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교육부 장관에서 서울시교육감으로, 그리고 다시 ‘후보’로 돌아왔다.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교육감 재선거를 통해 당선된 문용린 교육감은 6월 4일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밝히며 다시 한 번 ‘선거판’에 뛰어들었다(지난 9일 예비후보에 등록함에 따라 교육감 직무는 김관복 부교육감 대행체제로 전환됐다).
이른바 보수·진보 진영 후보들이 모두 단일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선거는 격전의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본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판에 뛰어든 ‘학자출신 교육감출신 후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7일 서울시교육청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 후 안산시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들렀다 왔다는 문 교육감은 침통한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시점이 시점인지라 선거 얘기를 안할 순 없었다.
- 안산 합동분향소에 다녀오신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고 이후 체육관에 한 번 들렀는데 이번엔 분향소엘 다녀왔어요. 정말 침통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진 속에 밝게 웃고 있는 선생님들이 어찌나 젊은지….
- 사고 직후 ‘안전’에 대한 부분에 신경을 쓰겠다는 방침을 밝히셨습니다. 서울시교육청에 안전관리팀을 신설한다고 발표하셨죠?
서울시에 6000개 넘는 학교와 제반 시설이 있습니다만 이중 38% 정도는 30년이 넘은 건물들이에요. 유해물질이 나오는 곳도 있고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건물도 많습니다. 학교 시설이 낙후돼서 급식식당이 따로 없는 곳, 아이들이 교실에서 밥을 먹는 학교도 30%에 육박해요.
사실 지난 3년 동안 교육당국이 이런 부분에 돈을 투자 못한 게 사실입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4000~5000억이 투입됐는데 올해는 800억 원밖에 안 된 거죠. 기하급수적으로 낙후되는 환경 속에서 과연 지금 이 상태로 좋은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생각해 보면 교육계가 무상급식으로 논쟁한 적은 있어도 ‘안전’으로 논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돈도 그쪽(무상급식)으로 블랙홀처럼 몰렸죠. 이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 출마선언하면서 표방한 7개 비전(①행복한 교실에서 교육의 기본을 튼튼하게 세우기 ②학생 진로·진학 역량 강화 ③폭력과 부적응이 없는 서울 안심학교 만들기 ④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을 촘촘하게 챙기기 ⑤교사들에게 교직의 긍지와 보람 주기 ⑥서울학습 공동체를 통한 서울교육 네트워크 다지기 ⑦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교육행정)과 함께 내세운 공약이 교육환경개선 특별회계 부분이에요.
기간을 정해서 1조-2조원을 환경개선 분야에 집중투입한다는 계획입니다. 중앙정부와도 합의해야 할 문제지만 안전에 관한 문제인 만큼 다른 돈을 끌어 들여서라도 철저하게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안전교육은 유치원 때부터”
- 환경개선 만큼이나 안전교육 그 자체도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이죠. 교육 받는 학생들이 어릴수록 흡수도 빠르다는 생각이고, 유치원부터 실천 중심 안전교육을 시작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이번 (세월호) 참사는 공무원만의 부실이 아니라 안전의식의 부재가 컸습니다. 우리도 보면 운전 중에 무심코 휴대폰 사용하고 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소화기 구비만 해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교체하기로 돼 있지만 지키는 사람들 거의 없죠.
5000만 국민 하나하나가 자신의 안전에 대한 불감증 상태에 빠진 현실에 대해서는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실천 중심으로 안전교육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히 유치원 때부터 법을 지키고 원칙을 지키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는 거죠.
그 아이들이 20년 후에 성인이 되면 국민성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불감증적인 의식체계를 바꾸는 시작점은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 학교의 안전은 신체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학교 현장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분위기로 가는 것에 대해 여전히 우려가 많습니다. 1년 6개월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그 말씀 그대로예요. 교육이 너무 많이 헝클어져 있습니다. 진보다 보수다 이런 정치적인 이념 때문에 그렇게 된 면이 크죠. 대표적인 예로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등등이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밀어붙이다 보니까 혁신학교가 이름과는 달리 소수의 이념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됐어요. 인권조례도 마찬가지고요.
