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는 미래의 주력으로 수소연료전지차(FCEV)를 개발 중이다. 기아차의 중대형 SUV 모하비를 베이스로 한 수소연료전지차는 2008년 11월 LA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모하비 FCEV’는 2008년 12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633km를 1회의 수소 충전만으로 주행한 바 있다. 당시 기아차 관계자는 주행 테스트에서 처음 충전한 수소 연료의 84%만 사용했다며 “모하비 FCEV의 완주 거리는 서울과 대구를 왕복할 수 있는 거리로 모하비 수소연료전지차가 양산차 수준의 주행거리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2004년 9월 美에너지부(DOE)가 주관하는 FCEV 시범 사업자로 선정된 현대기아차는 국내에서도 2006년 8월 당시 지식경제부가 주관하는 FCEV 모니터링 사업에 참여했었다.
현대기아차 측은 2008년과 2009년 당시 “FCEV의 시험 성과가 좋으면 2010년 50대를 만들고, 2012년부터는 양산 판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2014년이 다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FCEV를 양산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독일 업체들은 고효율 디젤 엔진, 신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일본과 미국 업체들은 고효율 하이브리드 차량을 양산 판매하며 시장을 늘려나가자 현대기아차 측도 조바심이 난 모양이다.
현대기아차, 수소연료전지차로 승부
지난 5월, 국내 경제 매체들에는 “일본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포기하고 FCEV를 개발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일제히 나왔다.
당시 기사를 보면 “도요타가 2014년 5월 12일 美전기차 업체 테슬라 모터스에게 공급받던 전기차 파워트레인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고, 전기차보다 주행거리가 긴 FCEV를 진정한 미래의 그린카로 보고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고 되어 있다.
도요타는 “FCEV는 향후의 차량으로 개발을 계속하고, 도요타가 장점을 가진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에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 시장조사업체의 말을 빌려 “FCEV는 2015년 5만7000대 판매될 것으로 보이고 2020년에는 판매량이 39만 대로 증가할 것이며, 세계적으로 설치된 200개의 충전소는 2020년 39만 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인용, “세계 FCECV 시장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 2050년까지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했다”는 주장도 더했다. 이 말대로라면 현대기아차가 미래발전전략을 제대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현대기아차의 FCEV 개발은 사실 ‘무리수’에 가깝다. IEA나 세계 자동차 시장조사 업체들이 손꼽는 미래의 주력 차량은 FCEV가 아니라 ‘FCEV’를 포함한 ‘연료전지’ 차량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연료전지 효율이나 안전성, 연료 충전설비 문제 때문에 최소한 15년 뒤부터 대중들 사이에서 많이 이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나 자동차 연구자들은 2015년부터 2030년 사이 보다 현실적인 미래의 차량으로 다양한 연료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꼽는다.
독일의 포르쉐, BMW, 아우디, 벤츠 등은 초고효율 디젤 엔진 또는 가솔린 엔진에다 슈퍼차저나 터보차저와 같은 과급기 장착을 통해 힘과 효율(연비)을 월등한 수준으로 높인 차량들을 내놓고 있다.
독일 차량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엔진 효율을 높인 차량과 ‘울트라 캐피시터(극대용량의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덴서)’와 고효율 전기모터를 활용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주력 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순수 전기차(ZEV)는 주로 도심용으로 활용하도록 권장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 차량이 여러 대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당연한 전략’이다. 즉 닛산이 내놓은 2만 달러대 전기차 ‘리프’ 등은 주로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심형 이동수단’ 성격으로 활용하고, 300km 이상을 주행할 일이 있으면 고성능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초고효율 엔진 차량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차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FCEV가 최고라고 주장한다. 물론 현대기아차도 하이브리드를 내놓고는 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한숨만 나온다.
현기차의 ‘그린카’ 정책, 무엇이 다른가
현대기아차는 2005년부터 청와대, 서울시, 주요 부처와 광역지자체에 ‘베르나’ 하이브리드를 납품했다. 당시 납품가는 약 3600만 원.
정부의 각종 지원금이 2000만 원을 넘었다. 그럼에도 현대기아차는 “납품가가 원가에 비해 무척 낮은 편”이라고 불평해댔다.
이후 현대기아차가 내놓은 하이브리드 차량은 가격이 2400만 원까지 낮아졌다. 환경부 등의 지원금이 대당 1000만 원을 넘어 실제 납품가는 1000만 원 대로 낮아졌다. 하지만 ‘베르나’ 하이브리드는 인기가 없어 소비자들에게는 관심은 끌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왜 현대기아차는 LPG 엔진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차량부터 만든 걸까. 이는 자신들에게 핵심원천기술이 ‘없다’는 점을 한국 소비자에게 알리기 싫어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LPG 하이브리드가 ‘수출용’이 아니라 철저히 ‘내수용’이라는 점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가솔린 주유소가, EU는 디젤 주유소가 많다. LPG의 경우에는 차량 연료로 사용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미국 프로판교육연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말 미국 전역의 LPG 충전소 숫자는 2660개, LPG 자동차 대수는 20만 8000대 가량이다.
