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7·14 전당대회가 김무성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를 두고 혹자는 ‘될 일이 됐다’고 하고 다른 이는 ‘내홍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의견이 갈리는 걸까. 김무성 신임 대표의 당내 노선이 표면적으로는 ‘친박’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그의 정치적 여로와 경로를 따져보면 ‘비박’을 넘어 ‘반박’의 헤게모니를 창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미 김무성 대표는 ‘더 이상 당이 청와대의 시녀가 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왔다. 이 의지가 과거 황우여 전 대표와는 또 다른 긴장감을 주는 이유는 그가 차기 대선에 유력한 후보로 등장하는 경로가 이미 다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권을 향해 도전할 운명이고 그렇기에 ‘미래권력’이다. 권력은 투쟁으로 얻어진다는 정치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은 2016년 총선의 공천 지분권을 두고 격돌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잠시 이 두 권력의 힘이 허니문 혹은 탐색기를 갖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에 대한 자유보수 진영의 기대는 과거와 다르다. ‘이번에 나간 집토끼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보수 진영은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표현한다. 지난 문창극 총리 후보에 대한 새누리당 핵심 권력들의 태도가 기폭제가 됐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질 유병언은 오리무중이다.
새누리당에 대한 ‘달라진 기대’
‘안 잡는 것이냐, 못 잡는 것이냐’는 세간의 의문은 50억 골프채 로비의 수사마저 접은 상태를 만나면서 황당함의 감정으로 변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대학 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등은 원칙 없는 포퓰리즘이라는 비난과 함께 폭발 직전의 화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혁신전략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지자들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
새누리당의 근본적인 패착으로 지적되고 있는 사항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진정한 자유보수 가치를 내면화 한 인사들의 네트워킹에 무심하다는 점과 인재들을 활용한 싱크탱크를 만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점은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다가도 악재를 만나 국민들과 소통하는 전략을 찾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여의도연구원(여연)가 있다고는 하지만 여연은 새누리당의 내부용 연구원일 뿐 국민과의 소통 공감대를 만드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에는 작은 그룹단위의 비공식적 싱크탱크들이 무수히 많다. 그들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시민단체로 조직돼 당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휴먼웨어’들이다. 비록 시민 없는 단체라고는 해도 그들 간의 전략적 연대와 이익교환 시스템은 상당히 진화돼 있다. 그러한 소규모 비공식 싱크탱크들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의 형태를 띠며 야권인사들이 당선된 지방자치 단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결국 야권 지자체들이 이들의 실질적인 스폰서가 돼 주는 셈이다.
새누리당은 지방자치단체에 풀뿌리 조직들이 없다. 지방 어느 곳을 가도 이념과 가치로 무장된 탄탄한 조직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선거철만 되면 이합집산하는 오합지졸들이 된다. 그러고도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보면 신기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쳇말로 ‘야권의 뻘짓’이라고 하는 자충수와 무리수에 의한 반사이익이었다는 평가가 정확하다.
그렇게 당선된 국회의원들과 지자체 단체장, 시도의원들은 당연히 시민단체나 정무적 싱크탱크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자기가 잘나서 당선됐다는 생각으로 오만하고 건방지게 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그런 이들 주변에 모여드는 부류들도 비슷하다. 그래서 거친 표현이지만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라는 별명까지 얻은 것이다.
‘그들’의 고질적 병폐들
친박 진영에 그런 단무지들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한다면 과도한 비판일까?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 하나로 모여들었으니 다른 저간의 사정들과 상황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에 친박의 대표성을 띤 박사모 대표와 회원들이 촛불을 들고 참석했다는 코미디가 바로 이 ‘단무지’성을 드러내고도 남는다.
새누리당의 두 번째 고질적 병폐는 젊은 인재들을 키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 있는 젊은 네티즌들로부터 새누리당은 ‘할배당’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젊은 새누리당 청년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동원되고 이용되다가 버려진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그 가운데는 정말 바닥을 기면서 온갖 궂은일과 힘든 일을 도맡아 했어도 막상 당직과 공천에는 쇼맨십과 거품밖에 없는 외부인사가 발탁되는 데 처연함과 분노를 느껴 새누리당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새누리당이 한마디로 ‘나쁜 정당’, ‘못돼먹은 정당’이라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혹자에게 ‘막장’이라고 비판받는 야권정당에서조차도 새누리당과 같은 현상은 덜한 편이다. 선배와 후배가 정치적 동지애와 가치로 연대하면 막판에 서로를 버릴 때 버리더라도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바로 그런 문화에서 진영에 대한 ‘로열티’가 나오는 것이다.
풀뿌리 조직, 비공식적 싱크탱크, 그리고 로열티. 이 세 가지가 새누리당에는 없다. 그러니 솥 안에 물을 끓인다면서도 항상 솥바닥이 아닌 솥뚜껑에 불을 지핀다. 물이 끓을 리가 없다.
따라서 새누리당의 개혁은 새누리당의 ‘문화’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거창한 대국민 구호로 새누리당이 거듭나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당내 문화가 혁신되고 당직자들의 의식이 선진화돼야 지지자들도 변한다. 권력투쟁으로 날밤을 새더라도 지킬 것은 지킬 줄 아는 정당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새누리당은 머지않아 두 동강이 나고도 남을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