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포악한 언어로 대해 주겠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문창극 총리 내정에 반대하면서 한 말이다. 그의 말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박 의원은 정치란 ‘말로 하는 것’이라는 정가의 비법을 통달한 정치인이다. 그의 말 한마디, 경고 한마디는 한국 정치판을 뒤흔들어 왔다. 뿐만 아니라 박 의원의 세치 혀로 갖고 있는 설검(舌劍)에 내로라 하는 권력자들도 등용문에서 줄줄이 낙마해 왔다.
“구치소에 있을 때 왼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다. 오른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지만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게 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볼 수 있다.”
박 의원의 ‘일목요연’은 그에게 ‘낙마 8관왕’이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박 의원은 지난 16일 기자들에게 “내가 원내대표를 맡았거나 청문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낙마시킨 사람이 천성관, 김태호, 신재민 등 모두 7명이다. ‘낙마 7관왕’인데 이제 문 후보까지 낙마시키면 8관왕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의원은 문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특별위원장으로 내정된 상태다.
방대한 호남인맥 정보통 활용
박 의원은 이어 문 후보 낙마와 관련해 “100%다”라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에 문 후보가 사퇴와 관련해 ‘야당에 가서 물어보라’는 발언에 대해선 “야당이 답하겠다. 사퇴하라”라고 말하는 펀치력(?)을 구사하기도 했다.
박 의원이 낙마시킨 인사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 김태호 총리 후보, 신재민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김병화 대법관 후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 등이다.
하지만 정작 낙마왕 박 의원을 저격하려던 과거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의 공세는 번번이 빗나갔다. 특히 여권에서 자신만만해하던 박 의원의 저축은행 뇌물 비리사건 수사도 흐지부지돼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도대체 박 의원의 그런 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는 박 의원 특유의 일목요연한 처세술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인사들이 많다. 박 의원에게는 여당도 야당도 없으며 치밀하고 방대한 그의 언론, 사법, 재계, 정계의 호남 인맥은 결정적인 정보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그러한 박 의원의 처세술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1월 박지원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미국 한인회장의 자격으로 참가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환영 행사를 치렀다. 1985년에도 박지원은 뉴욕평통자문위원회 회장을 맡을 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 환영식을 주도했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러한 박 의원은 보수 한나라당에게는 공적 1호였지만 저축은행 로비 사건등 여러 비리 혐의에 연루된 사법기관의 수사는 언제나 미온적이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박 의원이 보해저축은행 뇌물 혐의와 관련해선 “돈을 받았다면 목포 역전에서 할복이라도 하겠다”고 말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박 의원이 언론의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러한 이유로 DJ 정권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재임시 막대한 언론 로비를 해왔다는 증언들이 있다는 점이다. 2003년 박지원 장관의 기자 촌지 혐의와 관련해 언론노조는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는 표현으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박지원 장관은 언론사 간부들에게 300만~500만원의 촌지를 돌리며 기자들에게도 고급 위스키와 현금 공세로 초토화(?)를 시켰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지난 2003년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촌지를 받은 기자들을 성토하며 자체 조사에 착수키로 하는 동시에 검찰에 대한 엄중수사를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박 의원이 언론에 대해 선심성 공세만을 편 것은 아니었다. 이번 문창극 총리 후보 문제를 둘러싸고 박 의원이 날카로운 대립을 보이는 이유에는 과거 DJ 정권에 비협조적이었던 중앙일보를 박지원이 방문해 유리컵을 내던지며 사장과 편집국장을 을러댔고 이에 중앙일보가 그러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당시 정치부장이었던 문창극 총리 후보와 구원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당사자들의 증언은 엇갈리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세간에 화제가 되는 것만으로도 박 의원의 고도로 전략화된 언론 대응과 메시지 전략의 기량을 짐작하게 한다.
박 의원 처벌이 흐지부지된 이유는?
이렇듯 언론들과 속칭 피를 묻힌(?) 박 의원은 이후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지지하는 후견자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2009년 박 의원은 민주당 정책위의장 자격으로 “정부가 노동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공무원노조의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박 의원의 공무원노조 지지 전략은 장관이나 헌재소장, 총리 등에 낙점된 인사들의 과거 공직 시절의 비위나 약점을 전달받는 주요한 루트라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실제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소장 내정자의 경우 재판 연구비 등을 유용한 혐의에 대해 법원 내부 조력자의 제보가 없이는 파악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법원의 경우 법원조직법에 의해 행정부의 간섭이 배제되기 때문. 그러한 제보처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공무원노조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강하다는 법원노조였다.
이렇듯 박 의원이 가진 네트워크는 박 의원으로 하여금 정권 핵심부의 사정을 꿰뚫어 보는 천리안을 제공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박 의원이 왕수석이라 불릴 정도로 실세로 있던 DJ 정권 하에서 방만한 IMF 공적자금 160조 가운데 회수가 불가능한 자금만도 수십조에 달했던 사실은 끊임없이 박 의원의 비자금과 연계돼 인구에 회자돼 왔다.
물론 그렇다고 밝혀진 것은 없다. 박 의원이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할복하겠다”는 정도로 강경하게 나오는 이상 박 의원과 호형호제하는 일부 검찰과 여권의 핵심인사들은 박 의원을 보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할복하겠다는 사람이 뭐가 두렵겠냐 말이다. 그것은 나 혼자 저승길로 갈 수는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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