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망했죠, 망했어요.”
진도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올라탄 택시. 기사에게 진도 경기가 어떤지를 물어본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진도의 절망적인 상황은 근처 음식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내에 위치해 있고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음식점임에도 손님이 한창 붐빌 점심시간에 서너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을 정도였다. 식당 직원의 말을 들어보자.
“장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어요. 원래 같았으면 적어도 70% 정도 테이블에는 손님이 차 있어야 하는데 파리만 날리고 있다니까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20일여가 흘렀다. 하지만 이 사건이 던진 사회적 경제적 파장은 여전하다. 사건이 일어난 진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체가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노란 리본이 달려있는 진도실내체육관 앞 나무 |
세월호 참사에서 비롯된 변화의 움직임
여러 변화 중 하나는 ‘관료주의’ 타파 움직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관료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위 관료가 되면 아주 큰 실수가 아니고서는 물러날 리 없는 안정된 직장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은 직책으로의 인사이동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또 퇴직 후에는 관련 기업에 재취업함으로써 ‘밥그릇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료들을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합성어로 지칭한 사람들이 일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는 이 말을 일대 ‘유행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번 참사의 뿌리가 바로 ‘관피아’에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문성 없는 행정 관료가 전문 지식이 필요한 해양 분야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잦은 보직의 이동 또한 전문성이 있을 수 없는 이유로 꼽히며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안전행정부의 ‘2012년 인사 통계’에 의하면 5급 이상 공무원이 평균 1년도 안 돼서 보직을 옮긴 경우는 36.5%였고, 2년 미만을 기준으로 하면 76.0%로 두 배가 올라갔다.
일각에서는 민관유착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쳇말로 ‘꿀보직’을 위해 옮기는 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문성이 생길 기반이 마련되지도 않고 관료들이 전문성을 가져야 할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다. 잦은 인사이동에 따른 전문성 저하를 막기 위해 2급 이상 고위관료는 한 자리에 최소 1년 이상, 3·4급은 1년 6개월 이상, 과장급 미만은 2년 이상 머물도록 규정한 공무원 임용령 45조는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실제로 해난사고 수습의 책임자인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대책본부차장인 이경옥 안행부 2차관, 실무 총괄조정관 등은 모두 국가 행정고시 출신으로 해양구조는커녕 일반재난구조 경험도 없다. 이러한 관료들이 구조 지시를 담당했으니 초동대응이 미흡해져‘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의 해양경찰청에 해당하는 미국 코스트가드의 로버트 팝 사령관은 1975년 해안경비대 학교를 졸업한 후 경비함 여섯 곳에서 근무했고 그중 네 번은 함장을 맡았다. 일본의 해상보안청의 간부들도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해상보안대학교를 졸업한 전문가들로 대부분 구성돼 있다. 재난관련 전문가들을 보기 힘든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처럼 그동안 묻혀 있던‘적폐’들을 한순간에 드러내 공론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했던‘비정상의 정상화’의 과정이 뜻하지 않게 세월호 정국과 맞물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중이제 머리 못 깎는다’ 는 말처럼 관료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자신이 치울 수 있을지는 여전한 의문으로 남는다. 관피아 문제를 척결하기 위해 많은 법안들이 쏟아졌지만 정작 처리된 법안은‘0’이다.
퇴직 관료의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안(김영란법)’은 아직도 국회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서는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민간 전문가를 주요 보직에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불러온 또 다른 변화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법치’의 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엄중한 변화다. 이 사항의 본질에 대해서는 미래한국 477호의 취재수첩 ‘세월호특별법이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를 통해서도 한 차례 밝힌 바 있다.
세월호 특별법, 법치체계 흔드나
새정치민주연합은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세월호특별법)’를 통해 현재의 사법체계를 뛰어넘는 요구를 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희생자 전원과 피해자에 대한 의사상자 인정’과 ‘특별조사위원회가 단독적인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지적된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유가족들의 요구를 전부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에 부딪쳐 진행이 더뎌지고 있지만 유가족들이 단식까지 하며 강한 요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결정이 날지는 미지수다.
일련의 상황이 더 엄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정치인들이 사법체계를 뛰어넘는 세간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제스처는 차후 또 다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사건의 피해자 혹은 관련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좋지 않은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
‘윤일병 사건’은 이미 그 상황에 대한 암시로 작용하고 있다. 윤일병이 구타로 사망한 것에 대해 여론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자 군 당국은 “살인죄 적용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현재 가해자들은 ‘살인치사죄’로 기소된 상태다. 여론에 따라 법의 적용이 달라지는 이런 상황은 법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한다.
등대 앞에 놓여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 |
혼란의 와중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들
일련의 혼란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논의의 중심축이 서울로 옮겨간 지금도 진도군청 4층 상황실에서는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추모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자가 바라본 현재 진도의 상황은 한 마디로 ‘속 타는 침묵’ 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상황에서도 진도 주민들은 일말의 불평을 남기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계가 전보다 어려워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정부가 진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여러지원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큰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다는 전언이다. 속이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주영 장관은 처음처럼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든 일과가 세월호 참사 수습에 맞춰져 있다. 이 장관은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 간단한 세면과 아침식사를 하고 전날 상황을 보고 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후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을 주고 받고 다시 군청으로 돌아와 상황 수습에 집중한다.
오후에도 지속적인 상황을 보고받고 지시를 내리는 일과를 지속하고 있다. 그 일과의 중간에 해양수산부의 당면과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국가적인 정책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미 이 장관은 그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군청 상황실에는 화상TV가 설치돼 있어 언제든지 세종시, 정부부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장관은 참사 수습이 끝날 때까지 절대 자리를 뜨지 않는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상태다. 그리고 그는 이 결정을 지키고 있다. 120여 일이 지난 지금도 그는 군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낸다. 국가 차원의 문제가 생겨 자리를 떠야 할 때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을 기본방침으로 하고 있다.
여전히 세월호가 누워 있는 바다에서는 어떤 상황이 진행되고 있을까. 세월호 수색작업은 4차까지 진행됐으며 곧 마무리 될 예정이다. 4차 작업은 SP1이라고 불리는 세월호 4층 선미 쪽 왼편 선실에 들어가기 위한 작업이다. 당연히 쉽지 않은 작업이다.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의 냉랭한 분위기 시계가 확보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각종 잡동사니가 문 앞에 쌓여 있어 이것들을 치우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또 거센 해류 때문에 하루에 최대 4번 1시간 정도 밖에 들어갈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 원활한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 수색대는 1주일 내로 이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8월 20일부터는 5차 수색작업을 실행한다.
진도실내체육관의 상황도 전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분위기는 무겁고 냉랭하다. 실종자 가족들은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며 몇몇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로 알려졌다. 링거를 맞고 있거나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가족도 다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자 가족들을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도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숙식도 체육관에서 해결하고 있다.
팽목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종자 가족들이 주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으며 추모를 위한 작은 공간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또한 추모를 위해 방문한 추모객들도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고 있었다. 한추모객은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과거의 참사가 되어버렸을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진행 중’이다. 현장에서는 여전한 슬픔과 극복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일련의 변화는 한국 사회의 산적한 ‘비정상’들을 ‘정상’의 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을까. 도리어 ‘정상’이 ‘비정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일은 없을까.
변화와 불변, 정상과 비정상이 뒤엉키며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는 세월호 정국에는 보다 지속적이고 진지한 시선이 여전히 요구되고 있다.
정용승 기자 jeong_f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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