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세월호특별법, 재보궐선거 등 내부적인 문제에 침잠하고 있을 때 바깥세계에서는 격랑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교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침략, 이라크 반군 IS의 이라크 점령 및 소수민족 학살 등은 세계를 긴장 속에 빠뜨리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에 향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정작 한국은 침묵하고 있다. 바로 중국 공산당의 ‘내정간섭’ 문제다.
지난 6월 10일과 11일, 한국이 주권국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서울에서 벌어졌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한국이 3년 전부터 필리핀에 퇴역 초계함을 기증한다는 소식을 들은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이 외교부와 국방부를 차례로 찾아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주한 중국대사관 고위관계자와 주한 무관이 외교부와 국방부를 찾아와 “필리핀에 군함 기증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때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은 “필리핀에 예정대로 초계함을 기증할 경우 7월 한중 정상회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한국, 필리핀에 초계함 주지 마!”
주한 중국대사관 무관인 이 인민해방군 장성은 한국 정부가 필리핀에 퇴역 초계함을 기증하는 것을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명시적 의사표현’이라고 주장하며 “한중 관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한국 외교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중국 인민해방군 장성에게 이런 얘기를 듣고서도 한중 정상회담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문제를 비공개로 논의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전하며 “중국 정부가 제3국으로의 무기 수출이나 공여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간섭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이처럼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내정간섭’ 조짐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바로 미국의 MD(미사일 방어망)에 사용되는 미사일의 한국 배치 문제다.
중국 인민해방군 인줘(尹卓) 해군 소장은 지난 8월 5일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참여한다면 (중국의) 핵 타격 위험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한국이 사드(THAAD)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CCTV의 질문을 받은 인줘 해군 소장은 “한국 스스로가 미국의 전초부대를 자처하는 것”이라며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 시스템의 주요 저지 대상은 중국과 러시아의 중장거리 미사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인줘 소장은 “만약 한국이 정말로 미국의 사드를 도입한다면 중한관계는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주요 핵보유국인 러시아는 핵보유 국가가 다른 나라와 연합해 방어체계를 가동할 경우 선제적으로 핵 타격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이 다른 나라의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한국에 매우 위험하다.”
중국 공산당이 한국 정부에 “미국의 사드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도 중국 공산당은 ‘사드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경고했는데 여기에는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이 함께 나섰다.
지난 7월 28일 새민련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여야 의원들과 함께 중국을 다녀온 뒤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 미사일의 한국 배치 가능성과 관련해 중국 외교부가 상당히 민감한 반응과 불쾌감을 보였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中공산당 협박에 ‘앞잡이’ 자처한 야권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군사적인 도발을 자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그런 일로 6자회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사드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며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그대로 전했다.
북핵 위협에 대비해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해야 한다는 일부의 의견에 대해서도 이 부의장은 “중국의 고위 관료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 핵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 전에 한국이 핵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면 신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며 중국의 ‘우려’를 내세워 반대했다.
지난 6월 23일 야권은 국방부가 사드 미사일의 한국 배치를 허용할 뜻을 밝히자 “주변국, 특히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며 공동성명을 냈다. 새민련 의원 모임인 ‘더 좋은 미래’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미국, 일본과 함께 대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외교적 선택을 했다”며 “미국의 MD 체계에 편입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사드 미사일 배치를 허용하고 한미일 동맹을 통한 한일 군사정보교류를 하는 것이 곧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적극 참여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 또한 6월 20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사드 미사일의 한국 배치에 대해서 “이미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한중관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긴장과 무기개발 경쟁을 부추길 뿐”이라고 반대하며 배치 중단을 요구했다.
결국 중국이 한국에 대해 내정간섭 성격의 발언을 하는 것은 필리핀에 퇴역 초계함을 기증하는 문제, 그리고 사드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런 협박을 할까. 답은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에 있다.