진정으로 인권을 위한다면 인권에 관심을 갖는 학교 ‘환경’을 만들 생각을 해야지 대립 구도 조성을 하는 건 곤란하다는 거죠. 급식도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급식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친환경’이라는 말 속에 이념적인 색깔을 섞어서 나오니까 급식문제 내부에서도 불합리와 부작용이 속출했어요.
- 자주 쓰시는 표현대로 하면 ‘비본질적 가치’의 과잉인 거군요.
바로 그 비본질적 가치의 개선에 1년 6개월 중 상당한 시간을 투입했어요. 제가 이번에 다시 교육감에 출마하는 건 본격적으로 본질적인 가치에 천착해서 1년 반 동안 시도했던 방향 전환을 완성해야겠다는 의미예요.
- 그래도 선거까지 ‘비정치적’으로 할 순 없지 않을까요. 엄연히 직선제를 하고 있고, 후보들의 주장이야 어떻든 많은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보수-진보로 나누고 있으니까요.
현실은 그렇습니다만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어요. 이번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의 생명과 관련된 일에 보수 진보가 낄 틈은 없지 않겠습니까? 교육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주는 일일 뿐이죠.
꿈 희망 비전이 가득 찬 교육을 전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1년 6개월간 노력한 덕에 제가 누차 강조하는 ‘꿈’과 ‘끼’ 같은 단어가 이제 학교 현장에서 자주 들려와요. 욕심일 수도 있지만 제가 4년을 더 맡는다면 대한민국 교육 현장을 희망과 꿈과 비전으로 가득 찬 젊은이를 육성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선거에서 꼭 이겨서 제가 시작한 교육을 완성시킬 기회를 먼저 얻어야겠죠.
‘AGAIN 2010’은 곤란하다
- 교육감 선거 중에서 보수진영의 ‘악몽’으로 회자되는 게 2010년 선거입니다. 보수진영 후보 분열로 진보진영 단일후보인 곽노현 후보에게 교육감 자리를 내줬고 거기에서부터 학생인권조례를 포함한 일들이 시작됐으니까요. 당시 곽 후보의 득표율은 34.3%로 보수진영 후보 6인의 득표율을 합친 수치(약 65%)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이번엔 그렇게 되면 안 되죠.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후보들이 또 다시 분열된다면 큰 문제고 하나가 돼야 합니다. 단일화 시스템에 들어오지 않거나 승복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겠죠.
- 선거 전략은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돌아보면 재작년 재선거 때에는 참 아마추어였고 아무 것도 몰랐어요. 저한테 조직이 있을 리도 없고요. 이번에도 크게 다를 건 없겠지만 그래도 재선거 때보다는 마음 편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제가 펼쳐온 교육정책이라는 게 분란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안정을 시키는 데 중점을 둔 것들이었기 때문에, 선거도 새로운 이슈를 만들기보다는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고민하는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 2012년 재선거에선 “선거를 너무 점잖게 한다”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논쟁과 대결에 익숙하신 분들 입장에선 답답할 수 있을 거예요. 분명히 보수적인 철학을 갖고 있는데 왜 싸우지 않느냐는 말씀인데, 그건 제가 몸담고 있는 분야가 다름 아닌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좀 힘들더라도 기다리고 참는 게 교육의 근원적인 해결방식이라고 보거든요. 교육은 다른 정치행위와는 다르고 참고 기다려주는 미덕이 살아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특정 유형의 학교와 관련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 학교를 없애라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라는 식의 논의로 너무 빨리 치닫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하나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하는 문제는 그곳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제 스타일에 대해 물에 물탄 것 같다고 보시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만 교육을 중점적으로 놓고 생각하면 그게 도리어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적 가치는 보수적으로 발현시키는 게 맞지 않느냐는 거죠.
