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필요악’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악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좋지 않은 사건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논한다는 것이 일면 옳은 일인지 자괴감이 없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나쁜 것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있느니 그것은 나쁜 일로부터 교훈을 얻고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편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인간 역사상 가장 잔악한 전쟁의 하나인 1차 세계대전의 원인, 경과, 결과를 살펴보는 일 역시 그런 처참한 전쟁이 다시 발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 무수히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아니 인간들은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인 선사시대부터 전쟁을 벌여 왔고 어떤 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총 1만4500회의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에서 오늘날 지구 총인구 숫자와 거의 같은 70억명이 전쟁 때문에 죽어갔다지만, 수많은 전쟁 중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쟁은 단 2개뿐이다.
1914부터 1918년까지 지속된 1차 세계대전과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벌어졌던 2차 세계대전만이 ‘세계대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말은 물론 전쟁이 진행 중이던 시절에 붙은 이름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을 상정하지 않는 한 그런 이름은 붙을 수 없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이 진행 중인 동안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에는 그냥 대(大) 전쟁(Great War)이라고 불렸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1914~1918년의 대 전쟁은 차후 ‘세계대전’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전쟁이 됐다. 참전국의 범위, 전쟁이 행해진 지역, 인명 피해 등이 모두 인간의 역사에 나타난 전쟁 중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게 됐던 가장 큰 전쟁이었으니 말이다.
인류역사상 最多 전사자수
현재 미국 럿거스 대학에서 국제정치와 전쟁을 강의하는 잭 리비(Jack Levy) 교수는 위스콘신 대학의 정치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근대가 시작된 이후 세계 역사에 나타나는 강대국 간의 전쟁(Great Power War) 119개를 모두 찾아내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던 전쟁이론가이다.
그의 논문은 1978년 미국 국제정치학부문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을 수상했고 1983년 ‘현대강대국 체제에서의 전쟁 1495~1975(War in the Modern Great Power System 1495~1975)’라는 책으로 간행됐다.
리비 교수의 자료에 의하면 1차 세계대전은 근대 유럽 강대국 체제가 시작된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약 420년간 발생했던 그 어떤 전쟁보다도 전사자(battle deaths)가 많았던 전쟁이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쟁은 민간인들보다는 대개 군인들 사이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전쟁 규모를 전사자의 숫자 기준으로 삼는 학자들이 많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쟁에서 100만명 이상의 군인 희생자를 낸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지속된 30년전쟁, 1701년부터 1713년까지 지속된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1803년부터 1815년까지 지속된 나폴레옹전쟁 등 단 3개의 전쟁뿐이었다. 각각 115만1000명, 125만1000명, 186만9000명 등이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은 군인 인명 피해가 무려 773만4300명에 이르는 진정 최악의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도 군인 인명 피해가 100만 명이 넘는 전쟁은 1294만8300 명이 전사한 2차 세계대전 뿐이다.
한국전쟁은 군인 전사자 숫자가 100만명에 약간 못 미치는 95만4960명으로 전사자 숫자가 99만2000명이었던 7년전쟁의 뒤를 이어 세계 7대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패권 전쟁(Hegemonic War)의 효시
지구 전체가 하나의 단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16~17세기 이후의 일이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신했고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지구 전체가 하나의 단위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세계로 뻗어나간 영국은 청나라를 굴복시킨 후 명실 공히 세계의 ‘챔피언 국가’로 등극하게 됐다. 영국은 1860년대에는 생산력에서도 세계 1위의 국가가 됐고 전 지구 경제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제국이 됐다.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은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영국은 1816년 나폴레옹을 굴복시킨 후 세계 최강의 패권국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영국이 군림하는 세계에서 다른 나라들이 영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잘 따르는 한 세계는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실제로 영국이 압도적인 1위의 강대국으로 등극한 1815년 이후 꼭 100년 동안 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간의 평화 시대가 지속됐다. 이 시기는 영국식 평화 즉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의 시대였다.
그러나 폴 케네디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국제정치학자들의 분석이 말해주듯 패권국은 그렇지 않은 나라들보다 성장의 속도가 늦어지게 된다. 패권국은 경제발전에만 집중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패권국은 세계에 질서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패권국은 패권국의 지배에 안주한 상태에서 경제 발전에 매진하는 신흥 강대국의 경제발전 속도를 당할 수 없다. 결국 패권국과 신흥 발전국가들 사이의 국력 격차는 점차 줄어들게 되고 실력이 증대된 국가는 패권국의 지위를 노리게 된다.
19세기의 역사에서 패권국은 영국이었고 신흥 발전국은 미국과 독일이었다. 미국은 자기 영토가 워낙 넓어 식민지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경제발전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제국주의 선발 주자들이 세계를 거의 모두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발국인 독일은 불만이 많았다. 결국 독일이 택한 것은 기존 국제질서의 타파, 즉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었다.
▲ 패권 전쟁의 효시가 된 세계대전 |
승자가 불분명한 전쟁
그러나 패권의 이점을 누가 평화적으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세계 1위인 영국과 2위인 독일이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냐를 두고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들이 전쟁을 벌였고 기존질서를 옹호하는 강대국, 파괴하려는 강대국들이 편을 갈라 싸우게 됐다. 결국 인간 역사상 가장 처참한 살육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문자 그대로 ‘대 전쟁’이 치러진 것이다.
독일은 도전에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영국이 패권을 수호한 국가로 살아남게 됐다고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전쟁은 종결됐다. 승자가 있다면 미국, 프랑스, 일본이었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이후 독일을 아예 파탄 내기로 작정했다.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 전쟁 배상금을 독일에 부과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입지를 확보했다.
▲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물린 베르사유 조약 |
진정한 승전국은 미국이었는데 미국은 전략적인 목적보다는 고상한 이상주의적 목표를 가지고 전쟁에 임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유럽의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극도로 이상주의적인 국제기구,
즉 국제연맹을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미국 의회의 반대 때문에 정작 미국은 국제연맹의 회원국으로 가입도 하지 못했다.
‘20년 동안의 위기’
결국 영국이 1919년 이후의 세계를 주도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1919년 이후의 세계는 더 이상 팍스 브리태니카의 규칙이 적용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미국만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경제적, 물리적 능력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예 그럴 의도 자체가 없었다.
세계를 끌어나갈 능력이 없는 영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꼭 20년의 세월이 있었는데 역사학자 E.H.카(Edward Hallett Carr)는 이 시기를 ‘20년 동안의 위기(Twenty Years Crisis)’라고 명명했다.
1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면서도 누구의 전쟁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전쟁이 되고 말았다. 세계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한 국제질서를 ‘교통정리’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을 필요로 할 지경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이미 예고돼 있었던 것이다. 대 전쟁(Great War)은 그래서 ‘1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명명됐다. 770만 이상의 유럽 젊은이들은 그렇게 무의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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