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Fed)는 가상화폐에 대한 권한이 없으나 장기적으로 혁신이 가속화될 경우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벤 버냉키(발언 당시 Fed 의장)
유럽발 재정위기 속에서 비트코인은 정부 통화를 회피해서 자산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가격이 크게 올랐다. 급기야 2013년 8월에 독일 재무부는 비트코인을 법적인 화폐로 인정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계속 올라갔고 철학적 추종자들은 갑자기 부자가 돼버렸다. 이런 축제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해 공포로 변했다.
2013년 10월 실크로드라는 사이트가 미국 검찰에 의해 폐쇄됐다. 마약류나 불법무기까지 거래할 수 있는 이 사이트의 익명의 운영자는 결국 로스 울부라이트(Ross Ulbricht)라는 20대 청년으로 밝혀졌고 그는 체포돼 살인교사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E-Gold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는데 미 검찰에 의하면 이 사이트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였다. 정부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사용하도록 권고 받았다는 것이다.
디지털 결제수단이 음성적인 거래에 활용된 사례로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폭증했다. 다른 나라 정부들도 비트코인에 주목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에 대한 미 정부의 공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건의 추이를 숨죽이고 관찰하고 있던 비트코인 추종자들에게는 뜻밖이었다.
11월에는 미 상원에서 비트코인 관련 청문회가 있었다. 의원들의 질의를 받은 미연방준비제도 의장 벤 버냉키는 상원 앞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비트코인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낙관적인 비트코인의 전망들
“연방준비제도(Fed)는 가상화폐에 대한 권한이 없으나 장기적으로 혁신이 가속화될 경우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청문회에 직접 참석한 미틸리 레이먼(Mythili Raman) 미 법무부 차관보 대변인은 미 법무부가 가상통화가 합법적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국제거래를 활성화 시킬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은 이 발언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미 정부의 신중한 낙관론을 보여준다며 보도했고 당일에만 비트코인의 달러 환율은 두 배로 올랐다. 11월 비트코인은 1200달러까지 치솟았고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후끈 달아오른 비트코인 열기는 누가 봐도 위험했다. 소방수를 자임한 건 중국은행이었다. 12월 중국의 런민은행은 은행들의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한다고 공표했다. 비트코인 값은 절반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했고 600달러 선을 유지하며 해를 넘겼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과열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진행되는 와중에 비트코인 역사에서 첫 번째 가장 큰 시련으로 기록될 사건이 터졌다.
비트코인을 달러나 다른 국가의 통화로 바꾸는 거래소 중 가장 규모가 큰 마운트곡스가 해킹으로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다. 2012년에도 서버가 중단되거나 고객들의 정보가 유출되는 등의 크고 작은 사고를 쳤던 회사가 결국 일본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다. 고객들의 비트코인 750,000과 회사 보유의 비트코인 100000을 해킹으로 잃어버렸다. 정부의 규제도 아니고 보안성을 자랑하는 비트코인의 안전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켰다.
비트코인의 시련
미국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로 후끈 달아올랐던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마운트곡스 사건으로 인해 의심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가격을 유지했는데 비트코인에 대한 충성스러운 추종세력이 총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에 가능한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마운트곡스 사건이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의 안정성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거래소 공격에 해커들이 몰리는 이유도 비트코인 시스템이 무결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거래소는 E-Gold처럼 중앙 서버에서 고객들의 계좌를 관리한다.
해커들의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공격지점도 거래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4월 이후로는 위안화와 거래하는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으름장을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고 이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은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이 정부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완결된 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통화거래까지도 P2P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 은행을 끼지 않는 송수금 서비스라는 점을 자신의 논문에서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은행의 기능은 디지털 거래의 기술적 보증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비트코인을 보내도 그에 상응하는 돈이나 물건을 받을 수 있을지까지는 비트코인 시스템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은행이나 신용카드도 마찬가지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은행이나 신용카드는 불량거래자를 제거함으로써 나쁜 의도를 가진 측에게 비용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비트코인 결제는 이 비용마저도 제거하고 있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발행량을 제한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 대한 방지책도 언급하고 있으나 화폐보다는 통화량이 인플레이션의 함수다. 통화량은 화폐보다는 신용시스템의 산물이다. 이상은 비트코인 진영의 오해와 착각이다.
비트코인은 E-Gold가 제공했던 국제적인 소액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것도 아주 저렴하고 편리하게 해준다. 비트코인이 제공하는 유사익명성(pseudo-anonymous) 덕택에 신용카드 넘버를 인터넷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각국의 정부들은 E-Gold를 때려잡듯이 법과 강제력만 가지고 손쉽게 비트코인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음성적 거래에 대한 정부의 논리는 근거가 약하다. 비트코인은 익명성이 없다. 모든 거래를 공개한다. E-Gold의 협조가 오히려 불법거래 조직을 적발하는 데 도움이 됐고 기록이 남는 비트코인의 속성을 이용해 실크로드의 자산을 압수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조직적인 범죄집단은 이메일을 피하듯이 비트코인을 피할 것이다. 이상이 정부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안이 간단하지 않은 이유다.
비트코인에 대한 추종과 거부를 선택하기 전에 성찰과 연구가 필요하다. 비트코인 추종자나 정부도 비트코인의 미래를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금융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비트코인은 하나의 종속변수이자 독립변수다. 비트코인만 놓고서는 비트코인을 이해할 수 없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비트코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과 금융과 국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오태민 <경제학적 상상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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