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라는 이름의 ‘불가사리’
AIIB라는 이름의 ‘불가사리’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7.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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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을 필두로 한 美-中 금융전쟁

중국에는 기이한 신화와 전설을 기록한 고전이 하나 있다. 바로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이다. 여러 상상의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한마디로 ‘황당’ 그 자체다. 그 가운데는 불가사리도 있다.

“곰과 비슷하나 털은 짧고 광택이 나며 뱀과 동이나 철을 먹는다”고 설명된 불가사리는 “사자 머리에 코끼리 코, 소의 꼬리를 가졌으며 흑백으로 얼룩졌다. 동철을 먹는 동물인데 똥으로는 옥석(玉石)도 자를 수 있다. 그 가죽을 깔고 자면 온역(瘟疫)을 피하고 그림으로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은 그 ‘금융 불가사리’를 아시아 경제에 만들려는 꿈을 갖고 있다. 바로 중국의 주도 하에 한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 등 총 16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 사회기반시설(인프라) 투자은행(AIIB)’이 그 주인공이다.

이 은행이 ‘불가사리’를 닮은 이유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괴상한 경제의 중국이 최대 출자국으로 참여하면서 아시아 각국의 산업 인프라를 집어 삼킬 기세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향후 내수정책을 내세워 이 은행을 통해 참여국의 부(富)를 약속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GDP가 상승하고 있음에도 중국경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거의 없다는 점과 지나치게 고평가된 중국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시한폭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중국 각 지방정부의 주요 수입은 여전히 부동산 임대업에서 나온다는 놀라운 사실. 이 국면에서도 중국경제는 괴상한 모습에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불가사리를 연상케 한다. 그런 중국이 최대 주주가 되는 AIIB는 안전할까.

 

AIIB는 이름만 ‘아시아’인 중국 은행?

아사히신문은 최근 논평에서 중국이 추진하는 AIIB에 대해 “국제기구를 가장한 중국의 은행과 다를 바 없다”며 “4조 달러 규모 외환보유액 투자처를 미국 국채에서 인프라 투자로 다원화하는 목적도 크다”고 혹평했다.

미국은 더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8일 교도통신은 “미국 정부가 중국이 한국에 제안한 AIIB에 대해 참가 보류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캐롤라인 앳킨슨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제경제담당 부보좌관이 지난달 초 미국을 방문한 한국 정부 고위 관료에게 직접 우려를 표명하고 한국 참가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NSC 대변인이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배경이란 한 마디로 중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은 각국의 변제 능력에 맞는 투자를 진행하고 부정이나 난개발을 막는 높은 기준을 확립했다”고 강조하면서 “AIIB가 이런 것들을 실천하고 기존의 국제개발기관과 협력해 공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직설적인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AIIB에 대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홍콩 명보(明報)는 중국 주도의 AIIB 창설 계획이 현재 빠르게 추진되고 있으며 올해 가을 AIIB의 체계에 대해 정부 간 협약을 맺은 뒤 내년 초 출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AIIB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동남아 순방 중 제안한 것으로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들의 인프라 건설에 금융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보는 AIIB는 어떤 이미지일까. 중국이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외환 투자처를 아시아국들로 돌리면서 미국에 대항하는 경제 질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수단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제까지 중국은 세계 각국에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미국의 금융자산에 투자해 왔다. 어떤 점에서는 중국이 미국에 대한 채권국의 지위를 누릴 수도 있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다. 중국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엄청난 자산 손실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1조4300억 달러의 외환보유량에도 손실이 생겼다. 위안화 하락폭이 한 해 5%를 넘은 데다 중국의 단기 국채수익률도 급락했다. 중국 상장은행의 손실도 예상보다 컸다. ‘미국 추산에 따르면 중국에 상장한 빅3 국유 상업은행들이 6개월 만에 입은 손실이 약 100억 위안’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미국 그림자에서 탈출하고픈 중국의 열망

당연히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불안정한 금융질서에 넌더리를 낼 만도 하다. 그러니 미국에 투자한 자산의 규모를 줄이면서 AIIB와 같은 금융기관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이 작동하는 아시아 국가들에 투자한 다음, 이를 위안화 결제 블록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그야말로 ‘대박’이 아닐 수 없게 된다.

중국은 역외 위안화 경제 블록을 만드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 AIIB가 위안화 블록과 연계되면 중국은 미국처럼 기축통화 국가가 된다. 다시 말해 ‘위안화 프린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 내수를 키우고 위안화의 구매력을 증대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중국은 AIIB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국가들을 대상으로 ‘신개발은행’(NDB) 창설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은행은 브릭스 5개 회원국이 각각 100억 달러씩 출자해 500억 달러의 초기 자본금을 조성하게 되며 5년 안에 자본금을 1000억 달러로 확대할 방침이다. 신개발은행은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신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이 신개발은행의 초대 의장국을 중국이 맡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중국발 경제 신(新)질서가 중국의 의도대로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4월 칼럼에서 중국의 위안화 약세는 중국경제의 부패와 비효율, 그리고 ‘그림자 경제’로 일컬어지는 지하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이는 과대평가된 중국 부동산과 자산의 디플레이션을 만들어 중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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