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부터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으로 인해 휴대전화를 구매할 때 업체가 내주던 ‘보조금’이 크게 줄었다. 이로 인해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려던 소비자들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정부는 단통법을 통해 통신사의 출혈적인 경쟁구조를 재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업체와 대리점 등은 시쳇말로 ‘죽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긴장해서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와 LG전자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단통법은 ‘지금 당장의 위기’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미래 전략에 큰 분수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스마트폰’하면 떠올리게 되는 ‘갤럭시’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삼성전자는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실적을 가장 크게 뒷받침하는 스마트폰 시장이 곧 ‘레드오션’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바뀌게 된 이유는 더 이상 진입장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의 제품이지만 이들 외에도 러시아,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 선두업체들 못지않은 스마트폰을 ‘찍어내고’ 있다. 현지 소비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시장 상황이 현재 양상과 같이 변하고 한국 기업들이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한국을 먹여 살리는 스마트폰’은 ‘핀란드의 먹거리였던 노키아’와 같은 수순을 밟게 되리라는 게 세계 IT기기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그룹 오너는 물론 최고위 임원들도 ‘스마트폰 이후의 성장 동력’을 찾아내기 위해 수년째 분주히 뛰고 있지만 뭔가 확실한 ‘꺼리’는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개성 없는 ‘한국산 스마트폰’
국내 최고의 인재들이 몰려 있다는, 아시아 전체로 봐서도 엄청난 자금을 연구개발에 쏟아 붓는 삼성전자임에도 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걸까. 한국 언론과 학계 등에서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귓가에는 안착하지 못한 채 주변부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삼성전자가 만들어내는 스마트폰이 가졌던 ‘과거의 장점’이 현재와 미래에는 ‘가장 큰 약점’이 됐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과거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기술과 무난한 디자인, 무난한 성능, 괜찮은 내구성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계 휴대전화 사용 인구의 상당수가 스마트폰을 갖게 된 상황에서는 이런 장점이 별 의미가 없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한국산 스마트폰은 네모난 모양에 5인치가 넘는 대화면 터치스크린, 안드로이드 OS, 적절한 수준의 두께, 그걸로 끝이다.
반면 지난 1년 사이 세계 각국의 ‘마이너 브랜드’가 만들어 내는 스마트폰들은 개성이 넘친다. 미국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는 2년 전부터 스마트폰을 내놓고 있다. 캐터필러 스마트폰의 특징은 이른바 러기드 폰(Rugged Phone)이다.
험한 환경에서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말이다. 캐터필러가 최근 내놓은 CAT S50은 1m 수심의 물속에 넣어도, 던져도, 1.8m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먼지 폭풍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작동한다.
OS는 안드로이드 4.4 킷캣을 사용하며 쿼드 코어에다 램(RAM)도 2GB, 통신방식은 3G와 4G LTE를 채택해 사용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
이와 비슷한 러기드 폰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브랜드는 일본의 교세라다. 교세라는 지난 7월에도 새 러기드 폰 ‘브리게디어’를 내놨다. 美 국방부의 군사 규격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물론 화면 또한 튼튼한 ‘고릴라 글래스’를 채용했다. 고릴라 글래스는 아이폰이 가격 상승의 이유로 꼽았던 부품이다. 반면 교세라의 신형 러기드폰은 불과 399달러다.
러시아도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러시아의 통신업체인 요타는 계열사 ‘요타 디바이스’를 통해 4.3인치 화면을 가진 ‘요타폰’을 내놨다.
러시아까지 가세 ‘스마트폰 춘추전국시대’
첫 고객은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였다. 이 요타폰의 가장 큰 특징은 ‘듀얼 스크린’이다. 전면은 일반적인 스마트폰과 같지만 뒷면은 ‘E-ink’로 불리는 흑백 화면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전력 소모를 최대한 줄이면서 시간 확인 등의 간단한 정보 확인과 함께 뉴스나 전자책 등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대만의 IT기기업체 아수스(Asus)는 전혀 다른 스마트폰 발전 전략을 채택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 패드를 하나로 합체할 수 있는 ‘폰 패드’로 세계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수스는 2014년 두 번째 ‘폰 패드’ 시리즈를 내놨다.
이 폰 패드는 평소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용하다가 스마트 패드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폰을 패드에 끼우기만 하면 된다. 패드 내에 자체 대용량 배터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사용시간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다.
‘저가 공세’로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약진도 대단하다. 오포(Oppo)라는 업체는 두께 5mm 대의 스마트폰을 이미 1년 전에 내놨고 화웨이는 한국산 스마트폰의 대표격인 ‘갤럭시 5’의 3분의 1 가격에 4G LTE를 사용하는 최신 스마트폰 ‘아너 6’를 ‘X3’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시장에 내놨다.
