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됐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됐다
  • 이춘근 박사
  • 승인 2014.09.25 14: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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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박사의 전략이야기]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웃통을 벗은 채 말을 타고 사진을 찍기 좋아하며 과거 양극의 한축을 이뤘던 소련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는 야망에 넘치는 정치가이다. 푸틴은 지난 봄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 반도를 무력 점령한 후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 일부마저 러시아에 병합하려고 시도함으로써 국제 사회로부터 ‘부랑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강공책에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러시아의 공격을 막을 방안이 없다. 서방측 특히 미국의 지원이 있어야만 우크라이나의 생존이 가능한데 서방측의 지원은 말만 요란하지 그 효과는 미미하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미국 국내로부터는 물론 국제 사회의 비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바마의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은 미국 내 보수 논객들의 단골 비판 메뉴가 된 지 오래다. 더 나아가 러시아가 저렇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의 힘이 쇠잔했기 때문이며 제2의 냉전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난무하는 중이다.

푸틴이 야기하는 우크라이나 문제와 미국의 미적지근한 대응은 심오한 국제정치학적 분석을 요하는 문제다. 우리나라 언론, 미국 혹은 다른 나라 언론이 보도하듯 쉽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 우크라이나 사태가 야기된 시점, 미국과 러시아의 국력, 그 외에도 세계적 차원에서의 힘의 균형문제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작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크림반도 지도

크림반도 사태의 본질은

우크라이나 문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서방측은 푸틴을 비난하고 있지만 푸틴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당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크림반도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크림반도는 수백년 동안 주인이 수시로 바뀐 땅이었다. 훈족, 그리스, 비잔틴 제국, 몽골 제국에 이어 1783년 러시아에 병합됐다. 1917년 공산혁명으로 소련 정부가 들어선 뒤 수년 동안 크림은 반(反)혁명군의 거점이었다. 1921년 소련 공산정권이 크림을 점령했지만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나치 독일이 점령하기도 했다.

1944년 소련이 다시 되찾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을 이루는 공화국들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크림반도를 둘러싼 분규가 발생했다. 1954년 당시 흐루시초프 수상은 크림반도를 자신의 정치적 지지의 세력 기반인 우크라이나에게 양도했다. 크림반도가 소련의 영토라는 사실에는 문제가 될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가 됐고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됐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정치가 시쳇말로 ‘개판’ 수준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우선 지난 2월 21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친러 정책을 추진했던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는 러시아로 망명했는데 망명 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러시아에 군사개입을 요청했다. 야누코비치가 망명한 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친서방정책을 펼치자 크림반도 주민의 절반이 넘는 러시아계가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3월 16일 주민 투표로 러시아에 귀속되겠다고 결정했다. 푸틴은 3월 18일 그 결정을 받아들여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을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임시 대통령은 3월 24일 러시아에 항복했다. 3월 26일 러시아군은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부대와 시설을 모두 장악했다. 크림반도는 60년 만에 다시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이다.

어쩌다가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영토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됐는가? 소련이 해체되는 바람에 독립국이 된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이 막강했지만 경제발전의 명목으로 군사력을 해체하고 핵무기마저 포기했다. 그러나 군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부패 정치인들이 돈이 되는 각종 무기들을 아프리카 등지로 몽땅 빼돌려 뒷돈을 챙겼다. 우크라이나 병사의 손엔 낡은 소총만 남은 상황이 됐다. 애초에 나라를 지키겠다는 개념도 없었다. 수백억 달러의 무기가 증발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러시아·영국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해 스스로 핵무기도 포기했다. 우크라이나는 그 대가로 3국으로부터 ‘주권과 안보, 영토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문자 그대로 정식 조약이 아닌 양해각서로서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었다.

축출당한 야누코비치 前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의 ‘자초된 비극’

비록 몰락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자신보다는 훨씬 막강한 러시아로부터 독립과 자존을 지킬 생각을 했다면 우크라이나의 정치가 그렇게 엉터리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크림의 러시아 귀속에 자극받은 러시아인들(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거주하는 다수 종족)도 역시 자신의 거주 지역이 러시아에 귀속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이들을 진압하고자 했고 러시아는 친러파인 반란 세력을 지원하고자 했다. 소련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푸틴에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것이다.

