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은 4월 16일 오전 8시 58분이었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조난 신고를 보내왔다. 배 안에는 수학여행을 떠난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등 승객 350여명이 탑승했으며 해경이 긴급 구조작업에 나섰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배는 결국 침몰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도 어마어마한 혼란과 후폭풍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은 세월호에서 시작된 비난의 여파가 反정부적 움직임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각 총사퇴’ 주장은 그나마 온건한(?) 편에 속한다. 세월호의 침몰은 박근혜의 탓이므로 즉시 하야해야 한다는 사이버 청원운동마저 시작됐다.
‘오보’에서 ‘오해’로 확장된 불신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정부-언론-국민의 3분할로 나뉠 수 있다. 이 중에서 국민들은 연일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성토하고 있는 상태다. 첫날부터 시작된 불신의 고리는 궁극적으로 반복된 ‘오보’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오보 중에서도 가장 큰 상처로 남은 것은 11시 05분경 ‘안산 단원고 학생-교사 338명 전원 구조’ 뉴스였다. 그러나 이 초대형 실수의 귀착사유가 100% 정부 측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단원고 측에서 학부모들을 빨리 안심시키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과정에서 확인이 미비했던 게 진짜 원인이었다.
경기도교육청 역시 ‘전원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뒤 공식사과를 했다. 전원구조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구조대의 목소리는 한참 뒤에야 전달됐지만 끝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2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의사소통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던 셈이지만 이는 그뒤 일어난 수많은 불행들의 출발일 뿐이었다. 유족들과 국민들은 “해군 특수부대 350명, 민관군 합동잠수팀 500여명과 전문 잠수인력 500여명이 투입됐다”는 정부 측의 보도에 희망을 걸었지만 너무도 더딘 구조속도에 조바심을 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인원이 투입됐는데도 첫날 이후 생존자가 한 명도 없을 수 있는지 답답해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리고 바로 이 심리가 결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구조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연결된 것이다.
구조가 늦어진 진짜 이유는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의 거센 유속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이곳에서 이뤄지는 구조작업은 인원이 아무리 많이 투입됐어도 제한적으로 실시될 수밖에 없었다. 잠수사의 생명을 지키는 유도 로프 설치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도 하루 4회 정조 시간에 맞춰 1회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만 구조가 가능했던 것이다.
여론이 조바심을 내는 상태로 1주일이 흐르자 이 분위기를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가려는 세력이 등장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 청원이 등장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100만 명을 목표로 시작된 지 3일 만에 4만2000명이 모였다.
광화문에서는 “박근혜는 아이들을 살려내라”는 막무가내식의 1인 시위가 시작되는가 하면 가야금을 연주하며 박근혜 정부에 책임을 묻는 창의적인(?) 시위도 감행됐다. 25일 방한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에는 ‘노란 리본’까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시작된 반정부 투쟁, 노란 리본마저 악용
노란 리본 캠페인은 세월호 생존자들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시작됐으나 노란색이 친노 계파의 상징이었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 이용’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노란색 자체를 노무현 前 대통령과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는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보수진영에서도 노란 리본 달기운동이 확산되며 논란은 잦아드는 듯했다.
오바마 방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리본을 들고 나타난 점은 이 캠페인이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이 캠페인이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5주기인 5월 23일을 통과하면서 어떻게 진행될지에 따라 정치적 이용 여부가 최종 확인될 전망이다.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좌우 진영 모두가 극도로 주의를 하고 있는 눈치다. 행여 오해를 살까 각 정당의 후보 경선을 포함한 6·4 지방선거 일정 또한 올스톱 됐다. 그러나 모든 정황은 이 사태가 결국은 정치적인 선택으로 변환돼 판단 받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냉철하게 따져보고 이성적으로 비판해야 할 사건의 명암도 진영논리 속으로 조금씩 퇴색될 조짐을 보인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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