전 세계적으로 아이폰에 이어 ‘디자인’과 ‘감성’으로 재기 중인 브랜드는 소니다. 소니가 내놓는 ‘익스페리아’는 국내에도 자급제 폰으로 판매되고 있다. 소니 엑스페리아는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유행하는 ‘스마트폰 계급도’에서는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가격이 높은 면은 있지만 보라색, 연두색, 파란색 등 원색의 특성을 십분 살린 훌륭한 디자인과 시스템 최적화를 통한 빠른 처리속도, 여기다 방수방진 기능까지 더해 ‘스마트폰을 모시고 다녀야 한다’고 불평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빼앗아 가고 있다.
이미 설명한 업체들 가운데 캐터필러를 제외하면 모두 IT 하드웨어 제조가 ‘본업’인 업체들이다. 하지만 이제 스마트폰 시장은 더 이상 IT업체의 전유물로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의 군수업체 보잉은 2015년 초에 ‘특별한 스마트 폰’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브랜드 이름은 ‘블랙 폰’으로 알려졌다. 이 스마트폰의 특징은 미 국방부 군사규격을 충족하는 ‘러기드 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물 속 한국’ 스마트폰 미래 전략 없다?
같은 ‘블랙폰’끼리는 암호화를 통해 통화와 메시지를 나눌 수 있고 비상시에는 스마트폰 내부의 모든 정보를 아예 못쓰게 만드는 ‘자폭 기능’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용도의 슬리브(Sleeve)를 채용해 위성통신, 장기간 사용 등도 가능해 군사작전이나 특수요원들이 사용하기에 최적화돼 있다. 한편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스마트폰 보안 시스템’ 개발에 성공해 현재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대기업들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장 전략은 ‘기기 판매’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한편 세상은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한국의 스마트폰 업체들, 그리고 이들로부터 연구비와 광고비를 받는 언론들은 다국적 금융기업의 애널리스트 리포트 등을 인용해 “스마트폰의 미래는 웨어러블(입는) 기기” 또는 “디스플레이 혁명” 등에 대해서만 떠든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스마트폰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는 시각은 판매 실적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삼성전자와 애플의 실적이다.
애플은 디자인 중심, ‘나는 개성 있고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이라도 결국은 전화’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또는 스마트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미래도 이와 같을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애플과 같은 ‘개성’과 ‘감성’을 강조하는 이들의 눈길을 확 이끌 기술은 이미 곳곳에서 개발 중이다. 일부에서는 실용화에 성큼 다가선 상태다.
스마트폰을 더 이상 손에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등 국내업체는 이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웨어러블 폰이 대세’라며 시계 형태의 ‘스마트 기어’를 경쟁적으로 개발하느라 정신없지만 세계 기술 추이는 다르게 돌아간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폰은 이제 가방 속의 ‘본체’와 ‘귀에 꽂고 다니는 단말기’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즉 스마트폰과 스마트 패드가 하나로 통합되고, 전화 기능은 블루투스로 작동하는 안경, 이어셋, 헤드폰과 통합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구글 글래스가 그 단적인 예다. ‘본체’가 되는 패드는 매우 얇고 가볍거나 아니면 ‘러기드 폰’과 같이 야외활동에서 마음 놓고 써도 될 만큼 튼튼한 형태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IT 하드웨어 업체들이 가장 고민하는 배터리 문제는 갈수록 제조단가가 떨어지는 태양광 전지소자가 답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해외 오픈 마켓에서는 노트북, 스마트폰을 위한 휴대용 태양광 전지가 10만원 남짓이다.
마지막으로 투명 디스플레이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혁명’을 가져 올 것이 바로 ‘무매질 3D 디스플레이’다.
처음에는 아마존의 ‘파이어폰’처럼 스마트폰의 화면 속에서 3D로 볼 수 있는 형태겠지만 레이저 기술이 발전하면 매질 없이 공기 중에 투사해 3D로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대세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 기술은 이미 일본의 대기업들이 상당 부분 개발해 놓은 상태다.
기존의 안드로이드나 iOS, 윈도우 폰 업체들의 저항이 거세겠지만 ‘무매질 3D 디스플레이’와 ‘투명 디스플레이’ 기술이 융합된 스마트폰이 등장하게 되면 세계 통신시장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3차원으로 구동할 수 있는 OS를 ‘리소스’가 매우 작은 스마트폰 안에서 구동해야 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이대로 가면 미래가 없다
세계 각국의 IT 전문가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의 미래를 이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한국의 스마트폰 기업들, 특히 삼성전자는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제품’만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비슷한 사례는 2005년에도, 2009년에도 있었다. 모토롤라는 한국의 벤처기업으로부터 금속 케이스를 사용해도 전파 방해를 받지 않는 기술을 사들여 금속으로 된 초슬림 휴대전화 ‘레이저’를 내놨다. 모토롤라의 ‘레이저’는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모토롤라 레이저가 한국에 들어온 뒤 시장은 초토화됐다. 지금처럼 자급제 폰이나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음에도 그랬다. 2009년에는 KT가 아이폰을 들여오면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그래도 삼성전자는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의 두 차례 위기에 대해서는 정부 관료와 통신업체 덕분에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는 한국 정부와 통신업체가 아무리 도와줘도 살아남을 수 없는 ‘쓰나미’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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