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렇게 재난에 대처한다
미국은 이렇게 재난에 대처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05.15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특히 200여 명의 안산 단원고 학생 중 상당수가 ‘안내방송’의 지시를 따르다 시신으로 발견돼 유가족과 국민들의 큰 분노를 사고 있다.

또한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정부 부처의 행태에 크게 실망했다. 이번 사고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준 위기관리능력은 후진국보다 더 엉성했다.

일단 세월호 사고 원인은 무책임한 승무원과 청해진 해운에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세월호 침몰 소식이 전해진 뒤 해양수산부 소속 해상교통관제센터(VTS) 관리부서와 해양경찰청,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하는 안전행정부, 그리고 안전행정부와 지자체의 지휘를 받는 소방방재청 지휘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 국방부는 언론을 통해 사고를 본 뒤 즉각 현장으로 구조대를 보냈다. 그러나 정부 서울청사 1층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이 꾸려졌지만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는 커녕 구조인력 및 지원장비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드러난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VTS를 관리하는 해양수산부 소속 부서들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관리하는 안전행정부는 각각 세종시와 서울에 앉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진도군 앞바다 현장 상황을 지휘 통제했다. 실시간으로 현장 영상을 보면서 지휘하지도 않았고 현장 책임자에게는 전권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우리도 현장 상황을 뉴스 속보를 통해 얻고 있다”고 했다. 다른 나라였다면 처벌을 받을 정도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전혀 잘못됐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곧 국무총리부터 장관까지, 자신들이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현장’인 진도군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구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항구에 모인 각 부처 인원들은 구조대를 지원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수장과 총리를 ‘영접’하느라 부산했다. 국무총리와 장관들은 세월호 승객 가족들에게 박대를 받고 쫓겨났음에도 공무원들은 각료들의 체면 살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공무원들의 무지함과 무능함은 세월호 구조 활동 내내 드러났다. 해양경찰이 현장 활동의 지휘권을 쥐면서 국방부가 파견한 전문 구조요원들과 민간 잠수사들의 투입이 지연되거나 비효율적인 작업 지시로 피로도가 극도로 누적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세월호 침몰 직후 작업까지 중단하면서 플로팅 도크와 3000톤급 대형 크레인들을 보냈지만 해양경찰의 지휘 미숙으로 이들은 열흘 가량 현장 인근에 그냥 머물다 떠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정부는 세월호의 구조상 침몰된 뒤 ‘에어포켓’이 생길 수 없는 데도 좌파 언론들이 ‘생존 가능성’을 떠들어대자 눈치만 보면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냈다. 1993년 10월 서해페리호 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는, 아니 더 엉망이 된 정부의 대응능력은 국민들로부터 큰 질타를 받았다.

 

美 연방위기관리청(FEMA)의 실패 사례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나자 국내 언론들은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재난관리를 총괄지휘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조직이 미국 연방위기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 FEMA)이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FEMA는 美 본토를 10개 권역으로 나눠 해당 권역마다 지방청을 두고 있다. 전체 직원 수는 6000여 명에 달한다. 이 기관은 1979년 대통령령 12127호에 따라 州정부가 관할할 수 없는 수준의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했다. 美 대통령령 12127호는 FEMA를 창설하면서 연방보험관리국(FIA), 국가화재예방통제국(NFPCA), 민방위 부서 등을 흡수하도록 했다.

미국 또한 FEMA를 창설한 직후부터 재난에 제대로 대응한 건 아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연방정부는 자연재해나 대형사고 등에만 대응할 게 아니라 테러에도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2003년 3월 1일 FEMA를 국토안보부(DHS) 산하 조직으로 편입시켰다.

국토안보부에 편입된 FEMA에서는 소속 요원들에게 美 본토에서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핵테러 등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관련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 동안 각종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쌓은 FEMA는 美 본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all-hazards)’에 대응할 능력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 FEMA에도 곧 시련이 닥쳐왔다. 부시 행정부가 재난대응 및 위기관리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수장으로 앉힌 지 얼마 되지 않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친 것이다. 당시 뉴올리언스 지역을 담당하던 FEMA 지방청에서는 뉴올리언스 지역의 제방이 노후해 허리케인이나 폭우가 닥쳤을 경우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길 수 있는 심각한 위협이므로 빨리 제방 보수를 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테러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FEMA 본부에서는 이 문제를 후순위로 미룬다.