9월 6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우크라이나에서 탈퇴, 러시아로 귀속을 원하는 반군 사이에 휴전이 체결된 모양이다. 며칠이나 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휴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든 푸틴은 이 기회를 통해 우크라이나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 귀속시키고자 할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의 해체를 막을 수 없게 된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1차적으로는 푸틴의 손에,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과연 그들이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필자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자존은 이미 유지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고 보고 있다.

국제법 혹은 도덕의 관점에서 본다면 러시아가 크림을 병합한 것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불법행위를 규탄하고 있으며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크림반도 거주민들이 압도적 다수로 크림의 러시아 복귀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이는 불법적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체 국민이 결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현실이다.

크림을 러시아로부터 빼앗아 우크라이나에 다시 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군사 안보문제를 소홀히 했던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빼앗긴 후 국방력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보다 오히려 더 무모하다.

우크라이나가 자력으로 러시아를 상대할 방법은 없다. 세계 3위 핵 강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反 푸틴 시위

제2의 냉전시대 도래하나

문제는 서방측 특히 미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 많은 평자들이 ‘제2의 냉전’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냉전(cold war)의 의미를 모르고 말하는 데서 비롯되는 바 크다. 냉전은 상대방을 다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두 초강대국이, 현실적으로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벌일 수밖에 없는 ‘전쟁 아닌 전쟁’이다. 현재의 러시아는 미국과 냉전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의 국가가 아니며 미국은 현재의 러시아에 대해 라이벌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요즘 미국이 러시아를 경제 제재(economic sanction)한다고 한다. 경제 제재란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다룰 때 쓰는 방법이다. 강대국을 향해 경제 제재를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러시아는 경제력으로는 이탈리아보다도 못한 나라다. 한때 대한민국보다 GDP 수준이 낮은 적도 있었다. 이탈리아보다 작은 규모의 경제를 가진 나라가 미국과 ‘냉전’을 벌인다? 한 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미국은 러시아를 전혀 두려운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미국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고 견제하기로 마음먹은 나라는 오히려 중국이다. 대전략 차원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활용해야 한다. 냉전 당시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해 중국을 이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전문가들 중에는 “일본의 군사력은 강해서가 아니라 너무 약해서 문제”라며 일본의 군사력을 증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같은 논리로 러시아가 더 이상 허약해지는 것은 미국의 대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의 힘을 견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러시아가 존재하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전략적 동맹’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수천 킬로미터 이상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두 개의 강대한 나라가 진정한 우호국일수는 없다. 러시아는 중국과 해군훈련을 벌인 직후 시베리아 일대에서 군단 급의 육군훈련을 속개하는 나라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창이던 때 ‘러시아는 미국의 라이벌이냐?’ 라는 필자의 질문에 웃기지 말라는 식으로 반응한 미국의 군사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국제정치의 무상함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러시아를 분노하게 만들거나 혹은 약화시켜 가면서까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보장해 줄 것 같지 않다. 더욱이 크림반도를 러시아로부터 빼앗아 우크라이나에게 되돌려 준다고 상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미국은 더 이상 ‘세계 경찰’의 노릇을 못하는 나라처럼 비춰지는 것을 피하고자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근해에 항공모함을 파견해 무언의 힘의 과시할지도 모르며 국제회의에서 푸틴을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더 이상 훼손할 경우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할 것이다.

러시아는 우선은 크림반도 장악으로 만족할 수 있다. 크림반도에 대한 현 상황을 묵인 받는다면 애써 허약한 우크라이나를 다 점령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붕괴 직전에 놓인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켜준 나라로 인식되고,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사실상의 영토로 인정받는 선에서 게임은 끝나게 될지 모른다.

이웃에 독재자가 통치하는 강대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군사력을 갖춰 국가안보에 집중하지 않는 무능하고 허약한 나라, 어떤 이유에서건 국민 통합을 유지할 수 없는 나라는 반드시 이웃 강대국들에게 능욕을 당했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역사적 진실을 다시 증명해 주는 사례일 뿐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라이벌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강대국이 아닌 한, 또한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사활적인 지역이 아닌 한 우크라이나의 불행한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다른 나라의 자비심에 국가의 운명을 맡긴 나라는 항상 불행했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이어도와 독도를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의 운명에 비유하는 것은 과한 일일까?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두 번의 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군사력 증강을 방불케 한다. 일본의 군사력도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이들로부터 우리를 지킬 구체적인 준비는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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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 2015-12-10 07:41:53
이춘근박사님의 국제 정세 분석은 탁월 합니다. 박사님의 사설들을 하나 둘씩 읽어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