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반란인가 혁명인가
비트코인, 반란인가 혁명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4.05.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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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금융 그리고 정부주권 ②

“거래의 부재를 확인할 유일한 방법은 모든 거래를 아는 것이다.”
(The only way to confirm the absence of a transaction is to be aware of all transactions.)
사토시 나카모토(비트코인 창시자)

법무부가 잭슨의 유죄판결을 위해 마지막 땀을 흘리고 있었을 2008년 8월 bitcoin.org 이라는 도메인이 등록됐다. 이를 주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10월에는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비트코인 P2P전자결제시스템’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논문이 올라왔다.

E-Gold의 유죄판결에 성공한 연방정부는 이후 몇 년 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잭슨의 유죄판결 1개월 전에 공개된 이 논문은 마치 잭슨과 검찰의 공방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이 논문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은 얼마 후 비트코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오픈됐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의장과 연방 재무부 담당자, 수사당국은 의회 청문회로부터 비트코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변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만다.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은 국가 안보나 범죄라는 명분만으로는 비트코인을 E-Gold처럼 간단하게 없애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E-Gold에 대한 승소는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었는지 모른다.

P2P 시스템은 전자 중복결제의 해결책

사토시 나카모토는 전자결제가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한 기존의 해법은 제3자의 개입으로 압축된다고 설명한다. 가장 큰 문제는 중복 결제다. 100만원 밖에 없는 사람이 두 사람에게 100만원을 중복해서 보내는 경우다. 현실이라면 문제가 될 리 없지만 파일을 여러 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인터넷에서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이다. 전자결제에서는 직접 100만원을 보내는 게 아니라 소유권을 이전한다. 따라서 내가 A라는 사람에게 100만원에 해당하는 소유권을 이전하고 나서 B라는 사람에게도 소유권을 이전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즉 A에게 이전된 소유권이 B에게 확정돼야만 B가 이중 결제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E-Gold에서는 이 문제를 중앙의 서버로 해결한다. 이용자는 자신이 소유한 금의 양만 인식하지만 중앙의 서버는 금을 쪼개서 개별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서버 입장에서는 a라는 금과 b라는 금은 전혀 별개의 사물이다. 갑돌이가 a라는 금을 소지하고 있다가 을순이에게 보내면 중앙서버는 a금에 대한 갑돌이의 소유권을 해지하고 을순이를 a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록한다.

이후로는 갑돌이가 a를 병돌이에게 이전할 수 없다. 따라서 병돌이는 갑돌이에게 속지 않는다. 이 구조는 인터넷 뱅킹에서의 계좌이체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내 컴퓨터에서 갑돌이의 컴퓨터로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은행 서버에 접속해 내 돈에 대한 소유권을 해제하고 갑돌이에게 이전한다. 은행의 중앙서버가 통제하므로 중복 지불이 불가능하다.

P2P에서라면 내 소유권을 갑돌이에게 주고 나서 소유권을 복사해뒀다가 을순이에게 줄 수 있다. 을순이는 내 소유권이 이미 갑돌이에게 갔다는 것을 확인해 줄 제3자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토시 나카모토는 ‘집단지성’을 생각했다. 모든 거래를 모두에게 공개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갑돌이에게 a라는 금에 대해서 소유권을 이전했다. 이 사실을 공개하면 을순이도 병돌이도 정순이도 알고 있다. 을순이나 병돌이, 정순이는 내가 a를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이다.

내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제임스에게 이전하려고 하면 제임스는 속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이 빛의 속도로 처리되는 인터넷에서 선의의 제3자인 제임스의 손실을 방지할 방법이 있다. 모든 거래를 공시하는 원칙 때문에 내가 제임스에게 a의 소유권을 이전하려 한다는 사실도 공시된다. 을순이 병돌이 정순이가 이 사실을 알고 이 거래를 막아버리면 제임스는 속지 않는다. 즉 을순이 병돌이 정순이가 승인하는 거래만 인정이 되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은 이런 내용을 암호화 기술과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풀어서 논증했다. 중앙의 서버를 거치지 않고도 개별적인 컴퓨터 간의 결제가 가능하다. 결제가 정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결제의 기록이 저장돼야 한다. 거래를 승인하고 저장하는 과정을 ‘block chain’이라고 하는데 비트코인의 기술적 원리의 핵심을 블록체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블록체인의 형성은 비트코인 시스템의 핵심이자 본질이다.

블록체인 형성에 참여한 컴퓨터 즉 거래의 고시에 참여해서 거래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했던 을순이, 병돌이, 정순이는 자신의 자원을 소모한다. 이들의 컴퓨터는 이 과정을 암호화 해서 저장하는 과정에서 CPU와 전기를 소모한다. 그리고 거래가 증가하고 비트코인의 소유권이 분할될수록 이 과정은 복잡해지고 당연히 CPU와 전기소모량도 증가한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새로운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형성되면 새로운 비트코인이 생성돼 여기에 참여했던 컴퓨터들에게 제공되는 과정을 채굴(mining)이라고 한다. 기술적으로는 다소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비트코인이라는 인센티브를 위해 참여한 수많은 컴퓨터들이 매번의 거래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도록 하는 집단지성에 기초한 시스템이라고 정리한다면 원리적으로는 큰 오해는 아니다.

P2P 방식을 선택한 이유

왜 사토시 나카모토는 중앙서버를 배제하고 P2P 방식에 집착했을까? 그는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고 자신의 논문에 써 놓았다. 그러나 이 말을 순진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제3자를 끼지 않고도 오류 없이 송수금을 할 수 있다면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P2P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복잡하다.

중앙에 서버가 하나 있으면 깔끔하게 해결할 문제를 놓고 수많은 컴퓨터가 개입해서 중재해야 한다. 거래가 누적될수록 전기소비량도 늘어난다. 비용만이라고 본다면 그다지 실익이 없을지도 모르는 방식이다. E-Gold에 대한 유죄판결과 관련해서 읽어야만 사토시 나카모토의 의도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금이건 은이건 부동산이건 아니면 아예 현찰을 근거로 하건 간에 디지털 화폐는 정부의 공격을 받게 돼 있다. 범죄와의 연계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범죄자들은 무슨 도구든지 이용할 준비가 돼 있고 직접 만나서 현금을 주고 받는 좋은 방법이 있다. 디지털 화폐는 통화관리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막으려고 한다.

정부는 금을 비롯해 모든 디플레이션 화폐에 대해서 저항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치가 헐거워지고 있다고 달러를 욕하면서도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달러에 대해서 자국의 화폐를 평가절하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국 국민이 마찰 없이 달러를 보유하고 거래하는 것조차 금한다. 많은 나라에게는 달러마저도 디플레이션 화폐이라는 얘기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국가통제 범위 바깥에서의 화폐라는 꿈은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정부에 의해 짓밟힐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P2P시스템에 기초한 해법에 열중했던 것이다.

 

 

 

 

오태민 <경제학적 상상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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