결국 2005년 8월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제방이 무너지면서 수 만 명의 인명 피해와 100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위기에 빠진 부시 행정부는 주 방위군까지 출동시켜 사태를 수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뉴올리언스 지역의 복구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10월 부시 행정부는 ‘카트리나 후 긴급복구법’을 정부 입법으로 만들어 FEMA 조직 개혁을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FEMA의 개혁은 이어졌다.

2012년 2월 1일 FEMA의 부청장인 리차드 세리노는 “FEMA에 소속된 모든 직원들의 재난재해 대응 전문성을 더 강화할 것”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기구와 인력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2012년 3월 13일에는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FEMA 요원 1600명과 ‘국가 및 지자체 서비스(CNCS)’ 소속 직원들이 함께 NCCC라는 새로운 단체를 조직,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대응하고 구조 및 구호, 복구 작업까지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소 잃은 외양간’에서 다시 ‘소’를 잃지 않을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2019년까지 예산도 꾸준히 늘릴 것이라고 한다.

 

세월호 대응과 美 FEMA의 차이점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런 FEMA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실 ‘재난재해 발생 시 모든 것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조직의 존재’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미국의 FEMA 간 차이는 ‘운영 원칙’이다.

한국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법률 제11994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설치·운영되는 중앙 정부조직이다. 현재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중앙집권적 조직’이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관련 법률과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을 살펴보면 대통령령인 ‘국가대테러활동지침’과 매우 유사하다. 테러와 마찬가지로 재난재해는 예방과 함께 ‘상황’ 발생 시 얼마나 신속하고 정교하게 대처하는가가 핵심이다. 그러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관련 법령에서는 현장 대응 시의 프로토콜보다는 정부 부처 간의 권한 정리와 조직 신설, 현실에서는 별 다른 쓸모도 없는 무슨 위원회나 협의회 설치 근거 등만 잔뜩 늘어놨다. 공무원들의 ‘자리 만들기’에만 신경 쓴 흔적이었다.

법령을 보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본부장은 ‘필요할 경우 지역에 직원 파견, 필요한 조치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현장 지휘자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니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이 생기면 현장 지휘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본부에서는 해당 부처나 지자체에 다시 요청하고, 이 요청이 여러 단계를 거쳐 승인을 받은 뒤 다시 같은 순서를 거쳐야 현장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美 FEMA는 카트리나로 인해 뉴올리언스가 피해를 입기 전부터 현장 지휘자에게 전권을 위임하도록 돼 있었다. 美 FEMA는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소방서, 경찰, 응급요원을 가장 먼저 현장으로 보낸 뒤 즉각 뒤따른다. 이후 필요한 경우 주지사로부터 전권(全權)을 받아 지역 내 공무원은 물론 주 방위군까지 출동시킬 수 있게 돼 있다. 필요한 물자 또한 무제한 징발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FEMA의 이런 막강한 권한 탓에 관련 직원들이 ‘음모론’에도 단골로 등장할 정도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재난 대응 차이는 관련 조직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 대응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가 가장 크다.

美 FEMA 따라하기 말고 해야 할 일

한국 사회에서는 FEMA와 같은 조직을 만들고 따라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사회 구성원들이 재난재해와 안전에 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 어디에서도 어린이, 청소년, 성인들을 위한 재난재해 대응능력 교육이 없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만들어진 민방위본부가 80년대 이후 재난재해에 대응하는 중요한 조직으로 성장했음에도 90년대 들어선 문민정부는 군사문화의 잔재라면서 매월 시행하던 민방위 훈련을 축소했다. 이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또한 민방위 훈련을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1·21사태 이후인 1969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던 교련 수업은 1992년 6차 교육과정 개정 이후에는 응급처치 및 재난대응 훈련으로 수업내용이 바뀌었는데 이후 문민정부는 1997년 7차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선택과목으로 했다. 2007년 교련 수업은 ‘안전과 보건’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전국 2100여 개 고교 가운데 이를 채택한 학교는 90여 개(4.2%)에 불과했다.

고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안전교육은 거의 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 수영이나 응급처치를 가르치는 곳도 없고 재난 시의 대처 요령 교육, 대비 훈련도 아예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가안전처’니 뭐니 하는, 거대한 조직만 만든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까? 구명조끼 입는 법조차 모르는 국민들이 또 다른 재난을 당했을 때 얼마나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번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남긴 건 아픔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거대한 숙제도 함께 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