이 통계가 나온 2008년 당시 미국의 차량 보유대수가 1억3500만 대, 연간 자동차 판매량이 1600만 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EU 국가들에서는 더 LPG 충전소가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현대기아차가 만든 LPG 하이브리드가 ‘해외수출용’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보다 더 좋은 미래형 그린카”라며 “2015년부터 시장이 폭발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FCEV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2008년 말 기준으로 FCEV용 수소 충전소는 전 세계에 181개가 있다.
이후 5년 동안 20여 개 가량이 더 늘었다. 이조차도 대부분 연구용이다. 아시아에서 수소 충전소가 가장 많다는 일본에 24개가 있다. 이래도 “2015년부터 FCEV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현대기아차의 주장을 믿을 수 있을까.
세계 자동차 시장은 현대기아차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가운데 전기차 선도업체인 테슬라 모터스와 인도 타타 자동차 산하 브랜드인 재규어-랜드로버, 그리고 ‘외계인 차량업체’라는 별명을 가진 포르쉐를 보면 대략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악재 때문에 주춤거리고 있는 테슬라 모터스는 S모델을 출시한 뒤로는 나쁘지 않은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테슬라 모터스가 2013년 6월 22일, 고객에게 처음 차량을 인도한 S 모델은 전기차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가 원하는 ‘미래 그린카’
차체 안전성도 우수하다. 에어백은 무릎보호용을 포함, 8개나 달려 있으며 차량 전복감지 센서, 어린이들이 차문을 여닫을 때를 감지해 보호하는 센서를 장착했다. 사고 시에는 전지와 모터가 자동으로 분리되도록 해 폭발 위험성을 줄였다.
가격 또한 터무니없는 국산 전기차와는 다르다. 고급형인 ‘시그니처’ 트림의 소비자 권장 가격은 8만7900달러다. 하지만 ‘S-모델’ 기본형은 4만9900달러부터 6만9900달러로 BMW나 벤츠, 아우디의 중형차 모델과 경쟁할 수 있다. 테슬라 모터스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여기다 美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 州정부는 전기차를 구매할 때 몇 천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세금, 보험료도 낮춰준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레리 페이지가 대주주이고, 테슬라 모터스 설립자 앨런 머스크가 ‘페이팔’의 설립자이며, 영화 ‘아이언 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와 비슷하다는 점도 테슬라 모터스의 인기를 높이는 데 한 몫을 더한다.
유럽으로 가면 또 다른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인도 타타 자동차가 인수했지만 여전히 영국적인 색채를 유지하는 재규어-랜드로버는 2011년부터 차세대 하이브리드를 개발하고 있다. 일단 컨셉카로 선을 보인 것은 ‘C-X75’라는 슈퍼카다.
정지상태에서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 미만이며 최고 속도는 330km/h 이상이다. 그런데 연료를 한 번 넣으면 최대 900km를 주행한다. 비결은 ‘마이크로 터빈’에 있다. 성인 팔뚝 크기만 한 소형 마이크로 터빈 엔진 2개를 장착, 연료를 연소하면 이 터빈의 회전력으로 전기를 생산해 모터를 돌린다.
그 결과 엄청난 성능과 놀라운 연비를 실현했다고 한다. ‘C-X75’는 슈퍼카인 탓에 주문 생산되며 가격도 15억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차의 마이크로 터빈 하이브리드 기술의 안정성이 검증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재규어-랜드로버와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발전 전략을 보여주는 곳이 포르쉐다. 포르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초고효율 가솔린 하이브리드 엔진과 고출력 모터를 장착한 ‘포르쉐 918 스파이더’를 이미 판매하고 있다. ‘포르쉐 918 스파이더’도 전 세계 918대만 한정생산 판매하는 슈퍼카다. 가격 또한 14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모든 차량이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버리고 ‘미래’ 망칠 셈인가
앞서 설명한 대로 한국의 ‘미래 자동차 개발전략’은 현대기아차가 주도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 언론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현대기아차의 ‘미래 자동차 개발전략’은 2030년 이후에나 시장이 생기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에 대해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미래 자동차 개발전략’은 ‘최초’ ‘최고’ ‘국산화’를 모토로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불거진 ‘불량 무기’ 문제들과도 궤를 같이 한다. ‘불량 무기’ 또한 ‘국산화’와 ‘최초’ ‘최고’에 목숨을 건 국방과학연구소와 정치권의 잘못된 의사 결정이 낳은 결과다.
자동차는 단순한 ‘탈 것’이 아니라 ‘문화’이자 ‘생활’이다. 또한 자동차 시장은 생활문화의 영향을 받아 계속 변한다. 이런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있어 ‘기술 자랑’에만 급급해 ‘가까운 미래’를 도외시한다면,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던 자동차 산업 동력 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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