초계함 기증, 미사일 배치 문제의 본질
이 전투함은 사실 2010년부터 필리핀에 기증하기로 돼 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반대로 계속 늦어지다 지난 5월 30일 한-필리핀 국방장관 회담에서 “올해 안으로 기증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포항급 초계함 1척과 함께 배수량 415톤의 물개급 다목적 상륙정(LCU) 1척, 작전용 고무보트(RHIB) 16척도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한국 정부가 필리핀에 초계함 등을 기증하려는 이유는 사실 FA-50 경공격기, 신형 인천급 호위함 수출 등 방산수출 문제와 연관이 있다. 한국 정부는 2011년 FA-50 경공격기를 필리핀에 수출하기 위해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그 중 하나가 한국군에서는 퇴역한 구형 고속정과 초계함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친구’임을 자처한 박근혜 대통령 또한 2013년 10월 방한한 필리핀 대통령 베니그노 아키노 3세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방위산업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FA-50 도입은 물론 호위함 분야에 대해서도 적극 협력을 요청했고 아키노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이후 필리핀은 올해 3월 FA-50 경공격기 12대(4억1000만달러 규모)를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현재 필리핀 정부가 해군 현대화를 위해 추진 중인 신형 프리깃함 구매사업에도 한국 업체들은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초계함 기증이 큰 몫을 담당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사드 미사일의 한국 배치 문제는 북핵 및 미사일과 깊은 연관이 있다. 현재 한국군이 북한의 미사일발사 탐지에 사용하고 있는 레이더는 이스라엘제 ‘그린 파인’이다. 이 미사일은 ‘아이언 돔’에도 사용될 정도로 성능이 좋지만, 탐지거리가 최대 500km에 불과하다.
당초 한국군은 미국제 X밴드 레이더인 ‘TPY-2’를 도입하려 했지만 중국 공산당의 눈치를 보던 노무현 정권이 이스라엘 제품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성능이 좋아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장사정 로켓을 실시간으로 탐지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북한의 미사일을 탐지한다 해도 한국군에는 이를 요격할 능력이 없다. 한국군이 독일로부터 중고로 수입해 업그레이드한 ‘패트리어트 PAC-2+’ 미사일의 경우 스커드 미사일 수준의 탄도탄은 어느 정도 격추할 수 있지만 북한이 최근 석 달 동안 시험한 300mm 장사정포나 노동, 대포동과 같은 중거리 탄도탄을 격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에 사드 미사일 배치를 고려했던 것이다. 사드 미사일은 지금까지 개발된 요격 미사일 가운데 속도와 도달 고도가 가장 높은 고성능 미사일로 미국조차 비용 문제로 얼마 갖추지 못한 전력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 공산당 정부는 ‘도련선 전략’을 내세워 동남아 국가들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전투도 불사하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의 무력분쟁에는 적극적이지 않지만 미군에게 늘 기대왔던 필리핀은 중국에게 ‘만만한 상대’다.
필리핀 앞바다에는 막대한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스카버러 섬과 스프래틀리 군도가 있다. 중국 공산당은 2013년부터 이 지역에 군사시설을 건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때문에 필리핀 국민들은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제공한 70년도 넘은 프리깃함 2척이 전부이다시피 한 지금의 필리핀 해군 전력으로는 도저히 중국 인민해방군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 한국이 80년대에 건조한 초계함이 제공되면 중국 인민해방군으로서는 비록 이긴다 하더라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수출하기로 한 FA-50 경공격기 또한 대지(또는 대함) 공격을 가능하도록 계량하면 중국 입장에서는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껄끄러운 상태가 된다. 여기에 만약 필리핀 정부가 인천급 호위함 2척까지 도입하게 되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필리핀을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앞으로 보게 될 중국 ‘내정간섭’은?
사드 미사일 또한 중국 정부의 도련선 전략에 위협이 된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2007년 미국 태평양 공군사령관과 태평양 사령관에게 “서태평양을 넘기라”고 협박한 뒤부터 DF-21과 같은 초장거리 지대함 미사일(사거리 2,500km)을 실전배치해 왔다. 이를 통해 미국의 항공모함 강습단을 저지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한반도에 사드 미사일이, 가까운 일본 관서지방에 X밴드 레이더 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DF-21을 언제 어디서 쏘는지, 어디를 파괴해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요격 또한 손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러니 중국 공산당 정부와 인민해방군이 ‘핵공격’ 위협까지 해대는 것이다.
이 같은 속사정들이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이 ‘협박성 내정간섭’을 했음에도 외교부는 “해당 사안은 대외비이므로 언급할 수 없다”고 답하고, 국방부는 “(한국 주재 무관과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답했다. 노무현 정권 때 전면에 나선 486세대들이 ‘친중화’를 시작하면서 이제 한국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 등은 물론 관료사회와 안보기관조차도 친중적으로 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을 핵심 국정 아젠다로 설정하고, 정치권과 관료사회가 중국을 ‘통일을 위한 지렛대’로 보는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의 ‘내정간섭’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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