- 지난 번 선거 때에는 대결 상대가 전교조 위원장 출신의 이수호 후보였기 때문에 ‘전교조 vs 反전교조’ 프레임이 자연히 형성됐습니다. 이번에 출마하는 후보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지난 번 선거의 외양이 보수 대 진보 구도로 보인 면이 있지만 그것도 속 내용을 보면 교육의 본질이 관건이었어요. 이번도 마찬가집니다. 본질적인 부분에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 후보들이냐는 건데, 사실 그렇게 교육 분야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봐요. 정말 교육 문제 때문에 나온 게 맞는지 의아심이 드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선거 역시 여전히 ‘본질과 비본질의 대결’이에요. 정치적인 이슈와 관련된 포퓰리즘 공약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싸움이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그런 공약이 하나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 이른바 보수 성향 후보들의 단일화는 이번에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예 절차 자체에 들어오지 않은 후보들도 있는데요.
이것도 지난 번 재선과 마찬가지죠. 지금 저 역시 6인의 후보 중 단일화 절차를 거친 뒤에 후보로 낙점이 된 건데, 여전히 안 들어온 분이 3명 있어요. 보수 후보가 넷이나 됐던 상황에서 승리했던 지난번 재선과 다를 게 없다는 거죠.
그런 만큼 유권자들께서도 다시 한 번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구현할 후보가 누구인지를 봐 주셨으면 합니다. 적어도 수도 서울의 교육을 맡겠다고 나온 분이라면 1~2년 전부터 고민을 해왔을 거고, 그렇다면 단일화 과정을 통해서 공명정대하게 경쟁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야 한다고 봐요.
단일화 과정은 신문 공고까지 내면서 대규모로 진행을 해왔는데 이 단일화 절차와 그동안의 노력을 무시하고 본인의 주장만 한다는 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결국은 본질과 非본질의 대결”
- 이번 교육감 선거에는 연예인급 정치인 출신으로 인지도가 높은 고승덕 前 의원도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타 후보의 행보에 대해서 코멘트 할 부분은 없고요. 당연히 같이 출마한 후보로서 존중해야겠죠. 다만 공평한 경쟁을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교육감 선거는 교육감 선거답게 하자는 생각입니다.
네거티브 없이, 서로 무슨 약점을 얘기한다거나 그런 것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경쟁했으면 좋겠어요. 수도 서울의 교육에 대한 저 자신의 비전과 희망을 얘기하고 그걸로 평가와 심판을 받겠습니다.
- 후보로서 교육감 선거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개선돼야 할 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일단 지난 1월 국회에서 교육감 출마자격을 ‘교육(행정) 경력 3년’으로 합의한 부분에는 적극 찬성입니다. 교육감은 역시 교육 경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좋다고 보는데 그 부분은 정상화가 된 것 같고요. (※ 이 개정안은 이번 선거엔 적용되지 않는다. 6·4 교육감 선거는 후보의 교육 경력을 묻지 않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거다.)
직선제에 대해서도 견해가 갈리지만 우리 상황에서 교육감이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직선제를 하는 게 최선이라고 봐요. 물론 선거과정 자체에 정치색이 있습니다만 교육감을 임명제로 하면 이거야말로 정치적인 딜이 발생할 게 분명하거든요. 교육감이 교육감답게 일을 하려면 당과는 무관하게 직선제로 뽑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입니다.
- 마지막으로 유권자들과 미래한국 독자들에게 가볍게 ‘정견 발표’를 해 주시죠.
사실 지난 재선에서 특이한 점이 대통령과 교육감을 문-문으로 통일한 유권자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에요. 진보 후보로 분류된 문재인 후보를 찍고, 보수 후보로 분류되는 문용린을 찍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죠.
대통령에 당선되신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서울에서 많은 선거구를 내준 것과 달리 교육감 재선은 25개 지역구 모두에서 제가 압도적으로 득표를 했어요.
대통령은 진보를 찍어도 교육감은 보수를 찍는 현상은 결국 교육을 정치와 헷갈리지 말아야겠다는 열망이 살아 있다는 의미로 봅니다.
교육 문제에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30년간 이리저리 씨름해 온 사람인만큼 다른 후보들에 비해 교육과 관련된 남다른 통찰은 있다고 생각해요.
짧은 선거기간이지만 학교 현장을 안전하게 하는 부분, 무너진 교권을 세워서 선생님들을 일으켜 세워드리는 부분에 다시 한 번 집중할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선생님부터 학생들까지 모두가 사기를 회복할 수 있는 정도(正道)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 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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