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명의 변천만을 보고 한국정치를 헤아려보라고 하면 누구든 그냥 손을 들고 말 것이다. 무슨 정당이 그 짧은 동안에 그렇게도 수없이 명멸해 갈 수 있는 것인가? 다이내믹하다 못해 난장판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 이해하면 전혀 혼란스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정치에서 당명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여당부터 보자.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꿨지만 그것이 그 전신인 한나라당과 다른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는 어떤가. 그냥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창당 합당 등등 이러저러한 과정을 어지러이 거쳤으니 어쨌든 다른 새로운 정당이라 할 것인가? 그러나 그들만 그렇게 내세우고 있을 뿐 그 당을 그렇게 보아주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내심으로는 당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안철수는 좀 달리 주장할 수도 있겠다. 비록 급조한 것이긴 했지만 자신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대등하게’ 합당한 뒤 당명의 약칭은 새정치연합으로 하게 됐다. 이쯤 되면 ‘다르다’고 하기에 충분한 것 아닌가? 그러나 그건 ‘안철수의 생각’일 뿐이다.
안철수는 합당이라고 여기(거나 혹은 주장하)겠지만 그건 정확하게 말하자면 형식만 달리한 입당일 뿐이다. 애초 안철수가 합당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기초단체 정당 공천 폐지도 그냥 없었던 일로 돼 버렸다. 기존의 민주당 주류 세력인 친노세력이 안철수의 새정치를 조용히 해치운 것이다. 이로써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름만 남고 내용상으로는 ‘도로 민주당’이 됐다.
일부에선 안철수와 김한길 등 反친노세력이 이 같은 상황에 마냥 끌려가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친노 대 反친노의 대결이 더 격화돼 6.4 지방선거 이후에는 양 세력 간에 일대 회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우선 김한길의 기량이나 안철수의 캐릭터로 볼 때 그런 대결을 주도할 만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당내 세력 기반도 취약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안철수의 정치적 효용가치가 다했다. 당내 기반이 다소 부족해도 국민적 기대를 모으고 있다면 소수세력으로도 싸움은 된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미 그런 정치적 여망의 대상이 전혀 아니다.
좀 섣부른 예측이지만 6.4 지방선거는 최소한 여당의 선방은 확실해 보인다. 그럴 경우 안철수는 지금 수준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가 그런 상황에 반발할 가능성은 없다. 몸부림치는 건 ‘철수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본들 ‘손학규 꼴’이다. 결국 얌전히 적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도로 민주당’의 운명은 다시 친노세력의 손에 쥐어지게 될 것이다.
야당의 건강성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당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여야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좋은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기대난망이다. ‘도로 민주당’과 친노세력이 그런 ‘건강한 야당’ 역할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편향과 아집에 사로잡힌 집단이 스스로 바람직하게 변화한 경우는 없다. 헛된 기대는 접어야 한다. ‘좋은 정치’를 위해선 이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친노세력 등을 아예 제외 고립시키고, 그외 모든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일대 정치혁신을 단행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소통 운운에 끌려 다닐 게 아니라 악성 요소를 가두고 고립시켜 다스리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주고 있다. 한국정치에 한계가 왔다. 지금 같은 정치로는 통일대박의 준비는 커녕 우리 일상의 안정적 관리도 안심하기 어렵다. 국가적 기강해이를 바로잡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범국민적 정치세력을 새로이 형성시켜야 한다. ‘새로운 선택’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이강호 편집위원
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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