花)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고려 때로 목근(木槿, 木菫)이라는 한자어의 음가를 차자한 흔적이 역력하다.
목근(木槿)은 오늘날 중국어로 ‘무진’이지만 남송과 같은 광둥어에서는 ‘무껭’과 같이 발음된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이 가꿨던 무궁화의 본 말은 무엇이었을까.
무궁화에는 일화(日花)라는 이름이 있다. 이 무궁화와 사촌인 어사화(御史花), 접시꽃은 일일화(一日花)였다. 그런데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접시꽃에는 ‘해바리’라는 이름도 있었다.
‘바리’라는 어휘가 그릇을 의미하는 고유어라는 점에서 접시꽃 해바리는 ‘해를 품은 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우리 고대의 무궁화 이름도 그러했을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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